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인생을 너무 치열하게 살고 있나라고 생각해본 적 있었다. 그 치열함의 결과가 허무했을 때는 왜 이렇게 살았나라는 푸념과 함께 깊은 후회감과 상실감이 몰려온 적도 있었다.
돈이나 지위 같은 물질적인 것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노력했으나, 결과적으로 내 통장, 내 신세를 봤을 때 심하게 허탈했다.
행복과 사랑을 위해 내 자존심을 다 버렸으나, 나를 잃고 사는 모습을 보았을 때 깊은 상실감을 맛보았다. 버려진 자존심들과 함께 모든 것을 버려버린 것 같았다.
인생의 목표들을 이루기부터 일상 속 작은 편의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들은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지하철 자리에 앉기 위해 열심히 옆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 혹은 정규직 전환을 위해 상사에게 힘껏 잘 보이려는 사람들이 그렇다.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결국 지하철 자리를 쟁취하거나, 취업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을 때 비로소 행복감을 얻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그리 대단한가 싶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만큼 대단한 목표는 없었을 것이다.
나도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고 충분히 공감 갈만한 상황들이다. 하지만 이 과정들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들을 간과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겠다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쟁탈전을 했을 때 느끼는 긴장감, 맘에 들지 않는 상사에게 아부를 하면서 느끼는 치욕감과 비굴함들.
철을 내려놓으면서 어떤 스트레스조차 받기 싫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줄 쟁탈전을 하기 싫어서 그냥 앉아서 여유롭게 기다렸고, 천천히 탔는데도 두세 정거장만에 자리가 났다.
맘에 들지 않는 상사에게 아부를 하기 싫어서 퇴사를 했고,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위해 내 인생을 쓰는 것에 가치를 느끼고 있다.
나를 위해서 무리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싫었다. 남에게 봉사를 하거나 베풀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다. 단순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치는 것이 보기 싫었고,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공을 낚아채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 나는 적어도 그런 추한 모습이 되기 싫었을 뿐이다.
상대방을 의식하며 치열하게 살아서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 치열함에 지칠 성격이라면 애초에 치열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찾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그 속에서 목적을 위한 치열함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열정을 찾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