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새 학교
10. 새 학교
불구덩이에서 구한 줄 알았다. 내 아이를…
남편은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것이 아니냐며 모난 말들로 힘들게 하였다. 나 또한 내 아이를 위해 최선의 결정이라고 선택한 것인데 마음속 저곳에서는 누가 물어온다.
‘네가 못 견뎌서 선택한 거 아니야? 정말 네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니?’
‘정말 네 아이가 안쓰러웠니? 아니면 네가 부끄러웠니?’
꼬박 며칠을 이 질문과 논쟁을 벌였다. 답은 없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아이와 함께 여러 학교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부분은 전학 결정을 내린 후 한 것은 아니다. 처음 문제가 발생했을 때부터 고민했던 부분이다. 내 아이가 정형화된 공교육에 어울릴지? 아니면 대안학교를 보내야 하는지? 그도 아니면 홈스쿨링을 해야 하는지..
가장 먼저 정리된 것은 홈스쿨링이었다. 이 부분은 100% 내가 포기했다. 인내심이 좋은 엄마도 아니고 성격이 좋은 엄마도 아니기에 아이와 함께 좋지 않은 선택지였다. 극한의 독박 육아 시절이 떠올랐다. 내 몸속 고통과 우울감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깨어날까 봐 겁이 났다.
내 아이들은 대안학교에 대해 조금 일찍부터 익숙했다. 인생 처음 생긴 친구가 유치원 졸업 후 대안학교로 진학을 했기 때문이다. 가끔 친구와 만나면 친구가 전해주는 조금은 다른 학교생활에 호기심과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 대안학교로 전학하면 안 될까? 난 대안학교 가고 싶은데..”
대안학교라고 하면 문제 있는 아이들이 가는 학교, 학교생활 적응 못해 가는 학교로 인식이 되었지만 지금 대안학교는 아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학교, 그리고 정형화된 공교육에 반기를 든 부모들이 선택하는 곳으로 시선이 변하고 있다. 나 또한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해 준다는 대안 학교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학교를 알아보니 내가 어설프게 알고 있던 대안학교와는 다른 점이 아주 많았다.
부모 참여율이 높고 정부 인가? 인 대안학교들은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란 것은 몇백만 원에 달하는 입학금과 매월 최소 50~100만 원 이상의 교육비였다. 물론 학원 여러 개 보내는 사교육비와 견준다면 아주 과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입학금에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비인가 학교들은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들이 많았고 너무 소수의 인원이라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지 의구심이 들었다.
국제학교와 비슷한 대안학교들도 있었다. 영어로 수업 진행이 이뤄지는 곳도 있고 기숙형으로 초등과정부터 고등과정까지 있는 곳들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입학 관련해서 문의를 드리려고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데 입학조건이 어떻게 되나요?”
“네, 어머니, 아이와 부모님 모두 인터뷰를 봅니다. 아이는 영어로 인터뷰 진행이 되고요. 부모님 인터뷰에서는 우리 학교와 부모님의 교육관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 알아볼 거예요”
“저희 아이는 영어는 아예 모르는데 인터뷰가 가능할까요?”
“초등학교 2학년인데 간단한 영어도 모르나요”
다시 전화하겠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영어를 모르는 게 이상한 것일까?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와, 여러 주변분들의 조언을 듣고 다시 한번 공교육에 아이를 맡겨보기로 했다. 그래서 집 주변의 여러 학교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몰랐던 아니 관심이 없었던 부분들을 알게 되었다. A학교는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가 많다. B학교는 혁신학교인데 그에 비해 교육 퀄리티가 떨어진다. C학교는 선생님들이 별로다. 등등…
오랜 고심 끝에 시골의 작은 학교 같은 곳을 선택했다. 전교생이 60명 안팎이고 각 학년마다 1 반씩 있고 2학년은 10명의 남자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부보다는 텃밭도 가꾸고 다양한 교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로 키우고 돌보는 학부모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공동육아라 할 정도로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학교 행사 및 봉사에도 학부모의 참여율이 높다고 했다. 이곳이야 말로 상처받은 내 아이가 둥지를 틀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전학 수속을 하고 담임선생님을 만나 뵈었다.
“쉽지 않은 아이를 맡기게 되었습니다. 전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학교에 대해 상처가 많은 아이라 적응을 잘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만 지켜봐 주세요. 마음이 비뚤어지거나 폭력적인 아이는 아니니까요”
담임 선생님께 조심스레 전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선생님께서도 조심스레 학급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이곳의 아이들 또한 나름의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남학생만 10명이다 보니 예기치 못한 문제들도 간혹 발생한다고 하셨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과 면담 후 작은 설렘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새 학교 등교 첫날. 내 아이는 교실과 학교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모양새만 바뀌었지 이곳도 아이에겐 상처로 먼저 비쳤다. 학교 그리고 친구들의 존재가..
유치원 처음 보낼 때처럼 나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선생님은 오늘 하루는 어머니가 교실 뒤에서 지켜봐 주셨음 한다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셨다.
작은 학교 의자를 가지고 교실 뒷문 근처에 앉아서 수업을 지켜보았다. 기존의 아이들은 어디서 뚝 떨어진 이상한? 아이와 우리를 지켜보는 낯선 어른, 과연 이 상황이 뭘까? 하는 눈빛이었다.
생각보다 아이의 거부는 심했다. 그래도 중간에 난타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진정하고 커다란 북을 시원스레 쳐 나갔다. 4교시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적응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겠네요.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적응하고 나면 다른 학교 간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교직원 모두가 함께 도울게요”
일면식 없던 선생님의 한마디에 참고 또 참고 있던 왈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작은 기대감도 갖게 되었다. 이곳에서 내 아이가 아픈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는 실낱 같은 희망이란 것도 생겨났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의 시작쯤이었다. 이때가..
그런데 이러한 내 희망과 위안은 한 여름 태풍처럼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로 키운다는 학부모들에게 우리는 어디서 뚝 떨어진 알 수 없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