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정신 차릴래? 난 여름 많이 타는 편이야!
가끔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허황됨, 억지스러움, 뻔뻔스러움을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듣고 있기가 어렵다. 그냥 듣고 있어야 할까? 나만 좋으면 되므로 내 일 아니니 영혼 없는 리스닝을 하고 넘겨야 할까? 그래도 뻔히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기는 참 쉽지 않다. 아니면 순간의 불편함을 참고 무례함을 계속 참아줘야 할까? 계속 반복된다면 이 또한 견디기 어렵다. 이럴 땐 강력하게 한마디 해줘야 한다.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정 선을 넘는다면 나는 참지 못한다.
이 분이 또 내게 오셨다. 아무 근거도 행동도 없이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 저번에도 그렸고 이번에도 그리고 있다. 이렇게 그리기만 할 거면 그냥 '화가'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보인다. 평생 이럴 것 같아서 세게 한번 이야기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your senses’는 너의 제대로 된 정신 상태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정상적인 상태) 언제쯤이면 정상으로 돌아올 거냐는 말이다. 뭔가 부모가 철없는 자식한테 하는 말 같아서 익숙하면서도 훈훈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 뭔가 이번엔 달라졌다. 계획이 나름 구체적이다. 그런데 조건이 좀 많이 생겼다. 내게 뭔가 부탁을 들어주면 다 잘 될 거란다. 돈도 좀 빌려주고, 차도 빌려주고, 보증도 서주고 등등. 하, 이놈은 정말 대단하다. 일침을 놓아주자.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스스로 뭔가 할 생각은 안 하고 결국 남에게 기댈 생각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뿐일까?
그리고 이어지는 무례함의 끝을 달리는 이 녀석의 뒤끝들. 쪼잔하다는 둥, 있는 놈이 더하다는 둥, 별거 아닌 것을 안 도와주냐는 둥. 안 되겠다 이제 이 녀석이랑은 끝이다.
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자리를 박차고 돌아섰다. 뒤에서 뭐라 뭐라 특유의 찡얼거림이 들린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을 낭비할 수 없다.
언제나 시작이 어렵다. 처음 만난 사람이든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든 대화의 출발은 어렵다. 어떤 말을 꺼내야 덜 어색할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지만 신통치 않다. 심지어 영어로 한다고 생각하면 손발과 온몸이 쪼그라든다. 그래도 살아야 하고 해내야 할 때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그럴 때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표현을 가져왔다. 이것들이 힘겨운 그 시간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라며.
어색하게 사적인 대화를 시작할 때 날씨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날씨 이야기가 끝나면 할 이야기가 없다. (이건 한국어든 영어든 매한가지) 그러다가 누군가 고민 끝에 한 발짝 더 나아가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난 여름/겨울 많이 타는 편이야.’ 이건 영어로 뭐라고 하면 좋을까? 좋은 건 Like, Love, Enjoy라고 대충 둘러대면 통할 것 같은데 싫어한다면 Don’t like? Hate? 여러 표현이 있는 것 같지만 난 이 표현이 심플하고 딱 마음에 들었다.
직역하면 여름이 나한테 영향을 크게 준다는 뜻. 많이 탄다는 우리 말이랑 딱 통하지 않나 싶다. 앞의 말만 바꾸면 물건이든 사람이든 뭐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날씨 이야기가 끝나면 계절 이야기로 대화를 살려보자.
자, 날씨 이야기도 끝났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한국어도 힘든데 영어는 오죽하랴. 이때 우리 인간의 공통 소재가 있다. 바로 먹을 것 이야기. 맛있는 음식이야 다 똑같이 맛있으니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 ‘나 이거 맛있어. 저것도 맛있어.’ (곧 한계에 도달함) 좀 색다르게 ‘난 이 음식 못 먹어’라고 해보자. 혹시 비슷한 취향이라면 공감대가 생겨나고 아니더라도 ‘이 녀석은 도대체 왜 이걸 못 먹지?’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럼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그냥 늘 하는 Don’t like? Hate? (아는 게 이거뿐임) 어디선가 고급스러운 표현을 찾았다.
이렇게 말하면 가지를 못 먹는다는 표현이 된다. 굳이 직역해보면 '가지는 나랑 동의하지 않아 or 가지는 나와 함께 할 수 없어 or 가지는 나를 기쁘게 할 수 없어.' 정도일까? 이것도 앞의 단어만 바꾸면 뭐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싫어하든 안 하든 생각나는 음식을 죄다 넣어서 이야기한다면 오랜 시간 대화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다 싫어한다고 하면 이상한 놈 취급받을 수도 있겠다. 이제 음식 이야기할 때 ‘나 이거 못 먹어.’도 써보면 좋겠다.
너무 혼자서만 떠들면 힘들고 지친다.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보며 나는 좀 쉬면서 남은 대화를 풍성하게 채워보자. 이럴 때 쓰는 ‘What do you think?’는 교과서에도 많이 보아온 말이다. 그럼 이건 들어보았는가?
'Reckon'? 옥수수 종류인가? 동사로 추정된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처음 들은 말이다. 'Reckon'은 ‘뭐뭐라고 생각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Think와 같은 뜻이다. 미국 영어에서는 들어보지도 배워보지도 못한 단어다. ‘넌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호주, 뉴질랜드식 표현으로 자주 듣는다. 호주, 뉴질랜드 사람을 만나면 꼭 한 번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