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빛의 세상
이것은 오드아이인 나의 이야기다. 두 개의 눈으로 본 하나의 세상,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무한한 사랑의 이야기다.
나는 깊은 산속 외딴집에서 도자기를 굽는 집사와 둘이 살고 있다. 이 집은 늘 조용하다. 인적이 드문 곳이니까. 그러나 가마에 불을 지피는 날과 가마에 불을 끄고 기물을 꺼내는 날이면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든다. 1년에 한두 번이지만 그때서야 나는 사람구경을 많이 한다. 가마 위에 올라가 납작 엎드려서 온기가 남아있는 따뜻한 흙가마를 제대로 즐기면서 말이다.
나의 세상은 두 가지 색으로 나뉘어 있다. 한쪽은 깊고 신비로운 푸른빛, 다른 쪽은 따스한 황금빛. 이 특별한 시선으로 나는 항상 집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물레를 돌리며 흙물을 부드럽게 비비는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내 눈에 물감처럼 번지곤 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오늘 집사의 방은 온통 어수선하다. 평소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옷가지들이 마치 폭풍이 지나간 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커다란 여행 가방이 입을 벌린 채 놓여있다. 나는 그 가방 앞에 앉아 집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의 눈에서 깊은 슬픔과 굳은 결의가 교차하는 것을 감지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그가 떠나려 한다는 것을. 내 심장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미안해, 오드아이." 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그를 보내줄 수 있겠는가? 나는 우아하게 일어나 그의 가방 안으로 살그머니 들어갔다. 그가 나를 데려가길 간절히 바라며 부드러운 털로 가방 안을 문질렀다. 하지만 그는 한숨과 함께 가볍게 나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안 돼, 넌 여기 있어야 해." 그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틀 후에 예쁜 집사가 올 거야, 내가 없는 동안 널 잘 돌봐줄 거고, 그러니 잘 지내고 있어 응?" 뭐야 그럼 너 혼자 어디론가 가겠다는 거야?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왜 인간들은 이렇게 복잡한 걸까? 떠나고 싶지 않으면서 떠나려 하고, 사랑하면서도 등을 돌리려 한다. 나의 세계는 단순하다. 나는 그저 그와 함께 있기를 원할 뿐이다. 그의 온기, 그의 손길, 그의 목소리가 내 전부인데.
밤이 깊어갔다. 집사는 불안한 듯 뒤척이며 잠들었지만, 나는 깨어있었다. 조심스레 그의 가슴 위로 올라가 귀를 기울였다. 둠칫, 둠칫. 그의 심장 소리가 내 세상의 전부였는데. 이제 이 소리는 멀어져 갈 것이다. 내 귀에 각인된 이 리듬을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나는 그의 체온을 느끼며 가르릉 소리를 냈다.
새벽이 차갑게 밝아오고, 집사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에는 흔들림 없는 결심이 서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제발, 가지 마. 내 목구멍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창가에 앉아 그의 자동차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창가에 앉아 그가 되돌아오기만 기다렸다. 햇살이 사그라지고 창 아래 오그라졌던 분꽃이 다시 활짝 필 때쯤이면 나는 더욱 그가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울었다. 그러다 보면 금세 어두워지고 하루가 갔다.
그가 떠나고 이틀이 지났다. 낯선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탁자밑에서 잠을 자던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에 집중하며 창쪽으로 갔다. 창밖엔 내 집사의 차가 놓여있다. 나는 그가 돌아온 줄 알고 현관 앞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문이 열리더니 긴 머리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 그녀에게서 내 집사의 향기가 희미하게 풍기고 있었다. 나는 낯설지 않은 그 향기에 끌려 그녀의 발 앞에 앉았다.
"안녕, 오드아이. 나는 네 새로운 친구야." 나는 그녀의 다리를 슬쩍 스치고는 그냥 탁자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거부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기뻐하며 내 앞으로 다가와 상냥하게 이야기를 했다.
"오드아이, 난 네 집사의 오랜 친구야. 너의 집사가 마음을 정리할 일이 좀 있어서 여행을 떠났어. 여행하면서 기분전환하고 돌아오면 나아질 거야. 그동안 내가 너와 함께 지낼 거니까 잘 부탁해." 그래, 한동안 침통하고 멍한 모습으로 앞산만 바라보더라니 흥, 서울 여자하고 헤어졌구나 매일 전화하던 서울의 그 여자, 나도 본 적 있지. 아무튼 인간들은 알 수 없다니까. 나는 왠지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새 집사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떠난 그의 책상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다. 가끔 산책을 하러 나갈 땐 내가 따라나서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곳 지형은 그녀보다는 내가 더 익숙하니까 그녀는 나를 따라 숲길로 들어서곤 했다.
그녀는 친절했다. 하지만 나의 집사는 아니다. 나는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배신감일까, 아니면 그리움일까. 내 두 눈이 각각 다른 감정을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밤이면 나는 여전히 창가에 앉아 있었다. 달빛에 내 눈동자가 창에 비쳤다.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을 네 집사가 알았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괜찮아, 너의 집사는 꼭 돌아올 거니까." 그녀의 목소리에 따뜻함이 묻어났다.
여름이 지나면서 나는 새 집사의 생활 리듬에 조금씩 적응해 갔다. 그녀가 글을 쓸 때는 조용히 옆에 앉아 있다가, 휴식을 취할 때면 그녀의 무릎에 올라가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녀의 손길이 내 털을 쓰다듬을 때면, 나도 모르게 작은 그르렁 소리를 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은 이곳에, 다른 한쪽은 저 멀리 어딘가에. 내 특별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보는 것 같았다. 현재의 평화로운 일상과, 언젠가 돌아올 그에 대한 기다림의 세계에서 우울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공방 옆에 있는 흙가마 위에 올라가 앉아있곤 했다.
어느 날 오후였다. 나는 공방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집 안에 감돌았다. 새 집사의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고, 그녀의 손은 떨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발치에 앉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녀의 불안한 기운에 나도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음... 오드아이, 내가... 잠시 서울에 갔다 와야 할 일이 생길 것 같아. 하루정도 혼자 있는 건 괜찮지?" 무슨 일이야? 나도 가면 안 돼? 아니지 난 나의 집사를 기다려야지. 그래도 혼자는 좀...
나는 그녀에게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따라가겠다고 보챌 수도 없는 처지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가 기다렸던 전화인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응, 그래 알겠어. 지금 출발할게. 진짜 괜찮은 거지?" 그녀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떨렸다.
나는 그녀의 발치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 현관으로 갔다. 그녀는 서둘러 외투를 걸치고 신발을 신었다. 나는 그녀가 떠나려는 것을 보고 불안해졌다. 작은 울음소리를 내며 그녀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오드아이, 미안해. 금방 돌아올게." 그녀는 자동차를 몰고 나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홀로 남겨졌다.
-다음주 오드아이II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