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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이들 Jan 24. 2021

[흡흐흡흐] 제1강_햄스트링이 짧아 슬픈 사람

요가 싫어하는데 왜 등록했냐고요?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인생에 햄스트링이 타이트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햄스트링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체력 검사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들이 떠들썩하다. 교실 앞에는 은빛 철붙이에 만든 좌전굴 기구가 놓여있다. 검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서로 엉덩이를 밀치며 누가누가 더 멀리 가나를 뽐내고 있다. 나는 그 무시무시한 은빛 괴물을 한 바퀴 뺑 돌며 흘겨본다. 측정 방법은 단순하다. 발바닥을 기구에 대고 앉아 전굴 동작을 취하면 끝이다. 발 너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숫자가 적혀있다. 아이들은 선생님 몰래 자신의 유연성 끄트머리서 손가락을 한번 튕겨 본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가고 싶기 때문이다. 귀찮은 듯 선생님은 보고도 못 본 척 그럭저럭 넘어가려 하지만, 옆에서 그 모습을 본 반 애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선생님! 쟤 지금 손가락 튕겼어요!!' 아이들이 이르면 선생님도 어쩔 수 없다. 다시 재는 수밖에. 그게 뭐라고 한바탕 떠들썩한 측정이 시작되었고, 기어코 내 차례도 왔다. 나는 발바닥을 기구 앞쪽에 대고,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앉아 전-굴을 한다.


전——굴.


어라? 손 끝이 허전하다. 선생님, 이거 안 닿을 수도 있나요? 너 다시 해봐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시 한번 전—굴. 선생님! 쟤 무릎 굽혔어요! 옆에서 왁자지껄하게 들리는 목소리. 어라 나도 몰랐다. 너 무릎 굽히지 말고 다시 해봐라.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무릎이 굽어졌다. 아이들이 몰려와 내 무릎을 아래로 눌렀다. 야, 반칙하지 마라. 더 긴장이 되었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하고 싶었다. 뭐라도 기록을 써야 했던 선생님은 '이러면 측정이 안되잖니! 반동을 줘서 밀어봐!'라며 기어코 반동을 권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용수철처럼 몸을 앞뒤로 움직이다 탁, 하고 기구를 간신히 밀쳐냈다. 2cm.


속상했다. 난 운동 잘하고 체력 좋은 멋있는 어린이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래 달리기를 할 때면 목구멍에 피가 올라와도 꾹 참고 악을 쓰며 달렸고, 철봉에 매달리기 역시 보통 또래 여자 애들이 1, 2초 매달리고 떨어질 때 나는 속으로 애국가 1절을 끝까지 다 부르고 나서야 미끄러지듯 내려왔었다. 하지만 운동을 잘하고 싶은 내 바람과는 다르게 나의 타고난 운동 신경은 하위 10%에 준하는 것이었다. 운동회에서 모두의 응원과 박수를 받는 계주 선수가 꿈이었지만 단거리 달리기라면 나는 반에서조차 꼴찌를 도맡아 했고, 피구를 할 때도 피구왕 통키처럼 멋지게 공을 던지고 싶었지만 현실은 키 큰 애가 던진 공을 제대로 피하지도 못해 쌍코피가 나거나 하는 식이었다. 누가 애매한 재능이 더 괴롭다고 했던가. 아니. 재능이 아예 없어도, 되고 싶은 모습이 될 수 없으면 슬퍼지기 마련이다.


그럼 처참한 마음을 안고 집에 와서 유연성 연습을 했냐고? 천만의 말씀. 칭찬을 해줘야 더 열심히 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못하는 것은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고, 되려 미워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 그 날 이후 나는 스스로를 유연성 없는 사람으로 정체화 한 뒤, 유연성을 기르는 일체의 운동은 멀리했다. 그중에서도 전굴은 내 인생에 더 없는 것으로 만들고 나도 전굴을 미워하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가끔 기회가 생겨하게 된 요가 수업에선 특히나 햄스트링을 밀고 당기고 늘리는 동작들이 많았는데 무슨 동작을 하든 난 '엉거주춤'했다. 무릎이 안 펴지거나 손이 안 닿거나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나처럼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매끈한 요가복을 입고 있었고, 몸을 이리저리 쭉쭉 늘리고 있었다. 예뻤다. 하지만 그 몸은 내 몸이 아니었다. '엉거주춤' 서 있을 때면 나는 더욱 작아졌다. 다른 동작은 연습하면 된다고 쳐도 몇몇 동작은 내가 아무리 해도 따라 하지 못할 것 같았다. 햄스트링을 늘리는 동작마다 다른 사람들은 시원해진다는 데 난 시원해 지기는커녕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악. 사람들은 도대체 이걸 왜 하는 거야!? 돈 내고 고문받는 기분이야!'


이런 내가 뜬금없이 요가를 시작하기로 한 건 사실 아주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겨울이면 집 온수는 내가 원하는 만큼 뜨겁게 나오지 않았다. 애매하게 따뜻하달까. 게다가 화장실엔 외풍까지 있어서 옷만 벗으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추웠다. 그러니 물줄기 시작 지점에선 따뜻했던 물도 찬 공기를 만나 자유낙하를 하다가 내 몸에 닿을 쯤이면 미지근해지고야 마는 것이고, 그 마저도 물이 닿은 그 지점만 미지근하여 몸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는 어쩐지 서늘한 느낌까지 들었던 것이다. 추운 겨울날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는 기분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야 직성이 풀리고, 뜨거운 물로 오래 씻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 해 겨울엔 절대 집에서 씻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온수 설비가 갖추어져 있는 샤워실을 이용하기 위해 헬스장을 등록했고, 마침 헬스장에서 요가 프로그램을 할인한다고 이게 더 이득이라며 권하기에 못 이기는 척 같이 등록했던 것이다. 아,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이자면 그즈음 만나던 사람이 뭐든 좋으니 운동을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아무튼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 헬스를 열심히 할 것 같진 않았다. 굳이 다이어트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울끈 불끈한 몸을 만드는 데도 관심이 없으니까. 요가 수업이 있으면 뭐라도 따라 하겠지 싶은 마음으로, 실은 겨울에 헬스장 샤워실이나 쓸 요량으로 등록했던 것이다. 늘 그렇듯 시작은 대단한 이유가 없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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