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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Oct 17. 2022

자취와 결혼 중 당신의 선택은?

 부모님 집에서 나오는 두 가지 방법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올해가 되자 친구들이 하나둘씩 청첩장을 주기 시작했다. 각자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다양한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내 나이가 벌써 이런 나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첫 미팅을 나가고, 썸 타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같이 설레고, 취업 준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던 우리가 이제 결혼을 준비할 나이가 된 것이다. 시간은 계곡의 물처럼 일정한 속도로 흐르지만 내가 느끼는 시간은 급류를 타고 내려가는 것 같다. 점점 빨라지는 속도를 따라가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한참을 내려와 있다.


서른 언저리가 되니 결혼하는 친구만큼 자취를 시작하는 친구도 많아졌다. 친구들의 자취방 집들이에 초대를 받아서 가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근래 들어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일을 실현한 친구들을 우러러보며 '너무 좋겠다'와 '부럽다'를 끊임없이 내뱉으면 친구들은 '너도 자취해'라며 용기를 줬다. 집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동산 앱을 둘러보며 다시 한번 자취의 꿈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다달이 들어가는 비용과 자질구레한 이슈들을 떠올리면 지금의 상태가 내게 최선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부모님 집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취와 결혼. 자취를 시작하는 것이 더 빠르고 간단한 방법인 것은 분명하다. 혼자 사니까 집이 넓을 필요가 없으니 집을 얻는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나만의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다. 내 짐 덜려다가 남의 집 얹는 꼴이 결혼이라는데 내 짐만 짊어지고 사는 것이 산뜻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론 다른 장르의 질문들이 떠오른다. 집안의 고요에 몸서리치며 외로움을 울부짖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결혼 적령기를 흘려보내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주변에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며 혼자 남겨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나처럼, 아니 나는 교환학생을 가면서 적어도 반년은 떨어져 살아본 적이 있지만 단 한 번도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는 친구가 곧 결혼을 한다. 그 친구에게는 결혼이 첫 독립인 셈이다. 신혼집을 구하고 가구와 그릇을 보러 다니는 친구를 보며 자기만의 살림이 생긴다는 것이 부러웠다. 친구들의 결혼 준비를 지켜보고 있으면 부러운 마음과 나는 아직 아니라며 거리를 두려는 마음이 공존한다. 결혼과 함께 딸려오는 수많은 의무와 책임을 생각하면 아직은 멀리하고 싶은 것이 결혼이다.




그럼에도 언제가 되었든 결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내 옆에 누가 있을까? 내게 남을 유일한 가족인 언니는 결혼을 통해 자기가 꾸린 가정을 돌보느라 바쁠 테고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에 혼자 있다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견딜 수 있을까?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혼자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 순간에 내 곁에서 온기를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바로 그 순간에 짠 하고 등장할 확률은 매우 낮을뿐더러 그 사람이 주는 온기에 대한 신뢰는 한순간에 쌓이지 않는다. 내 옆에 있어 줄 사람을 미리 확보해둔다는 생각으로 결혼이 하고 싶다, 아니 결혼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결혼이 어울리는 사람일까? 이와 같은 질문으로 결혼에 대한 책임이 내게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전까지는 '내 배우자가 되기에 알맞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상적인 결혼생활에 대한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렸다. 하지만 내게 어울리는 배우자를 찾아 나서기 전에 내가 결혼에 어울리는 사람인지부터 확인해봐야 한다. 결혼은 결혼식이 아니라 결혼생활을 의미한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환상을 결혼과 결부 짓는 나이는 지났다. 배우자와의 공동생활을 잘 해낼 의지가 있으며 결혼에 동반하는 의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두 가지를 모두 겪어보고 싶다. 인생 참 길지 않은가. 100세 인생의 3분의 1 지점에 결혼을 하는 것은 너무 빠르다. 40대에 결혼하는 것이 인생의 그래프에서 가장 적당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남자는 이미 30대 초반에 다 채간다는 정설과 마흔이 넘으면 인간의 재생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과학적 사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회가 정한 결혼 적령기를 따라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결국 나는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화목하고 안정적인 결혼생활과 멋진 솔로 라이프 중 하나가 아니다. 지지고 볶는 신경전이 이어지는 결혼생활과 외롭고 공허한 솔로 라이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인생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가장 이상적인 면과 가장 피하고 싶은 면을 모두 고려해보고 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에 동반하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독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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