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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the record Aug 16. 2024

10. 비둘기 깃털과 만월 도서관





#1     


현수: 어후, 서늘하네!     


설희: 그러게 갑자기 서늘하네?     


현수: 너두?     


설희: 집에서 갑자기 서늘한 일이 종종 있만...

너네 안채는 그런 적이 없는데, 별일이네?     


현수: 맥주를 너무 차게 해서 마셔서 그런가?  

   

설희: 그럴 수도 있겠다.               




현수는 핸드폰의 배터리와 시간을 확인하곤 설희에게 운을 띄웠다.

만월 도서관에 갈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현수: 설희야! 

이제 슬슬 집에 가야 할 것 같다?

벌써 11시야.     


설희: 어머 그렇네.      



         

설희는 매번 핸드폰 배터리를 체크하는 것도, 

과호흡이 올 때면 붉은 상처로 불든 현수의 손등도, 

자정부터 만월을 맞이하는 현수를 

마주 때마다 설희는 가슴이 시렸다.     


이 마음을 숨기려는 듯 설희가 거실 테이블의 그릇과 빈 캔을 들고 부엌으로 향한다.

현수도 거실을 정리를 하며 설희를 돕는다.     



          

설희: 그래도 내가 설거지 하나는 끝내주지?  

   

현수: 니가 인간 식기 세척기이긴 하지.

그래도 그냥 둬.

우리 집인데 내가 해야지.     


설희: 얻어먹는데.

이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해서 그래.          



     

설희가 싱크대의 마지막 물기까지 싹 털자, 현수가 늘 하던 것처럼 설희의 가방을 어깨에 멘다.

가늘고 긴 현수의 속눈썹이 눈가에 그늘을 드리울 때면 그 모습이 그림같이 고우면서도 현수 인생의 어둠이 겉으로 들어나는 것 같았다.     


설희는 현관으로 몸을 돌렸고, 현수는 휴대용 핸드폰 배터리를 챙겼다.

현수는 핸드폰 앱을 만지작만지작하더니 이내 신발장의 작은 주머니 하나를 옷 주머니에 넣고 설희를 따라나선다.     


둘은 금방 설희네 집 앞에 도착했다. 현수는 그제야 설희에게 가방을 건넨다.

현수가 친구이기만 한 게 야속하지만... 친구라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설희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설희: 얼른 가봐.     

현수: 어. 문단속 잘하고.     




               

#2     


현수는 꽃분 이모를 만나기 위해 만월 도서관으로 향했다.

만월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현수라 몸은 걷고 있었지만 시선은 멍했다.    

 

갑자기 서늘했던 아까의 기분 때문일까?     


꽃분 이모가 해줬던 하씨 아저씨의 편의점 망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귀신을 보지 않게 됐지만 망자의 서늘함을 느끼는 건 똑같았기 때문이다.   



            

현수: 으~ 이모. 망자가 지나간 것 같아요.

서늘하네요.     


꽃분 이모: 저분이! 

또 하씨 아저씨네 편의점 앞을 헤매고 계시네.     


현수: 거기에 망자가 있어요?

근데 왜 헤매는 것에요?     


꽃분 이모: 기억을 잃어서 그래.

그러면 그 자리를 공허가 채우는데 그 상태로는 저승에 갈 수 없단다~

저승으로 가면서 건너는 망각의 강에 생의 나쁜 기억을 다 털어버려야 해.

그래야 좋은 기억만 안고 저승으로 갈 수 있게 되지.

털어버릴 기억도, 안고 갈 추억도 없으면 망자는 강을 건널 수 없게 돼~ 

    

현수: 좋든 나쁘든 다 기억해야만 하네요.     


꽃분 이모: 그렇지, 다 털어내야 해!

그래야 망자의 영혼이 아이처럼 기쁘고 밝은 태초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엉~

모든 것을 태어난 본래의 상태로 돌리는 것 그것이 저승의 역할이란다.

요즘 기억을 잃고 공허로 가득찬 망자 때문에 저승이 좀 시끄러워.    

 

현수: 망자들의 기억을 저승사자들이 알 순 없나요?   

  

꽃분 이모: 저승사자들은 망자의 행적을 가지고 있지만.

행적과 기억은 별개잖아? 

기억하려면 산 사람의 생에 실린 감정, 기분, 생각을 알아야 하니깐~

그중에서도 뭘 추억할지는 망자 자신만 알지.   

  

현수: 네...        




            

#3     


기억을 잃은 망자 문제의 보고서가 올라올 때면 염라대왕은 습관적으로 한숨같은 혼잣말을 했다.    



           

“어허! 이일을 어찌할꼬.”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서면서 영혼이 아픈... 기억을 잃은 망자가 급격하게 늘었다.

망자들을 한꺼번에 올려보내는 만월 도서관을 만들었지만, 그래도 문제였다.     


만월 도서관 전에도 저승 사서의 역할을 하는 저승사자들은 이승에 단기로 파견되었었다.     


도서관의 역사는 고구려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땐 경당이라 불렸다.

고구려의 경당은 평민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된 도서관과 학교가 더해진 형태였다. 


그때부터 저승사자들은 사람들이 빌려보는 책에 잡귀가 들러붙거나 책에 붙은 귀신의 속삭임에 미혹되지 않도록 했다. 이승이 이승일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승이었다.     


염라대왕은 기억을 잃고 구천을 헤매는 망자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단기 파견직이던 ‘저승 사서’ 제도를 개편했다.     

저승 사서 직책을 인사고과가 우수한 저승 사자들에게 30년간에 안식년 형태로 부여되는 포상으로 삼았다.


30년간 이승에서 쭉~ 일하는 게 포상이라니... 저승사자의 망자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염라대왕은 인간사를 30년간 경험한 뛰어난 저승사자 중에서 다음 대의 염라대왕을 뽑을 심산이기도 했다.     



          

“산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봐야... 

좋은 염라대왕이 될 수 있지!  

이승과 구천을 헤매는 망자의 마음도 그러면 헤아릴 수 있을 테고.

망자들을 한 달에 1번 모아서 쑥~하고 저승으로 보낼 수 있으면 일도 편하고~

이런 일타쌍피 같은 제도라면 적극 활용을 하는 게 옳지!”    



           

염라대왕... 

이 리더의 시꺼먼 속내의 결정체가 바로 만월에 망자들은 한꺼번에 저승으로 보내는 만월 도서관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찌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겠나?     

전에 말한 것처럼 저승 사서와 현직 저승사자, 망자 사이에 분란이 계속되었다.

저승 사서는 저승사자 사이에서 연금과 무공훈장으로 치부되는 일이니 현명한 판단이 필요했다.     


염라대왕은 묘안을 내어 ‘저승 사서 강령’을 만들었다.        



  

첫째, 저승 사서는 전국의 도서관에 2명씩 배치한다.


이들은 책에 잡귀와 악귀가 붙어 산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한다.

만월 도서관에서는 매달 만월 밤에 망자들을 모아 저승으로 올려보낸다.

만월은 저승 사서와 망자, 모두에게 즐거운 잔치이다. 

이때 전국의 저승 사서들이 돌아가면서 만월 도서관을 돕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다.

만월 도서관은, 

공허에 빠진 망자들을 먹이고 씻겨서 기억과 추억을 되살려 줘야 한다.     


     


둘째, 저승 사서는 저승사자의 업무를 할 수 없다.


저승사자도 저승 사서의 업무를 대신할 수 없다.

이들은 업무 중에 서로 눈인사 외에는 아는 척을 해서는 안 된다.

아는 척을 하면 인사 고사에 감점이 있다.     




셋째, 저승 사서의 모습일 때는 제약없이 인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저승 사서는 사서로 일하는 30년간 인간과 동일하게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단, 인간과의 사랑은 불허한다. 이승과 저승은 맺어질 수 없다.

저승 사서 일을 할 때는 망자들 눈에만 보이는 선글라스를 써서 인간의 모습을 한다.   



  

넷째, 한 달에 한 번 저승사서에게 ‘그믐의 해방’을 부여한다.


그믐의 24시간 동안 저승 사서들은 저승사자일 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한 달에 딱 한 번 그믐, 산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저승사자의 모습으로 마음껏 하고픈 것을 하며 쉴 수 있다.

그리고 이날은 저승사자들과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저승 사서들이 가장 좋아했던 건?

바로 네 번째 ‘그믐의 해방’이었다.        




            

#4     


저승 사서들은 늘 그믐의 해방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긴 평생을 사람들이 자기를 보지 못하는 편리함을 누리며 살았는데!

이들이 갑자기 사람들과 복닥거리며 지내는데 어떻게 100% 편할 수가 있을까?


저승사자들은 망자를 보지 않아서 행복한 면이 있는 반면에 일상생활에는 불편한 점이 있었다.     

저승사자가 누리는 일상의 장점은 시각과 청각의 해방이었다. 

저승사자의 시각과 청각의 자유는 이러했다.    



      

- 저승사자들의 시각적 해방 1.


보이지 않을 자유다.

저승사자는 자다가 일어난 채로 느낌 가는 대로 집 밖을 나와서 햇살을 받으며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서 광합성을 할 수 있다.     


왜?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니깐!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별거였다.     

또 한 가지 저승사자라면 모두 누릴 수 있는 부유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다시 말해서 걷지 않고 공기 중에 먼지처럼 떠다니거나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다.      

겉모습에서 해방되어 익숙한 장소를 마음 편히 흐느적거리면서 부유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해방감을 느끼게 해준다.       



    

- 저승사자들의 시각적 해방 2.


모든 공간에서 사람이 없는 상태로 설정해서 볼 수 있었다.

마치 포토샵으로 그 공간 안의 사람을 다 지운 것처럼 말이다.


그믐에는 출퇴근길 지하철 안의 사람을 투명인간처럼 설정해놓고 텅 빈 지하철에서 미친 척 춤을 춰도 된다는 말이다.

광화문, 서울숲, 한강의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투명인간처럼 만들어서 공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다.   

  

그러면, 공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 저승사자들의 청각적 해방 1.


모든 소리를 음소거 할 수 있다.

시끄럽게 떠는 카페의 수다 소리, 거리에서 싸우는 소리, 공사장의 소음처럼 익숙하지만 듣기 싫은 모든 소리를 음소거 할 수 있다.


저승 사서들이 가장 좋아하는 해방이었다.     


저승사자일 적의 시각과 청각의 자유를 모두 누릴 수 있다니!

그믐의 24시간은 안식년의 저승사자들에게 진정한 휴식을 맞이할 수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처럼 누리는 주말의 휴식처럼 사자들은 그믐의 휴식을 열렬히 기다렸다.     

그믐에 저승 사서들은 사자와 같은 하루를 보내며 저승사자들과도 친목을 다졌다.

다들 그믐에는 웬만해서는 저승에 놀러가서 그믐날의 만월 도서관은 늘 휑했다.  



   

그렇다면 만월은 어떨까?                




    

#5     


만월인 오늘은?


전국에서 모은 망자와 

전국에서 일을 도우러 온 저승 사서로 만월 도서관이 북적이는 잔칫날이다.     


그믐과 만월에 대해 떠올리며 걱정을 떨치려 해봐도 현수의 머릿속은 온통 엽서와 자신의 비밀에 관한 생각으로 복잡다.           



    

‘꽃분 이모가 엽서를 보면 뭐라고 할까?

홍란 할매는?’     



          

현수가 귀신 쓰인 헤드폰 때문에 기절한 사건으로 생긴 변화를 아는 건 현수, 할머니인 홍여사, 꽃분 이모, 홍란 할매, 염라대왕 이렇게다. 


신 할머니는 아마 눈치로 알고 계실 거다.     

이 비밀이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괴이해 꽃분 이모가 염라대왕에게 고했었다. 돌아온 답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지만,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는 염라대왕의 말이라 묻어두었다.      

염라대왕은 현수를 위한 저승의 신분 패를 만들어 주었다. 

이것만 있으면 현수는 망자를 보지도 듣지도 않고 살 수 있었다. 


스마트 폰이 생기고는 이 저승의 신분 패를 도서관 앱에 넣어서 쓸 수 있었다.

도서관 앱을 끄면? 현수는 귀신을 보게 되고 현수의 비밀도 문제가 된다.     


저승의 신분 패는 한번 먹으면 끊을 수 없는 혈압약 같았다.

현수의 저승의 신분패도 현수의 비밀처럼 아는 이가 적어야 했다.


말할 수 없는 일이 많은 현수는 어릴 적부터 스트레스 상황에서 과호흡을 종종 겪었다. 





#6   

  

만월 도서관에 가까워져 오니 도서관 입구에서 꽃무늬 옷을 빼입은 꽃분 이모가 연신 손을 흔드는데 보였다.          




꽃분 이모: 현수야 ~    

  

현수: 꽃분 이모!

(핸드폰을 보며) 지금 11시 50분이네요.

     

꽃분 이모: 좋네~    



           

현수는 아까 챙긴 주머니에서 손을 넣어 꺼내 제 손바닥에 올리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비둘기 솜털 1개였다.     

그리곤 가볍게 숨을 불어넣었다.



비둘기 깃털은 현수의 숨에 날리는 듯하다가 수직으로 하늘 위로 올라갔다.

마치 낙하는 깃털을 촬영해서 거꾸로 튼 것 같았다.



비둘기 깃털이 도서관의 키를 넘어서자, 저 멀리서 하늘로 치솟은 따듯한 빛기둥이 보였다.     

그 빛은 구천을 떠도는 망자들을 태운 은하수 빛 이층 버스에서 쏟아 올라간 것이었다.


버스가 나타나자, 만월 도서관은 따스한 빛으로 된 반투명 장막으로 둘러싸였다.

장막은 산 사람에게는 불 꺼진 적막한 밤의 도서관에 보이도록 해주는 일종의 보호막이었다.   

  

일상 속 공간이 이렇게 빛으로 물드는 건 참 생경하게 아름다웠다.             



   

꽃분 이모: 버스가 오렌지빛인 걸 보니 이번에 아이는 없나 봐~     

 

현수: 이번은 그렇네요.     


꽃분 이모: 현수야.

있지...

(머뭇거리며) 도서관 앱 좀 꺼볼래?     


현수: (무척 놀라며) 네...?     


꽃분 이모: 알아.

그거 끄면 귀신도 그것도 보이는 거.

그런데, 오늘은 꺼야 해.     



          

현수의 숨이 가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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