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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ul 08. 2019

2.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

리분동지 신혼(그림) 일기

 

누군가가 돌아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본능적으로 숨는 것은 어려서부터의 습관같은 것이었다. 유년시절에는 복도 끝에서부터 자박자박 들려오는 엄마의 신발소리에 따라 본능적으로 숨는 것이 나의 일이었지만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비밀번호를 누르는 전자음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기계처럼 일어나 몸을 숨기곤 한다. 어린 시절 (아니 몸뚱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엄마를 놀래켜주던 즐거웠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나는 남편이라는 존재가 생기고서도 그 즐거웠던 기억을 공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원룸에서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숨바꼭질이지만 방 두개와 작은 거실(?)이 있는 지금의 집에서는 몸을 조금만 구겨 넣으면 숨바꼭질이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에 숨어있을지 뻔히 보이는 숨바꼭질을 몇개월 째 해나가고 있는 나의 한결같음이 그에게는 아주 놀라운 행동패턴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나를 찾아내고 나면 언제나 아쉬움이 남지만 그가 나를 찾아 온 집을 헤매는동안은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와 함께 나는 아주 잠시 가장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탄 기분에 빠져든다. 그런 유치한 장난이 지겹지도 않냐고 물어오는 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이 놀이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 것은 원룸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놀이 이기 때문이다.




 3년 전, 맨 몸으로 한국에 돌아와 고시원에서부터 원룸, 원룸에서 1.5룸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결혼을 하고 방 두개의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삶의 행복도 딱 그만큼씩 넓어져 왔다. 다른 누군가와는 시작부터가 조금 달랐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넓어져가는 시간들이 고맙고 또 감사했다. 내 본능은 유년시절의 행복했던 숨바꼭질의 기억을 떠올리며 원룸을 벗어나자마자 그에게도 작동하는 중이다. 서른 두살인 오늘까지 말이다. 그리고 몇 년 후엔 나와 그를 닮은 아이가 내 곁에서 함께 숨바꼭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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