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스승의 날이 지나갔다. 예전에는 스승의 날이라고 텔레비전에서 특집 프로그램들을 방영하곤 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별로 그런 것들이 없는 것 같다. 격세지감을 다시 한 번 더 느낀다.
돌이켜보면 대학에 다닐 때까지도 나는 스승의 날이 되면 선생님께 손 편지를 가끔씩 보내곤 했다.
주로 중학교 때 선생님들이었다. 중학교 시절은 나에게 감성적으로 가장 순수했던 때여서인지, 그 시절 선생님들과의 추억도 참 많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분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그 선생님은 사회 과목을 가르치셨고, 중학교 2학년 때 나의 담임 선생님이기도 하셨다.
비쩍 마른 체형이었지만, 목소리는 중저음으로 또렷하게 울리던 기억이 난다.
항상 검은색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계셨는데, 큰 키 덕분인지 양복이 참 잘 어울리셨다.
사회는 암기과목이라 매 수업 시간마다 칠판을 가득 채워가며 판서를 하셨다.
그분의 칠판 글씨는 정말 멋졌다. 또박또박, 정갈하면서도 힘 있는 글씨체였다.
중학교 시절 나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시험을 잘 볼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았다.
특히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선생님은 늘 나를 따로 불러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마음이 참 따뜻하셨던 분이다.
당시 반에는 내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아이가 있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 친구와 나는 반에서 1등 자리를 두고 경쟁하곤 했다.
선생님도 그런 관계를 잘 알고 계셨다.
나는 일기장에 자주 그 친구의 이름을 적었고,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곤 했다.
그 시절엔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일기를 읽어보던 문화가 있었기에, 선생님은 나를 조용히 불러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다. 그 대화들이 지금도 참 따뜻하게 남아 있다.
고등학교를 다른 도시로 유학 가고, 대학을 서울로 진학하면서 그 선생님의 존재는 점차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그래도 5월이면 손 편지로 안부를 전하곤 했는데, 단 한 번도 답장을 주시진 않으셨다.
시간이 훌쩍 흘러 내가 결혼하고 직장 생활을 하던 어느 겨울 저녁, 갑자기 그 선생님으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전화기 너머의 선생님 목소리는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서울에 와 계신다며,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셨다.
예고 없는 연락이었지만, 너무 보고 싶은 분이었기에 그 추운 겨울날 일이 끝나자마자 한걸음에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니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딸을 만나러 오신 길이었다.
올라오기 전, 나의 고향집에 계신 아버지께 연락해 내 전화번호를 받으셨다고 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참 많이 궁금했다고 하시면서 서울에 오는 김에 나를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죄송한 마음이 밀려왔다. 나는 이미 잊고 살았는데, 선생님은 여전히 기억나는 제자라고 연락해 주신 것이다. 그 마음이 참 감사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선생님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니, 예전보다 훨씬 수척해지셨고 흰머리는 더 많아져 있었다.
그렇게 커 보이시던 멋진 선생님의 모습은 이제는 희미했다.
그날 밤, 선생님과 나는 술잔을 주고받으며 추억을 안주 삼아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조그마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같이 술잔을 건네는 모습이 좋았는지 선생님은 참 행복한 얼굴이셨다.
그날이 내가 마지막으로 그 선생님을 뵌 날이었다. 그 후 그 선생님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오지는 않았고 나 역시도 바쁜 일상에 선생님의 안부를 잊고 지냈다.
그 후에 어느 해 인가 추석 명절에 고향에 내려갔다가 그 선생님이 재직 중이셨던 중학교 앞을 운전하면서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아버지께 선생님의 근황을 물었다. 지병으로 일찍 교단에서 은퇴를 하시고 오래 고생하시다 결국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차 창밖으로, 마지막 저녁 자리에서 웃으시던 선생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5월은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 5월이 오면, 부모님이 떠오르듯 학창 시절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요즘 MZ세대와 선생님들의 관계는 우리가 겪었던 시절과는 분명 다르게 보인다.
우리 시대의 선생님들은 회초리를 들고 엄한 모습으로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지만,
그분들이 보여주신 관심, 희생, 사랑은 비록 부모님만큼은 아니었을지라도, 그에 가까운 진심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