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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Sep 05. 2021

장 먼저 비우고 운동하러 갈게요.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 PT 시작한 날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고, 집에서 멀리 나간다는 생각만으로도 피곤했다. 대책이 필요했다. 그즈음 집 근처 '그룹 PT' 간판이 눈에 띄었다. 

'회당 1만 원대'

'무료 체험 가능'

무료 체험이라도 한번 해볼까 싶어 PT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며칠째 이어지던 흐린 구름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가을의 햇빛을 머금은 날이었다. 나는 첫 PT를 받으러 센터에 갔다. 센터는 다니기에 최적의 요건을 갖고 있었다. 집과 같은 블록에 있는 데다가 공원을 가로지르면 5분밖에 안 걸렸다. 오랜만에 선명하게 드러난 푸른 하늘과 그 아래 초록빛의 공원을 보고 걸으면 절로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화장실을 다녀올 걸 그랬나.' '근데 가고 싶지도 않은 화장실을 무슨 수로 다녀오나.'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면 어쩌지.' 이런 고민이 끊임없이 따라왔다. 중간에 집을 돌아보며 '돌아갈까' 고민까지 했지만 만약 여기서 집에 돌아가면 분명히 센터에 늦을 테고 그러면 나는 PT를 영영 시작하지 못할 것 같았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스스로 되뇌며 센터 건물에 들어섰다. 센터는 오래된 5층 건물의 꼭대기 층에 있었다. 허름한 건물 외관과 대비되는 신나고 트렌디한 음악이 계단을 올라갈수록 크게 들렸다. 중간중간 운동 기합(?)을 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 열기로 내 걱정도 잠시 물러가는 듯했다. 


코치님은 수업 시작 전에 시설이나 수업 시스템 등을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화장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센터 내부에 있었다. 운동할 수 있는 10평 남짓되는 공간에 사무실이 조그맣게 딸려있는 구조였다. 코치님은 노후된 건물이라서 걱정하지 않았냐며 건물 화장실이 아니라 센터 내부의 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나는 운동하는 곳 바로 옆에 붙어있는 화장실에 가게 되면 모두에게 소리가 들리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물론 갈 일이 생기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코치님이 수업 시스템을 설명할수록 나는 크로스핏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크로스핏을 해본 적은 없지만 '샤크 코치'의 유튜브에서 봤었는데, 샤크 코치가 버피나 스쿼트 같은 몇 개의 동작을 돌아가면서 한 세트씩 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샤크 코치의 운동복은 땀으로 젖었고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샤크 코치 같은 사람도 힘들어했는데 내가 따라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나는 다시 숨이 가빠왔다. 코치님이 이런 내 불안을 읽었는지 말을 덧붙였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요. 억지로 제가 하라는 대로 다 할 필요 없어요. 각자 페이스에 맞게 하면 돼요. 물 마시고 싶으면 물 마시고 와도 돼요. 천천히 하고 싶으면 천천히 해도 돼요. 동작이 어려우면 저한테 얘기하세요. 제가 좀 더 쉬운 동작으로 알려줄게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숨이 차거나 불편하면 그냥 쉬면 돼. 나는 내 페이스대로 하면 돼.' 


코치님을 앞에 두고 사람들과 모여 섰을 때만 해도 '내가 너무 앞 줄에 있지 않나 이러면 빠지고 싶을 때 잘 못 빠질 거 같은데'라고 또 걱정이 앞섰는데, 막상 운동이 시작되자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코치님을 따라서 한 동작 한 동작하다 보니 오랜만에 내 장이 아닌 근육에 집중을 할 수 있었고, 음악과 곁에 있는 사람들의 열기에 덩달아 나도 신이 났다. 센터에 처음 들어왔을 때까지만 해도 죽을 듯이 힘들었는데, 오히려 운동을 하면서 계속 힘이 채워졌다. 몸에 힘이랄까 에너지가 시시각각 느껴졌다. 


운동을 할 때도 숨이 찼지만, 그건 그냥 길을 걷다가 숨이 가빠오는 것과는 달랐다. 운동을 숨이 찰 때까지 해보니까 구분할 수 있었다. 나는 여태 힘이 들어서 숨이 찬 게 아니라 그 자리에 불안이 들어서서 숨이 찬 것이었다. 근래에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몸 때문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고 시도 때도 없이 불안이 찾아왔다. 나는 10분 걸을 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불안에 자리를 내어주지만 않는다면 1시간 운동하고도 남을 체력이 있었다. 


운동이 끝나고 회원 신청을 하기 위해 신청서를 받았다. 신청서에는 건강상태를 묻는 란이 있었다.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을 수 없는 의학적 질병 기타 운동에 장애가 될만한 육체적/정신적 상태 유무를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없음 [    ]  있음 [    ]"

내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여기에 해당되는지 고민하자 코치님이 말했다. 

"지금 운동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지만 생각해보세요." 




없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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