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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솔 Mar 29. 2024

페퍼민트

희망의 노래

봄부터 숲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흙을 밀어 올리는 어린 싹들을 보이는 대로 잘라 먹었다 나는 상큼, 풋풋함을 외치며 숲에서 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게 시들먹해졌다 연두는 초록으로 부드러움은 거칠음으로, 나무도, 풀도, 지나간 노래의 여운도, 작은 여행도, 회전목마 같은 삶도, 저마다 향기를 버리고 억세어지기 시작했다 숲에서 먹을 것을 찾던 얄팍한 시간이 지나자 이번엔 나를 숨길 곳으로 뻔뻔하게 숲을 찾는다 휘파람을 불 수가 없어, 그저 마음속 오물을 쏟고 싶어 왔을 뿐이야      


테라스 페퍼민트 잎마다 진딧물이 꼬였다 비비 꼬인 속앓이를 받아먹고 자란 탓, 뿌리만 남긴 채 억센 줄기를 모조리 잘라버렸다 거친 손끝에서 풋내가 난다 푸른 핏물이 흐른다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고 다시 바람이 지나갔다 줄기가 잘려나간 자리에 부드러운 연둣빛, 손을 비비면 거짓말처럼 향기로운, 시들먹했던 마음이 꿈틀, 돋았다     


빨라징끼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김광석의 노래를 듣는다 농담처럼 나는 서른으로 돌아가고, 담담하게 이어폰의 볼륨을 올리고, 입안으로 녹아드는 음식처럼 달콤하게 산책을 나선다 어느새 블타바엔 비가 그쳤다 햇살이 눈부시다 바람이 쥐고 있던 씨앗 하나 강물 위로 떨어진다 푸른 싹을 틔우며 흐르겠구나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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