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 다시 보는 남자 #14
연로한 네로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 앞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네로 : 쉬잇. 까미 조용히 해. 잘 들어. 할아버지는 지금 많이 아프시니까, 푹 쉬시게 조용히 해야 해.
네로는 밤 새 할아버지를 간호한다.
이 장면을 보다 얼마 전 엄마의 수술 기억이 떠올랐다.
그 날,
엄마의 수술이 끝났다.
멍하니 병원 모니터를 바라보다 하릴없이 책에 눈길을 꽂았다.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았다. 모니터에서 엄마 이름 옆 '수술 중'이라고 발광하던 텍스트는 '회복 중'으로 바뀌었다. 수술이 끝났구나. 마취가 깨어날 때까지 '회복 중'이란 텍스트는 찬란하게 번뜩이겠지. 아침에 꾸물거리던 날씨는 온데간데없고 여름은 열기를 실컷 뿜어내고 있었다. 은빛 수술실에서 십 수개의 눈동자와 손들이 달라붙던 엄마의 몸에 의식이 달라붙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간호사는 한 시간 정도 회복실에 있을 것이라 말했다. 수술실 공기의 싸늘함이 몸에 엉겨 붙어 떨고 있을 엄마를 떠올렸다. 내 주위의 공기가 단단한 물성을 지녀 사방에서 내 몸을 조여 오는 것만 같았다.
두 명의 간호사가 침대를 밀고, 의식이 밀려들어 온 엄마를 병실로 데려왔다. 엄마는 하얀 침대 시트 위에서 생의 날것의 언어로 고통을 뱉어냈다. 언어를 배우기 전 인간의 소리로 고통을 표현했다면 이랬을 것이다. 육체의 고통을 어금니 사이로 흘려보내는 엄마의 모습은 생경하다. 미지근한 병원 공기가 비릿해졌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가족들 사이로 병실 간호사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체온을 재고 혈압을 쟀다. 정상이다. 간호사는 수술 잘 됐다고 말했고, 마약 성분의 무통 주사가 들어가고 있고, 이 주사는 독해서 15분에 한 번씩 들어가고, 식사는 6시간 뒤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나는 병원 모니터를 바라보던 눈으로 엄마를 바라봤다. 모니터를 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까처럼 엄마를 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옆에 있었다. 엄마 옆에 있으니 나도 위액이 밀려 나오는 기분이 들어 입이 쓰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물을 마실 수 없는 엄마의 입을 가재 수건으로 닦아줬다. 병원 밖은 여름의 일을 열심히 하며 뜨거웠고, 병실은 선선한 에어컨 바람이 불고 있다. 엄마는 발이 시리다. 간호사에게 부탁해 이불을 하나 가져와 발을 덮어주었다.
네로 : 할아버지 일어나면 안돼요. 오늘은 푹 쉬셔야 해요.
네로 할아버지 : 푹 잤더니 훨씬 편해졌다. 그래 내 걱정을 마라.
네로 : 그래요? 다행이다. 할아버지 그럼 전 파트라슈랑 우유 배달하러 갔다 올게요.
네로 할아버지 : 미안하구나.
의식이 돌아온 엄마는 소처럼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너도 수술할 때 이렇게 아팠겠구나,라고 말했다. 아파서 눈물이 비집고 새어 나와 팅팅 부은 눈이다. 나는 너스레 떨며 엄마 수술인데 무슨 그런 말을 하냐고 했고, 지금은 걸을만한 두 다리를 덜렁 들어 올리며 별로 안 아팠다고 말했다. 이건 거짓말이다. 눈물이 안 나올 뻔했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알약 두 봉지 입에 털어 넣은 듯 쓴 입에 생수를 들이붓고 힘껏 애교를 부려봤다. 있는 힘껏 고통을 맞이하는 엄마도 쓴웃음을 지었다. 병실 옆 환자들은 저녁 식사를 배식받고 있었다. 각자 1인분의 삶 앞이다. 밥 냄새, 국 냄새, 김치 냄새, 약 냄새, 피 냄새가 공존하는 평화로운 공간이다. 옆 침대 아주머니들은 식판 위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달그락 거렸고, 나는 15분마다 누를 수 있는 무통주사 버튼을 묵직하게 눌렀다.
네로 할아버지 : 그동안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구나. 파트라슈, 만약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네로를 잘 부탁한다.
파트라슈 : 킁
네로 할아버지는 네로와 앞으로 함께하지 못할 것을 직감한다. 언젠가는 헤어질 것이지만, 헤어지는 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아는 건 힘든 일이다. 고등학교 때 배운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에서 주구장창 외려 입에 올렸던 ‘회자정리 거자필반’을 계속 떠올렸다. 주문처럼 말이다. 만났으니 헤어질 날은 반드시 올 거다. 그래도 지금은 아니었으면 한다.
다행히 엄마는 지금 괜찮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