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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ul 11. 2019

#4. 나와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일

리분동지 신혼(그림) 일기


 우리는 동거를 먼저 시작했다. 


아직은 남아있는 동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주위에 굳이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그 연장 선상에 있던 결혼으로의 흐름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돈이 없으면서 결혼을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주위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내려 놓을 수 있었고 우리는 정말 가진 돈이 많지 않았지만 집은 은행의 도움으로, 결혼 사진과 영상은 주변의 재능 기부로, 신혼여행은 가까운 필리핀으로 다녀오며 부부로의 첫 시작을 내딛었다. 


 

 그는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꽤 많이 바뀌었다. 

쉬는 날이면 가방 하나를 둘러 메고 국립공원으로 트레킹을 가거나 1박 2일 캠핑을 가곤 했던 우리의 지난 날과는 달리 서울에 담겨 있는 그의 쉬는 시간은 언제나 침대와 물아일체였고 쉬는 날에도 회사 메신저를 손에서 놓치 못하고 일을하는 건 3년간 변함이 없었다. 신혼여행에서도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젓고 말았는데 사실 나보다는 한시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는 그 스스로의 삶이 더 안타까울 터였다. 여전히 천진난만하고 활동적인 나와는 달리 그는 '가장'이라는 어깨의 짐을 짊어진채 말 그대로 견뎌내는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었고 이따금 원치 않는 술을 마시고 돌아와 나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모습들을 내비칠 때는 마음이 많이 아프기도 했다.  



 제대로 된 저녁도 먹지 못한 채 급하게 술로 떼우는 저녁. 그는 그렇게 원치않는 술자리를 하고 돌아오면 언제나 집에 와서 라면을 끓인다. 제대로 끼니도 떼우지 못한 채 누군가의 푸념 섞인 저녁 시간을 감당하고 있는 그의 시간들은 언제나 라면 한 그릇으로 보상받는 듯하다. 점점 불어가는 그를 보며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술에 취해 널부러진 그의 양말을 벗기고 이불을 덮어주는 건 내가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일이다. 










 가끔은 혼자 남겨진 시간들이 서럽기도 하지만 차라리 외롭고 싶다는 그의 덤덤한 이야기에 나는 자꾸만 미안해진다. 이따금 새벽 귀가를 하는 그는 잠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깊은 잠에 취해 그 뒤의 이야기들은 듣지 못하지만 체온처럼 스쳐가는 마음이 외로운 시간들을 위로한다.  우리의 사랑은 설레고 뜨거운 형태의 것은 아니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오늘의 우리는 더 오래 그리고 함께 걷기 위해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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