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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이름을 두 번이나 바꿨을까?

엄마의 세 개의 이름 ; 정숙, 정서 그리고 서연

by seon young

* 엄마의 이름은 가명으로 대체됩니다.



1. 엄마의 이름, '정숙'

엄마는 육십 년 동안 세 개의 이름을 사용했다. 첫 번째는 태어날 때 지어진 이름 '정숙'. 네 자매 중 맏딸로 태어난 엄마는 60년 대에는 아주 흔했을 이름 정숙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나는솔로'에도 나올 만큼 흔한 이름이지만 엄마는 그 이름이 촌스럽다고 영 싫어했다.



2. 엄마의 두 번째 이름, '정서'

엄마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생 때 즈음 엄마는 '정서'라는 이름으로 '정숙'을 덮었다.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정서'라고 자신을 소개 했다. 엄마는 굳이 이름을 바꿔 사회 생활을 할 만큼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너무 짧게 자른 날에는 하루 종일 속상해하다가는 어디선가 가발이나 피스를 사와 착용했다. 옷에도 관심이 많아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에서 쇼핑을 즐겼다. 동생을 들쳐 업고 내 손을 잡고 고속터미널 구석구석을 다니던 때의 많은 조각들이 기억 속에 꽤 많이 남아있다. 그렇다 보니 엄마의 옷장에는 늘 예뻐 보이는 옷들이 많았고 옷과 가방들은 두 딸들이 탐을 낼 정도였다.


"정서는 정말 세련됐어."

"정서가 입은 옷 나도 입을래. 어디서 샀어?"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꽤나 인정받는 세련된 여성이었다. 주기적으로 염색을 했고 피부과에도 꾸준히 갔다. 엄마는 언젠가 본인이 피부과에 수 천은 썼을거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의 피부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아무래도 자신을 꾸미는 걸 즐기다보면 집보다는 밖에 더 오래있게 된다. 내가 학생 때부터는 엄마는 바깥 생활을 더 많이 했다. 가족들보다는 친구들과 더 시간을 많이 보냈다. 가끔은 그런 엄마의 모습들이 낯설기도 했다.


물론 본인 가꾸는 것 뿐만 아니라 어린시절부터 나에게 '취향'과 '격식'을 가르쳤다. 옷 가게에 가서는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것은 나에게 직접 고르게 했다. '엄마가 골라주는 옷'은 나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내가 주변 친구들에 비해 뷰티와 패션에 관심이 많아 일찍이 잡지사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다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기억 나는 또 하나의 조각이 있다. 가족들과 시골에 내려가던 중에 휴게소를 들렸는데 거기서 돈까스를 시킨 엄마는 나에게 포크와 나이프를 쥐는 법을 가르쳐주던 장면이 꽤 오랜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억에 남았다.


"왼 손에는 포크를 쥐고, 오른손에는 나이프를 잡아. 검지를 펴서 칼 등에 대"

"엄마..... 그냥 먹으면 안돼?"

"응 안돼 ~"


그 때 배운 왼손에 포크, 오른 손에 나이프는 여전히 잊지 않고 잘 사용하는 식사법이기도 하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두 딸들이 밖에서 취향을 가지고 격식을 차리는 사람이 되길 바랬다.



3. 엄마의 세 번째 이름, '서연'

그러다가 내가 사회인이 되었을 무렵, 엄마는 기어코 개명을 했다. '정서'라는 이름 대신 '서연'이라는 이름으로. 엄마에게는 '정서'라고 불리는 것보다 확실한 법적인 인정이 필요했나보다. '서연'이라는 이름은 철학관에서 받았던 여러 개의 이름 중 하나로 다소 요즘 식의 이름이라 60년 대생의 엄마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딸들은 엄마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거의 없기에 괜찮다는 말로 의견을 대체 했다.




오십이 넘어 개명까지 하는 것이 유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의견을 전달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 이름이 엄마에게 꼭 좋은 일들만 가져오기를 바랐다.





엄마는 얼마 전 담당의사선생님의 소견으로 대학병원에서 회복기 재활병원으로 전원을 준비중인데요. 전원을 하기 위해 재활병원을 다녀 보는데 엄마의 상태가 더 실감나기도 하고 마음이 무언가... 모르겠어요. 자꾸만 장기전이 될 것 같다는 의사선생님의 판단이나 주변사람들의 지나가는 말들이 정말 가슴아프고 힘이 들더라고요. 엄마의 의식은 어떤 어둠 속을 걷고 있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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