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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Oct 09. 2022

과년한 나이에 부모님과 산다는 것

독립, 어른이 되는 관문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적은 교환학생 기간 동안 딱 한 번이었다. 그때도 완벽히 혼자는 아니었고 스페인 현지 룸메이트 3명과 함께 였다. 기숙사라고 불렀지만 아파트 형식이었기 때문에 일반 빌라와 비슷했다. 돈이 충분하지 않아 식사는 간소했지만 구성만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아침식사로는 요거트를, 저녁식사로는 시리얼을 먹으며 알캄포라는 대형마트에서 가장 저렴한 요거트 제품을 꿰고 있었고 시리얼 코너를 접수했다. 그뿐만 아니라 나초, 케첩, 치즈에 크림치즈까지 더하면 환상적으로 만들 수 있는 나만의 샌드위치도 개발했다.  무엇보다도 맥주 한 캔이 1유로 안팎으로 저렴한 가격이었기 때문에 냉장고에 늘 맥주를 구비해뒀다. 생활 습관을 체크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12시쯤 잠자리에 들어 8시에 일어나며 8시간의 규칙적인 수면을 지켰다.


주말이면 룸메이트가 본가로 가서 한국인 친구들을 초대해 같이 밥을 해 먹고 늦게까지 수다를 떨면서 보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산다고 거창하게 방탕한 일을 계획하지도 않았고 해외에 나왔다고 해서 도덕관념까지 한국에 두고 오지도 않았다. 간혹 그런 청년들의 이야기를 접했던 엄마께서는 내게 신신당부를 하셨는데 기우 중에서도 기우였다.


자유로운 생활에는 책임도 따랐다. 혼자서 살림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밥을 해 먹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일도 전부 내 차지였으며 집과 관련된 사소한 문제를 처리할 사람도 나였다. 룸메이트가 있기는 했지만 내 어치의 일은 나 혼자 해야 했기에 부담이 크게 줄지는 않았다. 엄마께서 빨래와 청소를 해주시고 아빠께서 분리수거와 쓰레기를 버려주시는 안락한 삶이 그리웠다. 공주 대접을 받으며 자랐다는 말은 알고 보니 부모님과 함께 살며 집안일의 의무를 느끼지 않는 사람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가 어언 8년 전이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로 나는 줄곧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다. 부모님 집에 얹혀산다고 해서 부끄러운 것은 없지만 불편한 것은 있다. 어렸을 때는 못 느꼈던 불편함이다. 학창 시절에는 나의 생활 패턴이 정해져 있었고 특별히 자율적일 것이 없었다. 학교 가는 시간은 항상 똑같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학원을 가는 시간도 늘 같았다. 엄마께서는 내 스케줄을 전부 알고 계셨고 그때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일이 조금씩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주중이나 주말이나 문제가 있다. 주중에는 아빠와 출근 시간이 겹쳐서 화장실을 사용하는 시간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9 to 6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한 가족에 몇 명 있는지에 따라서 더 복잡해질 수도 있고 간단해질 수도 있다. 오직 출퇴근 때문이라면 주말에는 문제가 없어야 하지만 또 다른 사정이 기다리고 있다. 나이가 드시면서 아침잠이 없어진 부모님께서는 주말 아침 7시부터 달그락달그락 삐걱삐걱 사부작사부작 다양한 소리를 내신다. 더 잠을 자고 싶어도 소리가 거슬려 잠에서 깨기 일쑤며 다시 잠드는 것은 힘들다. 어렵게 다시 잠든다 해도 오히려 하루가 더 피곤 해질 뿐이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으나 주말의 늦잠은 불가능하다.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날도 있지만 다른 계획이나 약속이 있을 때도 있다. 주말이면 집에서 늘어져라 TV만 보는 날도 있지만 바람 쐬러 여기저기 다니는 날도 많다. 그럴 때면 몇 시에 나가서 몇 시에 돌아오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를 가는지를 부모님께서 물어보시는데 이걸 관심이라고 봐야 할지 간섭이라고 봐야 할지 헷갈린다. 내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이렇게 다 얘기해야 하냐며 약간의 반항심이라도 내보이면 부모님께서는 걱정돼서 그러는 거라며 성을 내신다. 하지만 특별한 약속이 없는 주말 혼자서 카페에 가겠다고 주섬주섬 옷을 입는 내게 쓸데없이 왜 돈을 쓰냐며 집에 있는 커피를 마시라고 하시는 부모님의 말씀은 잔소리 그 이상으로 들리지 않는다.




작년에 언니가 결혼을 해서 신혼집으로 들어가면서 우리 집에서 자식 항렬은 나밖에 안 남았다. 언제 결혼하냐는 질문으로 결혼 압박을 받지는 않지만 부모님의 간섭 같은 관심을 외롭게 견뎌야 하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언니가 있을 때는 뭘 그런 것 가지고도 뭐라고 하냐며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나 홀로 대치해야 하다 보니 지쳐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 순간에는 잠시 고요의 소리를 찾아서 마음을 비운다.


결혼은 불투명하고 집값은 높아져만 가는 시절 설마 40살까지 부모님한테 얹혀사는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난다. 20대 때는 서른이 되면 당연히 독립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지금까지 부모님의 집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름 데드라인을 정했다. 어떤 방법이든 불사하고 삼십 대 중반에는 꼭 독립하기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늦어도 그 나이에는 나 혼자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적응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은 최대한 돈을 모으면서 독립을 위한 금전적인 준비를 차곡차곡해나간다.


한편으로는 금전적인 부분만큼 심적인 부분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공간에는 항상 나 말고도 누군가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인식만으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는데 오로지 나밖에 없는 공간에서 공허함을 느끼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돈 때문에 독립이 좌절됐을 때 내심 안도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립을 외치는 이유는 단지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독립하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알게 모르게 의지해오던 것들에서 완벽한 독립을 이루어야만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립은 내가 어른으로 한 단계 나아가는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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