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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the record Oct 22. 2023

화가가 되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하얀 화면의 공포가 전환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순간





예체능 전공자라면

중학교던

고등학교던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순수 예술을 할까?

디자인이나 대중 예술을 할까?





나는 솔직히

새하얀 캔버스를 무척 무서워 했다.



글을 쓰기 위한 

하얀 화면도 어찌 보면 비슷하지만

그래도...

커서가 깜박이는 건 좀 덜 무섭다고 할까?

적어도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그 시절에는 

패션을 선택했다.


디자인을 하거나 기획을 해야 하는

새하얀 화면은 똑같지만

적어도 트렌드라는 일종의 내비게이션 같은 건 있었으니깐!





그래서

루초 폰타나도 좋아했다.


그는 

내가 무서워 하던 

하얀 캔버스를 찢었고 

그 너머를 이야기하는 작가였다.







https://www.magnanirocca.it/a-come-attesa-lalfabeto-di-lucio-fontana/






하지만 그렇다고

하얀 캔버스가 무섭지 않아 진 건 아니었다.

대리만족 정도였지...


그의 베인 듯

선명한 틈 뒤에는...





어차피 또 무언가를

한 화면 안에서 말해야 하는

회화가 가진 한계성이 주는 극명한 개성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디자인을 하다가 답답할 때도

디자인을 하지 않을 때도

글을 쓸 때도


종종

나는 왜 순수예술을 하지 않았던가에 대해

답이 없는 물음을 스스로 건네곤 했다.





그래서

그 틈 넘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강요하는 것처럼

하얀 캔버스보다 무섭게 느껴질 때가 많아졌다.


나라는 사람 따위는 통과하기 정말 어려운

좁은 틈처럼.







https://www.artbasel.com/catalog/artwork/26054/Lucio-Fontana-Concetto-Spaziale-Attesa






이런 내 관점을 뒤흔들어 준 건

새벽녘에 본 케이블 채널의 한 다큐멘터리였다.


미슐랭 쓰리 스타의 프랑스 셰프 

미셸 트와그로(Michel Troisgros)가 나왔는데

그는

접시에 하얗고 네모난 치즈 한 장을 고객에게 선보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를 칼로 쓱 긋자

그 틈으로 블랙 트러플로 된 그의 요리가 살짝 보였다.







https://www.lecho.be/sabato/recettes/recette-ravioli-au-lait-et-truffe-a-la-lucio-fontana/10265291.html






뭐가 그렇게 심각했던 걸까?

그저 그처럼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건데...

회화의 한계성은 그 밖에서 수많은 창작물이 될 수도 있는데...





순수예술이 하고 싶다면

취미로 시작해 보면 될 일이었다.





빈 캔버스 따위가 뭐라고...

왜 그랬을까?


나도 확 칼로 그어나 볼 걸 그랬다.

루초 폰타나 처럼






https://www.artbasel.com/catalog/artwork/26054/Lucio-Fontana-Concetto-Spaziale-Attesa











제목    :   Attesa

작가    :   루초 폰타나

                Lucio Fontana (1899-1968)

소장처 :   Art Basel 

                https://www.artbasel.com

연도    :   1964-1965년

재료    :   워터페인트 & 캔버스










이제 뭔갈 꿈꾸기는

늦어버렸다고 혼자 겁을 냈는지도 모르겠다.


지켜야 할 만큼 이룬 것들이 있고

굳이

사람들의 심판대에 올라야 할 만큼

부족하지 않으니


도전이 

창피하고 무서웠나 보다.


저 날을 개기로

좀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https://www.artbasel.com/catalog/artwork/26054/Lucio-Fontana-Concetto-Spaziale-Attesa


제목    :   Attesa

작가    :   루초 폰타나

                Lucio Fontana (1899-1968)

소장처 :   Art Basel 

                https://www.artbasel.com

연도    :   1964-1965년

재료    :   워터페인트 & 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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