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는 마치 천 개의 북이 동시에 울리는 것 같았다. 물보라가 하늘로 치솟아 무지개를 만들어내고, 그 아래로 펼쳐진 에메랄드빛 물줄기는 살아 있는 듯 꿈틀거렸다. 당신은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사람들 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당신의 눈에 들어온 건 한 마리의 야생 고양이었다.
이과수의 초록빛 장막을 뚫고 나온 고양이는 무심하게 관광객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반대편 숲을 향해 느긋하게 걸었다. 사람들은 감탄사를 내뿜으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당신은 폭포 쪽으로 걷다가 걸음을 멈췄고 그때, 숲 쪽으로 길을 건너온 고양이는 당신과 눈이 마주쳤다. 그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몸집이 커지더니 황금빛 눈동자가 더욱 선명해졌고, 털의 무늬도 복잡해졌다.
고양이의 황금빛 눈에 당신의 모습이 비쳤다. 다른 이들에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본 듯, 고양이의 귀가 쫑긋 섰다.
"고양이... 아니, 뭔가 더 큰 것 같은데?"
당신은 의아해하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고양이의 시선은 흔들림 없이 당신을 향해 있었다.
그 눈빛에는 호기심, 경계,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마치 당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듯한 그 눈빛에, 당신은 잠시 넋을 잃었다.
2004/아르헨티나쪽에서 찍은 이과수폭포
*
호텔은 이과수 폭포 관광단지 안에 있었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정원에서 폭포 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드넓게 펼쳐진 폭포가 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곳이었다. 사방에서 물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이곳을 당신은 숙소로 잡았다. 9년 전 처음 브라질에 왔을 때 이과수 폭포를 보러 왔던 적이 있다. 그때는 시내의 관광호텔에 묵었었는데 이과수 국립공원 안에 들어와 보니 너무 근사한 곳에 호텔이 있었다. 다음이 언제 일지는 모르지만 막연히 그때 다짐했었다. 다음에 올 땐 반드시 이 호텔에 묵으리라.
당신은 침대에 누웠다. 12시간의 시차 때문인지 대낮인데도 눈이 감겼다. 당신은 왜 지구 반대편 끄트머리에 와 있는지 곰곰 생각하는 중이다. 무엇이 당신을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한국에서 상파울까지 비행기로 24시간 이상을 날아왔고 상파울에서 이과수까지 비행기로 2시간 남짓 걸렸다.
중간중간 대기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다 합치면 30시간 정도를 날아서 이과수 국립공원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브라질 쪽에서 본 폭포는 영화 '미션'에서 보았던 폭포, '악마의 목구멍'이 절정이었다. 그 앞에 섰을 때 당신은 떨어지는 물소리에 압도되어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우주의 한 점에도 못 미칠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그곳까지 걷는 동안 병풍처럼 펼쳐진 폭포들만 바라보며 걸었다. 바라 보이는 쪽은 아르헨티나였다.
*
당신은 고양이를 만났던 그 폭포 쪽으로 향했다. 오늘은 데크길이 아닌 관광객들이 잘 가지 않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모습이 마치 천국의 문을 연상케 했다. 당신은 그냥 숲이 좋았다. 그때, 덤불 사이에서 노란 눈동자가 반짝였다. 어제 본 그 고양이었다. 당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천천히 다가왔다. 흡사 새끼 호랑이의 움직임처럼 보였다.
"안녕, 인간.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신은 눈을 깜빡였다. 귀를 의심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입이 바짝 말랐다.
"나... 나 지금 고양이랑 대화하고 있는 거야?" 당신은 중얼거렸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첫 충격이 지나가자 마음 깊은 곳에서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듯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알고 있나요? 당신은 특별해요. 당신 안에 잠들어 있는 어떤 힘을 깨우려고 왔을 거예요.."
당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울리는 게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셀롯의 말에 당신은 혼란스러웠다. 동시에 이상한 안도감도 느껴진다. 마치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답을 드디어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다. 알 수 없는.
"내 안에 잠든 힘이라고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당신이 조심스레 물었다.
"당신은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어요. 하지만 그동안 그걸 모르고 살아왔죠. 아니 못 느끼고 살았을 거예요. 이곳 이과수는 당신의 그 능력을 깨우는 데 가장 적합한 곳이에요. 나는 어제 당신을 알아봤어요"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뭇잎들의 속삭임, 땅속 벌레들의 움직임, 멀리서 들려오는 폭포수의 울림까지... 당신은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이... 이게 내가 가진 능력인가요?"
당신의 목소리가 떨렸다. 두려움? 희열? 아니면 그 모든 것이 뒤섞인 감정이었을까.
오셀롯은 눈을 두 번 깜빡였다.
"맞아요.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지요. 당신은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당신의 선택에 달렸어요."
"무슨 말인지..."
오셀롯은 깊은 두 눈을 당신에게 응시한 채 그대로 서 있다가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당신은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이제 당신 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는 듯했고, 그 세계로의 여정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당신은 오늘 폭포 관광을 포기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으로 호텔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이과수의 풍경이 어제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나무들의 속삭임, 새들의 지저귐, 심지어 벽 속 파이프의 물 흐르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
다음 날 아침, 당신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제의 신비로운 경험이 마치 꿈만 같았다.
'어제 일은 현실이 맞나? 혹시 시차 때문에 피곤해서 꿈을 꾼 걸까?' 하고 생각한다. 오셀롯이 당신에게 말을 건넸고 당신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수수께끼 같은 의문을 품고 다시 폭포 쪽 숲길로 향했지만, 오셀롯은 보이지 않았다. 당신은 실망감과 함께 어제의 경험이 정말 현실이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시에, 무언가가 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주변의 소리와 냄새가 어제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당신은 예약된 사파리를 위해 지정된 장소를 찾아 발길을 돌렸다. 정글 같은 열대 숲을 끼고 폭포 아래 강 쪽으로 길이 나 있었다.
그때, 당신의 귀에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도와주세요..."
처음엔 환청인가 싶었지만, 곧 그 소리의 근원을 발견했다. 바위 옆 낮은 풀섶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누워있었다. 당신은 어제의 경험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새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자, 어제 느꼈던 그 특별한 감각이 다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당신은 놀라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잔잔했다. 당신은 조심스레 새를 들어 올렸고, 그 순간 당신의 모든 감각이 깨어났다. 새의 깃털 하나하나가 손끝에 선명하게 느껴졌고, 그 작은 심장의 고동이 당신의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 왔다.
주변의 소리가 갑자기 선명해졌다. 근처 폭포 소리는 마치 당신의 코앞에 펼쳐진 것처럼 우렁차게 들렸고, 나뭇잎들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는 살아있는 것들을 위한 속삭임처럼 또렷했다. 공기 중의 습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열대 식물들의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그 향기 속에서 당신은 이과수의 역사와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새의 고통과 두려움이 마치 당신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작은 새의 날고 싶은 욕구가 당신의 가슴을 쿵쿵 울렸다.
당신은 떨리는 손으로 그 작은 생명체를 감싸 안았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오직 새의 심장 박동만이 들리는 것 같았다.
"괜찮아, 도와줄게." 당신이 속삭였다.
순간, 손바닥에서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새의 꺾였던 날개가 천천히 펴지고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몇 분 후, 작은 새는 당신의 손에서 날개를 퍼덕이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당신은 깊은 피로감을 느꼈다. 숨을 깊게 들이쉬어도 폐부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가슴속에는 따뜻한 만족감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당신은 흥분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이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자연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당신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
평범했던 일상이 단 며칠 만에 완전히 뒤바뀐 것 같았다. 새로 발견한 능력은 흥미롭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컸다.
"이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은?" 당신은 중얼거렸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이 충돌했다. 집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잊고 싶은 마음과, 이 신비로운 여정을 계속하고 싶은 호기심이 팽팽히 맞섰다.
그때, 주변의 나무들이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네 운명을 받아들여.'
당신은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들의 바스락거림, 멀리서 들려오는 폭포 소리, 작은 곤충들의 움직임까지. 모든 것이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당신은 중얼거렸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있을 거야."
그 때, 숲길 옆에서 오셀롯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 눈빛에서 당신은 무언가를 느꼈다. 두려움? 기대? 아니면 운명? 오셀롯은 당신을 부르며 다가오는 것 같기도 했다.
당신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었다. 마음속의 불안과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건 내 운명일지도 몰라. 두렵지만... 이 여정을 계속해야 할 것 같아."
당신은 결심했다. 많은 것이 불확실하고 두렵지만, 이 능력이 주어진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그래, 난 준비됐어." 당신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오셀롯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그 한 걸음은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첫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