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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ul 10. 2019

#3 내가 저녁을 하지 않는 이유

리분동지 신혼(그림) 일기

금새 -> 금세
























신혼부부의 저녁이라면 석양빛의 조명 아래서 커플 잠옷을 입고 와인 한잔을 곁들이는 모습이 흔히 상상되곤 하지만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오늘 날의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꽤나 어려운 장면임에는 틀림없다. 몇 번의 퇴사를 경험하고 5번째 회사에서 비로소 저녁 시간이 (나름) 보장된 생활을 하는 중인 나와는 달리 그는 무척이나 정신없고 바쁜 시간들을 보내는 중이었다. 결혼 직전에도 새벽 3시에 귀가를 하는 일정으로 생활을 하더니 결국 모든 신혼여행은 내 손으로 계획되어야 했으며 결혼 후에도 얼굴을 제대로 보기 힘든 시간들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회사에서는 '앞으로 더 바빠질테니 이해를 해주던지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그에게 나를 설득하고 오라는 의견을 내비쳤고 나는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남자와 결혼을 한 후 저녁을 잃어버린 사람이 된 것이었다. 연애를 하면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터를 잡은 곳이 신대방역 인근이었고 멀지 않은 곳에 재래시장이 있어 저녁 거리를 사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았는데 언제나 내가 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그를 보는 것은 나에게 큰 행복이었지만 공들여 한 요리는 식어버리기 일쑤였다. 

 








 아침을 먹지 않는 그였기에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음식은 냉장고에 있다 버려지는 날이 많았다. 

결국 나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기대를 내려놓기로 했다. 그 기대라는 것은 그가 일찍 집에 돌아오리라는 것 그리고 함께 저녁을 먹는 일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유년시절, 정해진 일과처럼 10여년 간 7시에 퇴근에 7시 20분에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식구'라는 개념을 몸소 깨우치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혼자인 시간이 유독 외롭고 서글펐던 것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는 저녁을 하고 기다리는 나에 대한 미안함을 덜었고 나는 외로운 시간 대신 요가를 하며 저녁 시간을 스스로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 살아온 환경이 다름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직면한 현실에 맞춰 살아가는 것 그것은 결혼을 하고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된 숙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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