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꽤나 황당한 일을 겪었다.
발단은 이러했다. 우연히 인디드에서 날아온 메일을 클릭했더니 IT 분야에서 마케팅 경험을 가지고 있는 프리랜서 작가를 구한다는 공고가 있었다. 막연히 프리랜서를 동경하던 나로선 솔깃할 만한 공고였다. IT 분야에서의 마케팅 경험을 4년 이상 가지고 있었으니 조건에도 맞았고, 한창 재직 중일 땐 콘텐츠 마케팅의 일환으로 IT 분야의 글들도 꽤 많이 썼었다. 게다가 보수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높았기 때문에 지원을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당장 이력서를 넣었고, 예상대로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왔다.
당사는 부산에서 꽤 사업을 오래 해 온 기업임을 이야기하며, 부산에서는 입지가 있지만 사실 기업이 아닌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며, 앞으로 운영할 블로그에 올릴 콘텐츠를 쓸 작가를 찾고 있다는 요지의 전화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직까지 정확하게 어떤 대상을 타깃으로 할지도 정해지지 않았고 운영할 채널도 정해지지 않았다며, 내 이력에 적힌 내용을 이야기하며 기업 대상 블로그 운영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여기까진 뭐,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가 그 당시에도 쎄했는데 현재 일을 하고 있느냐, 본가가 부산이냐. 등의 질문을 꽤나 자세히 물어봤다. 프리랜서 작가를 구한다면서 면접 보듯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뭐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는 생각을 했고 한번 미팅을 했으면 한다는 이야기에 미팅 날짜를 잡았다. 전화할 당시만 해도 나에게 일을 맡기고 자사 채널의 운영에 대해 코칭을 해달라는 느낌으로 대화가 이어졌기에, 회사에 대한 리서치를 어느 정도 진행했고, 어떤 식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낼지 방향성을 고민해서 미팅 날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서 나를 맞이한 사람은 자신을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아 부대표가 되었다고 소개하며, 자신의 회사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했다. 그리고선 질문 폭격이 이어졌는데, 주로 이전 직장에서는 어떤 식으로 마케팅을 했는지,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팀에 몇 명이 있었고 어떤 식으로 내가 마케팅을 했는지에 대해서였다. 공고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었지만 이 역시 경력과 경험을 증명하는 자리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질문은 점차 자신의 고민 상담으로 이어졌다.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회사라 어떤 채널을 통해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둥, 자신들이 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계속적인 조언을 구하는 형식이라 점차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 갑작스러운 어퍼컷이 날아왔다.
콘텐츠를 쓰려면 회사와 제품에 대해 아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본가가 부산인 것 같은데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부산 본사에서 출퇴근을 해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내가 미팅을 한 곳은 서울의 구로디지털단지 부근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내가 현재 일을 하지 않고 있고, 본가가 부산이라 해서 본인 멋대로 나를 부산에서 출퇴근시키려 한 그 정신머리(!)에 대해 심히 놀랐고, 여기서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싶었다. 이미 이 시점에서 이 일은 날아갔음이 분명했고, 마음 같아서는 따져 묻고 싶었다. 분명 전화 통화를 할 때만 해도 이 일은 재택으로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냐고!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대답은 차분하게 나왔다. 지금 서울에서 하고 있는 다른 일들이 있어 그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지만 필요하다면 새로운 채널 운영과 콘텐츠 작성을 위한 자문 겸으로 프리랜서 계약을 진행하는 건 가능할 것 같다고.
하지만 애초에 그 사람은 나의 본가가 부산이고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으니 당연히 그 제안을 수락할 줄 알았는지 내 대답에 다소 당황하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하며 황급히 미팅을 마무리했다. 거기서 아, 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만 했구나. 철저히 당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엔 참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아이디어 훔치기인가? 무슨 이런 어이가 없는 경우가 다 있지? 하고.
프리랜서의 세계를 잘은 모르겠지만, 프리랜서들이 프로젝트를 맡기까지 이런 일들은 수없이 겪겠지?란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경험이었다. 소속이 없는 개인으로 일을 하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나는구나란 회한 어린 생각도 들었고.
이 황당한 일에 대해 분노 어린 토로를 하자 무슨 그런 놈들이 다 있냐며 제 일처럼 울분을 토해주는 친구들 덕에 조금 기분이 풀려, 그나마 집이랑 가까워서 화가 덜 났지 아니었음 엎고 나왔을 거라며 장난스럽게 말을 했지만 기분은 암담했다.
서울과 부산의 거리를 알고서 그런 이야기를 하나? 내가 프리하다고 해서 그 프리함이 자신들에게 허용된 것이라 함부로 믿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분명,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소속 없는 이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받아오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드니 참담했다. 그래서 꼭 한 번쯤은 이 일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브런치라는 자리를 빌어 감히 소속 없는 많은 이들을 대신해 고하건데, 누군가의 자유가 결코 당신들에게 마음껏 허용된 자유가 아님을 알길 바란다. 그 자유는 온전히 그들의 것이다. 감히 함부로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훔치려 들지 말길 바란다. 이걸 그 회사가 볼 일은 없겠지만 한 번이라도 누군가의 노하우와 자유를 훔치려 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 글로 손톱만큼이라도 찔려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