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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the record Aug 14. 2024

9. 저승사자와 기억을 잃은 망자






#1     


“지이잉 ~ 지이잉”     



          

핸드폰 진동이 안 그래도 자기 이야기 안 하는 현수의 입을 물귀신처럼 다시 제자리로 끄집어 내렸다.

달싹이던 민현수의 입 매무새가 다시금 굳게 닫혔다.     


설희는 타이밍 못 맞추는 눈치 없는 현수의 핸드폰을 쪼아보았다. 

도대체 누굴까?

현수가 핸드폰을 쓰윽 가져다가 보고 이내 화색이 돈다.      

         



현수: 꽃분 이모네?  

   

설희: (언제 그랬냐는 듯 반갑게 반색하며) 어머! 


꽃분 이모야?     


현수: (전화를 받으며) 네, 이모 ~     


꽃분 이모: 어 ~ 현수야 ~

저녁은 먹었공?     


현수: 아 ~ 설희가 놀러 와서요.

무알코올 맥주 한잔하던 참이었어요.  

   

꽃분 이모: 어머! 어머!

젊음의 시간이구낭 ! 용건만 간단히 할께.

이따 자정에 만월 도서관~ 알지?     


현수: 넵!

알죠.     


설희: (큰 소리로) 꽃분 이몽몽 ! 나도 있어요.

염사서 언니 옆에 있어요?     


꽃분 이모: 현수야, 이 목소리 설희지?

설희한테 안부 전해주고~ 염사서 오늘 바쁘니 담에 오라 하구~ 

오늘은 알지? 현수, 너만 오구~    

  

현수: 네네, 이모!         



      

현수는 그렇게 꽃분 이모와 통화를 마치고 뒤돌아서서 냉장고에서 숙취 음료를 꺼내 설희에게 건넸다.

설희는 그사이 엽서를 몰래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다.        



       

현수: (숙취 음료를 건네며) 자~   

  

설희: 어, 어! 고마워.

꽃분 이모가 뭐라셔? 

    

현수: 뭐~

안부 전해달라고 하시고,

오늘은 염 사서님 바쁘다고 담에 오라셔.     


설희: 아... 그래? 

그래!                

‘만월 도서관이니깐. 

만월엔 어쩔 수 없지... 그믐도 그렇고.’  



   

설희는 현수에게는 전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 했다.     




               

#2

     

만월과 그믐.

저승 사서와 만월 도서관엔 어떤 날인 걸까?    

 

안식년을 맞이한 저승사자들이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 직함이 ‘저승 사서’로 바뀐다.


이런 이들이 한 달에 딱 한 번! 

도서관의 저승 사서 직함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날이 매달 그믐이었다.     


사실 안식년을 맞이한 사자들에게 활동에 큰 제약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낮이든 밤이든 어디든 갈 수 있다. 사람의 형상으론!

하지만 저승사자의 모습으로는 좀 곤란했다.     


‘곤란하다’라는 의미는 

산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은 저승사자의 모습으로 활보하는 걸 의미한다.      


    

낮이 산 사람들의 시간이라면,

밤은 귀신들의 시간이다.      


    

아무리 안식년이라지만 저승 사서들이 밤에 거리를 돌아다니면? 

구천을 떠도는 귀신들이 놀라고 두려움에 떨기 마련이다. 그리고 업무를 봐야 하는 저승사자들도 힘들다.   

   

처음에는 이 기준이 없어서 현직 저승사자들과 망자들의 불만 민원이 저승에 폭주했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일부 저승 사서들의 유난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이러했다.     


               

선배들 눈에 후배는 늘 부족한 이들이다.

후배 저승사자가 망자를 데려다가 말고 예상 못 한 곳에서 전 직장 상사이자 현재 안식년인 저승 사서를 마주치면? 사건이 생겼다.    

 

초보 저승사자들은 망자를 데려다가 말고 일부 말 보태기 좋아하는 저승 사서 선배들의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듣곤 했다.       



        

저승 사서: 어이쿠! 김 사자! 오랜만이야.     


김 사자(저승사자): 선배님! 안식년 가시고 신수가 훤해졌습니다.

그나저나 병원엔 어떻게 오셨어요?    

 

저승 사서: 어~ 우리 산 사람 도서관 관장님이 좀 다치셔서 병문안 왔어.

근데 왜 혼자야?     


김 사자: 네... 그 망자분들 가족 중에 섬에 사는 분이 계신데 그분 모시러 갔어요.

망자분이 너무 간곡하게 부탁하셔서요.


저승 사서: 이게 무슨 소리야!

저승사자의 정석, 1장 몰라?

‘저승사자는 산 사람이 아닌 망자를 위해 존재한다.

저승사자는 2인 1조로만 움직인다.’

망자분이 장례식에서 살아생전 알던 사람을 다 보고 이생의 미련도 걱정도 다 떨치고 가는 게 우선이야. 

그런데 산 사람을 왜 데리러 가!   

  

망자: 아니! 왜! 

그쪽이 뭔데~ 우리 사자님한테 화를 내고 그래요.

우리 언니가 뱃멀미도 심하고 지병도 있어서 내가 부탁한 건데!

내가 우리 언니가 걱정 때문에 눈을 못 감겠어서...

사자님이 나 미련 없이 이승 뜨라고 해준 건데!!!    

 

저승 사서: 망자님, 

이승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고작 7일이세요.

그 사이 장례식장에 온 가족들, 자식들, 친구들, 이들한테 올 좋은 사람도 좋은 일도 다 가늠이 되셔야 걱정 없이 저승으로 가실 수 있어요.

나쁜 사람, 나쁜 일 생길 거를 아시게 되면 망자님이 꿈에라도 알려줄 수 있도록 저승사자들이 기록할 수 있는 시간도 딱 7일뿐이에요.

그런데 두 사자로도 버거운 일을 사자 1명이서 어떻게 합니까!   

  

망자: 그러면 대신해 주시면 되겠네요.

그쪽이 우리 김 사자님 선배라면서요?

딱 됐네요!

지금 저승사자 2명이네요.     


김 사자: 망자님, 이분은...    

  

망자: 아, 왜요~ 

저승사자는 꼭 2명이어야 한다며요! 

본인 말로 본인이 저승사자 선배님이시라니! 하시면 되죠~     


김 사자: 망자님... 

저승 사서가 이 일을 대신하시면 언니 데리러 간 우리 이 사자가 큰 징계를 받아요.

맞는 바 소임을 다 못했다고요.     


망자: 뭐에요?

아니 우리 착한 이 사자님이 또 피해보시면 안되죠.

저기 선배님아? 모르는 척 좀 해주세요.    



           

에휴...

이 일처럼 저승 사서들 중 몇몇이 일이 서툰 후배 저승사자의 일을 대신 도와주려 끼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저승 사서의 말이 맞긴 하다.

서로 보완하고 공명하게 망자를 데리러 가는 일이 저승사자가 2인 1조로 움직이는 이유다.


혼자가 아닌 둘로 짝을 지워서 내려보내는 게 저승의 순리다.    

 

생을 다해 저승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는 저승사자는 틀려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신의 대리자 역할이다.

마치 비행기에 기장과 부기장이 꼭 함께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저승사자들은 절대적으로 틀리지 않기 위해서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서 기장과 부기장처럼 노력하는 이들이어야 한다.     


하지만, 저렇게 급작스럽게 저승 사서들이 끼어들면?

신참 저승사자들 일에 저승 사서들이 말을 보태다 보니 신참 저승사자들이 제대로 일을 배울 기회를 잃게 되었다.  


정석을 따르며 거기서 벗어났을 때의 문제는 부딪치면서 배우는 게 있기 마련인데...       

   

저 선배 저승 사서도 말만 앞서기는 했다.

망자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됐다.      


저승사자들은 저승사자 망을 떠올리고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면 서신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망자 모르게 그렇게 서신으로 이 일을 논했어야 하고, 선배로서 해결책도 알려줬어야 했다.      

     

망자는 망자대로,

어느 저승사자의 말을 들어야 할지 헷갈려서 화가 나서 힘들어했다.

망자 중에는 막무가내인 사람도 많았다.


죽음을 맞이하고 나타난 저승사자가 2명이다가 갑자기 선배라는 ‘저승 사서’가 나타나서는 훈수를 두니...     

어느 망자가 훈수 듣는 저승사자를 믿고 저승으로 가겠나?


망자들은 저승사자를 못 믿겠다며 진짜 저승사자 맞냐며 난리가 나곤 했다.   




                 

#3      


그중에서도 염라대왕부터 저승 사서, 저승사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망자는... 바로 기억을 잃은 망자였다.     

치매 때문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치매는 육신의 문제라...

치매 망자들은 몸에서 영이 빠져나오는 순간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       



        

치매 망자: 허이고...

내가 우리 새끼를 속을 다 문드러지게 해놔서 어떻게 해.

얼굴도 못 알아보고 이렇게 가서...     


저승사자 1: 망자님, 진정하세요.

그래도 아버님이 중간중간 기억을 되찾으실 때가 있어서 자식들이 행복했었데요.  

   

저승사자 2: 그래요. 망자님.

울며 한탄만 하지 마시고요. 이승에서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하셔야 해요.     


치매 망자: 내가 죄인인데 무슨 마무리를...?

잠깐만! 

내가 사거리 오 씨한테 300만원 빌려준 거 아직 못 받았는데?

건넛마을 서 씨한테도 100만원 빌려줬고 말이야.   

  

저승사자 1, 2: 그렇죠! 망자님!

사거리 오 씨, 건넛마을 서 씨 이 두분 양심이 찔리도록 해서 돈을 자식분들한테 갚으라고 할께요. 

저희가 해야 할 업무가 이거거든요.

또 뭐 생각나는 건 없을까요? 

혹시 망자님이 빌린 돈이나 잘못하신 게 있다면 해결하시고 가셔야 합니다.           



    

망자 돈을 떼먹는 사람이 있다면? 양심이 두꺼운 이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망자 돈을 떼어먹은 이들은 이승에서 심판받지 않느다고 끝이 아니다. 

저승에서 쓸 노잣돈이 없게 된다. 

그 빚을 갚기 전에는 저승으로 가 안식을 취할 수도 없게 된다.            




         

#4     


기억을 잃은 망자는... 

‘인생무상’이라는 사념에 사로잡혀서 공허함에 잦아든 영혼을 말한다.     

     


오랫동안 구천을 헤맨 망자나

삶의 미련이 너무 많다 못해 무기력해져서

해본 게 너무 없어서 이승을 마구 헤집고 다니거나

죽은 뒤 방치되어 그런 경우 등등          

망자마다 다양하게 나타났다.



저승사자가 죽은 직후 망자들을 달래보려 하지만 이들은 저승을 거부했다.     

자연스레 죽음을 받아들여 저승으로 가는 이들도 있었는데 미련이 시간에 쓸려가 버린 경우였다.


그래서 이런 망자들을 저승사자는 무턱대고 저승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공허에 사로잡혀 기억을 잃지 않도록 다독였다. 공허에 사로잡혀 기억을 잃기 시작하면 악귀나 잡귀에 먹히기 때문이다.     


이런 망자가 우연히 작은 기억의 실마리를 되찾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면 저승 사자들은 단번에 이승으로 순간 이동을 하듯이 나타나곤 했다.

판산동 하씨 아저씨의 편의점에도 그런 망자가 있었다.               




망자: 어! 

이거 옛날에 학교 앞에서 구워서 팔던 쫀드기네!

편의점에 다 있다니...     


저승사자 1: (불쑥 나타나서) 맞습니다. 망자님!

요즘은 나오더라고요. 원 없이 향도 맞고 드셔보세요.     

 

망자: 깜짝이야!

왜 또 오셨데... 저승 안 간다니깐!

저승에 좋을 게 뭐가 있어요? 죄다 죽은 이들뿐일 텐데... 

    

저승사자 2: 자~ 저승사자는 저승 자동 결제 시스템으로 바로! 탁!

이렇게 전자레인지에 살짝 구워진 쫀드기도 망자분께 드릴 수 있어요!

저승사자가 주는 건 망자도 산 사람처럼 오감을 느끼며 경험할 수 있답니다.

보지만 말고 드셔보세요!     


저승사자 1: 진짜 편의점에 없는 게 없다니까요!

참! 저승 쫀드기는 더 맛있는데 그것도 드셔야죠~ 저기 만월 도서관에 가면요~     


망자: (말을 자르며) 그래봐야 쫀드기지...

됐네요.     


저승사자 2: 어이쿠! 이 망자님 모르는 소리 하시네요.

저승의 역할은 본디 태어난 것, 그 태초의 모습으로 되돌려 드리는 것이에요.

저승 갈 때 망각의 강을 건너시잖아요? 이건 아시죠?     


망자: 어! 그거 왜 들어본 기억이 나지?     


저승사자 1: 망각의 강을 건너고 저승에서 쫀드기 한번 드셔보세요.

난생처음이 쫀드기 먹었을 때의 그 느낌을 또 느낄 수 있다니까요?

아는 맛이 무섭다지만,

그 아는 맛있는 맛을 처음 먹었을 때의 신나는 기분은 저승에서만 느끼실 수 있어요.    

 

망자: (표정이 어두워지며) 그러네요...     


저승사자 2: (서책을 뒤적이며) 망자님, 

기억이 온전하지 않으셔서 좀 찾아봤는데요. 

저희가 그간 망자님의 행적을 유추해 본 바로는 이 쫀드기를 늘 같이 먹던 친구가 있으신데... 혹시 그분 때문에 이러시나요?     


망자: 그건 아닌데요?    

  

저승사자 1: 그렇다면...

(다른 서책을 뒤적이며) 쫀드기를 같이 구워 먹던 여자를 놓쳐서?

총각 귀신이 돼서?     


망자: 크흠... 

전 자발적 비혼주의자였습니다.     


저승사자 2: 망자님!

어쨌든 쫀드기가 뭔가 기억을 되살려 드린 건 맞죠?    

 

저승사자 1: 그렇네요! 희망이 보입니다!     


망자: 아니... 무슨 쫀드기 하나로...

갈 길이나 가세요. 난 좀 더 걸을 테니!         



      

그렇게 망자는 또 떠돌기 시작했다.

저승사자들은 벌써 4달째 일주일에 한 번씩 그 망자를 체크하고 있다. 

그들은 계속 하씨 아저씨의 편의점 주위를 돌고 있는 망자의 기억을 찾기 위해 스무고개, 난센스 퀴즈를 하는 중이다.      


망자의 행적은 기록되어 있으나 그 망자가 소중히 여기는 기억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염라대왕은 이런 망자 보고서를 받을 때마다 저승사자들을 타박하다 지쳤다.


현대라는 세상은 공허에 휩싸여 좋았던 기억을 잃고 살다 생을 마감한 이들이 많았다. 잡귀나 악귀에 잡아 먹힐 위기의 망자가 늘어만 가는 것이었다.     

염라는 이럴 때면 현수를 떠올렸다.      



         

‘기억을 보는 산 사람이라!

현수를...

죽은 자로 만들면 쓰임이 있을 법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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