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한 게 없어요
헬스장 가서 제일 많이 하는 생각: 오늘 뭐 하지?
헬스장에 개인 운동하러 가는 길에, 그리고 탈의실에서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아무래도 오늘은 뭐 할까, 인 것 같다. 나만 그런 거면 말고.
인간은 누구나 주인님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고뇌할 때 다들 말하지 않는가? 아, 누가 좀 골라주면 좋겠어! PT 수업을 받을 때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만 따라가면 되는데 개인 운동은 고뇌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고뇌하는 '척'이다.
공부든 운동이든 하기 싫은 것을 해서 보충하는 게 맞다. 누구나 그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고뇌하는 척하면서 유예하는 삶을 살고들 있다. 끝없는 유예의 까닭은 하기 싫고, 하기 싫어서 잘 못하고, 잘 못하니까 또 하기 싫고... 그런 거지 뭐. 아아, 악의 굴레에 사는 가여운 운명의 인간들이여.
아무튼 이 산만한 도입의 결말은 브이스쿼트를 하라는 것이었다. 오늘 운동 뭐 하지? 싶을 때는 일단 브이스쿼트를 하면 좋다. 머신으로 가동 범위를 제한해 놓기 때문에 그냥 바벨스쿼트를 할 때 보다 안정적인 궤도에 머문다. 그만큼 부상의 위험이 낮다.
발목 가동 범위가 안 좋은 사람들은 더더욱 브이스쿼트가 도움이 된다. 판이 약간 기울어졌기 때문에 나의 부족한 가동 범위를 덮어준다. 범위가 제한돼 있으므로 안심하고 더 깊이 앉는 데에 집중해 보자. 어느 날 바벨 스쿼트에서도 깊게 앉을 수 있다. 경험담이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어: 뭐가 바뀌긴 했을까?
브이스쿼트에 처음 올라가던 날이 떠오른다. 발목의 가동 범위가 심각하게 좁았기 때문에 그냥 스쿼트를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기울어진 판에 올라서서 천천히 앉았다가 일어나...지 못했다.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하단 구간에서 힘을 쓸 줄 몰랐던 탓이다.
위의 문단에서 깜짝 놀라서 브이스쿼트를 하려던 마음을 접어버렸다면, 미안합니다. 그런데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마세요. 나자빠진 날로부터 불과 이틀 후에는 잘 일어났으니까요.
브이스쿼트 머신에서 내동댕이쳐진 그날은 창피했고 그다음번에는 자신이 없었다. 또 뒤로 나뒹굴지 않을까? 고작 이틀 만에 많은 게 달라졌을까? 복잡한 기분으로 머뭇댔다. 트레이너는 재촉하지 않았다. 내겐 수 분 같이 느껴졌지만 아마 수 초에 불과했을 생각은 찾아올 때처럼 빠르게 흩어졌다.
머뭇대면 어쩔 것이냐. 이미 PT 수업에 내 발로 왔는걸. 그런 생각으로 올라섰다. 대단한 용기나 결심 같은 건 없었다. 역시 인생에는 주인님이 필요하다니까? 참고로 그 PT 수업의 주인님은 나도, 트레이너도 아닌 비싼 수업료였다.
브이스쿼트가 힘들어서 메인 운동으로 잡아야 했던 시기를 아주 빠르게 지났다. 나는 운동 시리즈를 연재 중이고, 대단히 열심히 운동을 하는 척 하지만 진지한 얼굴로 깔짝거리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헬창 형님들에 비하면 갓 뒤집기 들어간 애기다. 응애.
이제는 브이스쿼트 정도는 보조 운동으로 가볍게 합니다. 바벨로 스쿼트를 하는 데 집중하고 있고요. 몸은 순식간에 바뀐다는 걸 매일 깨달으며 뒤집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응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