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연 Jun 01. 2017

밤바다 소리가 나를 무언가 모를 대상으로부터 설레게한다

제주도, 올레길 4코스, 표선 해비치 해변, 망오름, 거슨새미, 영천사

http://cafe.naver.com/hongikgaepo



하늘길은 하나가 아니다. 

여러 개의 길이다 보니 매번 갈 때마다 다른 하늘의 모습이 연출된다. 

오늘은 방향이 해 뜨는 방향의 창가라 강과 바다에 비친 해의 모습이 아름답다. 은은하고 영롱하게 빛나는 모습이 고급스러운 황금빛을 자아낸다. 

항상 이런 식이다. 

알 수가 없다. 

여행이란 같은 공간을 가는 것 같아도 항상 다른 공간이다. 비행이 항상 같은 비행 같아도 다른 모습들이다. 

다만 기회가 있다면 전혀 다른 공간을 초이스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애정 하는 '제주도'는 예외일 수 있다. 

그만큼 아름답고 그만큼 매번 새롭기 때문이다  




오늘은 제일 길어서 숙제처럼 남겨놓은 '제주 올레길 4코스'를 지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동생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동회선 701번 버스를 타고 '표선 해비치 해변'을 향한다. 

1시간 만에 산을 가로지르는 버스도 있지만 그간 지나온 길도 느끼고 싶어 두 시간 걸리는 버스를 선택한 것이다. 해변에는 성격이 있는 것 같다. 

연인들의 해변, 가족들의 해변.. 여기는 가족들의 해변이다. 

아빠가 태권브이가 되어 아이들을 무서운 깊은 바다에서도 안전하게 놀아 줄 수 있는 가족의 해변이다. 

바닷 쪽 길을 지나'거웃 개'와 '갯늪'을 통과한다. 

'흰 동산'을 지나 올레길 화장실이 있을 무렵 누군가 지친듯한 목소리로 나를 세우더니 앞으로 8킬로 동안 물을 구할 공간이 없으니 근처에서 준비해 가라 겁을 주신다. '올레길 지킴이'라고 하시는데 제일 긴 구간이다 보니 지치는 사람들이 자주 나오는가 보다.



'거문머쳐'를 지나 외국인 노동자를 만난다. 

나는 손을 흔드는데 그네들은 목례를 해서 나도 목례를 한다.

'가마리 개 포구'에서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시는 어르신들께 지명을 여쭤뵙고 둘러본 후 해녀탈의장 뒤쪽 으슥한 길을 지나 '해병대길'로 가로지른다.

'토산 산책로'에서 시원한 나무 그늘에 도시락을 까먹고 느긋하게 스케치를 한다. 

잠시 졸음에 십여분 낮잠을 자고 일어나 서둘러 '토산 포구'로 나온다.

'남쪽나라 횟집'과 '산여리 통 입구', '토산초등학교'를 지나 '망오름'에 오르는데 '고라니'가 튀어간다. 

고라니가 울부짖는데 왜 그럴까 하다가 잠시 후 한 마리가 또 따라 움직인다. 

두 번째 고라니의 몸집을 봐선 어미가 새끼를 부르는 소리라 생각된다. 

새끼 보고 빨리 빠져나오라는 이쪽으로 오라는 울부짖음 같은 걸로 느껴졌다.

미안함에 빨리 자리를 피해 준다. '팔각전망대'에서 아쉽게 나무에 반쯤 가려진 바다와 산 쪽 전망을 바라보고 능선을 타고 '봉수대'를 거쳐 내려온다.



'거슨새미'는 물이 '한라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서 중국에서 그 맥을 끊으러 왔는데 마을 사람들의 기지로 지켜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샘이다. 

현재 물이 고여 있고 연못으로 조성도 되어 있다.

과거와 현대의 건축양식을 소박하게 가지고 있는 그래서 연못이 인상적인 '영천사'를 거쳐 아직 꽃이 진 자리에 알알이 자리만 잡은 귤이 달린 귤 밭길을 굽이굽이 내려가다 보니 다시 바다가 나온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져 불이 하나둘 켜지며 '옥돔'으로 유명한 '태흥 2리 포구'의 소박함을 지나 '남원포구 올레안내센터'로 와 제일 거리가 긴 4코스를 완주한다.



4코스는 제일 길다는 이미지가 있어 왠지 모르게 더욱 끝까지 악착같이 달리게 했던 코스다. 

하지만 목적성은 두 번째로 미뤄두고 나름 힐링하고 휴식하기 위해 하루의 값진 시간을 사용했다는데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밤바다 소리가 그리고 밤공기가 나를 무언가 모를 대상의 이미지로부터 설레게 한다.  


 


2017.05.28


https://brunch.co.kr/@2691999/303


이전 04화 따뜻하고 싶다 ㅡ제주도 올레길 3코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