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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Jan 25. 2020

시작부터 이렇게 아름다우면 어쩌자고

나의 사랑하는, 무너지는 세계

우리의 세계는 파도처럼


 처음 파도와 함께 걷던 순간을 기억한다. 물론 한 번 만에 성공한 건 아니고 배부를 정도로 허우적대며 물을 꽤나 먹고 난 뒤였다. 원, 투, 업! 하는 구령에 맞춰 파도의 결을 어쩌다 딛고 일어섰는데, 두 발바닥이 어쩔 줄 모르고 애처롭게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서프보드에 붙들어 두는 데 성공한 몇 초 동안 나는 찌릿찌릿, 분명 저 보드 두께 너머에 있을 바다의 감촉이 발끝에 온통 스미는 기분을 경험했다. 짜릿했다. 얼떨떨했고. 걸음마를 갓 떼는 아이처럼 맹목적이며 무구한 찰나였다.


 그리고 그 한 번이 나를 언제부턴가 자꾸 바다에 빠트린다. 종일 파도만 생각하고 어느새 파도 앞에 서게 된다. 누구나 어떤 처음에 관한 강렬한 기억 하나쯤 품고 산다지만 이토록 열렬한 마음을 내가 바다에서 얻을 줄은 몰랐지. 생일도 한참 지나 기대할 일 하나 없던 오월 어느 날에 이렇게 큰 선물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 나는 담장을 넘는 연인처럼 바다를 열망하고 내 보편적 일상과 세계는 이제 파도와 함께 출렁이고 스러지고 다시 세워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처음 너와 함께 걷던 길 위에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 혼자 허우적거리는 줄 알았는데 우연히 함께 디딘 마음 위에서 공교롭게도 우리가 같이 흔들리던 일이, 있었다. 발 끝에 심장이 있는 줄 알았지. 도무지 시끄러워서 말이다. 사랑하는 일에도 누군가 박자를 붙여주면 좋을 텐데, 그러면 하나, 둘, 셋 하고 아쉬운 시간 없이 더 사랑을 할 텐데. 그래도 네가 셈 없이 바다에 풍덩 뛰어들 줄 아는 사람이라 다행이야. 우리의 세계는 파도처럼 함께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함부로 서로에게 뛰어든 시절 우리는 열렬했다. 아름다웠고. 사랑이 위대한 우리의 직관에게 발견되었다고 믿길 만큼, 시작부터 이렇게 아름다우면 도대체 어쩌자고, 유치한 마음을 먹었던 일을 반성 없이 고백할 만큼.


 실컷 사랑하라고 누가 일부러 등을 떠민 것처럼,

사랑을 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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