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박소은 <일기>
도쿄에 츠지한이라는 유명한 카이센동, 혹은 일본식 해산물 덮밥집이 있습니다. 가게가 한 군데밖에 없었을 때는 두세 시간을 기다려 먹었다는 맛집인데요, 몇 년 사이에 분점이 여럿 생겨 한가한 시간에는 줄 서지 않고도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카이센동을 좋아하지만 어쩐지 유명 맛집은 내키지 않아 가끔 인스타그램 피드에 나와도 넘기기 일쑤였는데, 드디어 지난 주말 다녀왔습니다. 인기가 덜하다는 분점을 찾아갔는데도 꼬박 1시간을 기다렸어요.
산처럼 쌓인 해산물을 펼친 뒤, 와사비를 푼 간장 소스를 부어 한입 크게 떠먹었습니다. 미리 숙지한 대로, 해산물과 도미 회, 밥은 조금 남겨둔 뒤, 뽀얀 도미 육수를 부어 마무리했지요.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커서였을까요. 맛은 있었지만,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재료를 다져서 뒤섞는 방식이 제 취향이 아닌가 봐요. 저는 카이센동을 먹을 때, 재료 하나하나의 맛을 즐기려는 편이거든요. 츠지한을 직접 경험한 덕분에, 제가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 것을 하나 알게 된 셈이죠.
최근 일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한번 발을 담그고 나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지 않음을 깨달은 경험이요. 지난해 말, 회사에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조금 더 책임감이 필요한 직무에 지원했어요. 처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꼭 지원해 보라는 주변의 조언에 마감 직전 지원서를 제출했지요. 그 결과, 보기 좋게 떨어졌답니다.
그런데 열등감과 자존심 덩어리인 제가, 불합격 통보 메일이 조금도 분하거나 아쉽지 않았어요. 오히려 무거운 짐에서 해방된 듯 홀가분하지만 했지요. 면접 일정이 잡히자마자 극도로 우울했던 건, 하필이면 그날이 제 생일 다음날이어서인 줄 알았는데, 사실 제가 그 자리를 원하지 않아서였음을, 두 번의 면접을 치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죠.
지난주 일기에 언급한 출간 제안도 마찬가지였어요. 올해 이미 하고 싶은 일들과 새로운 진로 계획을 세운 상태라서, 처음 메일을 받았을 땐 당연히 거절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제안을 곱씹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품은 많이 들지만, 탐나는 기획이었거든요. 게다가 제가 고사한 프로젝트가 다른 작가를 만나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면, 아쉬워하거나 질투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기로 하고, 목차를 만들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책 내용이 제 안에서 구체화될수록 신나기는커녕 스트레스와 부담만 커지더라고요. 너무 과분하고 무거운 옷에 짓눌린 기분이랄까요. 결국, 저보다 훌륭한 적임자를 만나 더 사랑받는 책이 되기를 기원하겠다며 거절의 답장을 보냈답니다.
두 경험을 회고해 보니, 저는 첫 느낌이 정확한 사람인가 싶기도 하네요. 그래도 갈림길 앞에서 100퍼센트에 가까운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일단 걸어보고 판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합니다. 아니다 싶을 때 돌아오면 되죠. 물론,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요. 거울에 비추었을 때는 예뻤던 옷이, 실제로 입어보면 다를 수 있으니까, 결정을 한번 ‘시착(試着)‘하는 셈 치면 어떨까요.
이렇게, 이번 주에는 내 마음 아는 법을 또 하나 배웠습니다.
오늘은 외식 일기이니, 가게 정보로 대신할게요.
니혼바시 카이센동 츠지한 아크힐즈점
주소: 도쿄도 미나토구 아카사카 1-12-32 아크모리빌딩 3층
전화번호: 03-6277-6385
영업시간: 11:00~22:00 (9:30 라스트 오더)
홈페이지: www.tsujihan-jp.com
오늘의 추천곡은, 아티스트의 의견과는 무관하지만, <도쿄 혼밥 일기>의 테마곡으로도 손색없을 듯한 박소은 <일기>입니다. 얼마 전에 생긴 예쁜 동생이 제
음악 취향을 듣더니 추천해 주었어요.
그저 우울한 어느 날의 일기
나는 이런 사람이야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날 혼자두지 마
아니 그냥 내버려 둬
아냐 사실 잘 모르겠어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정말이지 ‘나’ 하나 알아가기에도 부족한 일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