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자도 아닌데 웬 템플스테이?’ ‘그림 그리러 여기저기 다니는 것도 모자라 이젠 절까지?’ 내가 템플스테이를 간다고 했을 때 나를 아는 사람들의 반응은 아마 이럴 것이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감지되는 느낌은 ‘넌 템플스테이를 할 위인은 아니다’라는 것. 맞는 말이다. 사실 템플스테이는 내 여행목록에 없었다. 시작은 어쩌다 인연을 맺고 지내는 스님이 주신 무료 체험권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세 자매에 맞춰 3장을 주시는데 종종 일박이일 여행을 즐기는 우리가 공짜 숙박을 마다할 리가 없다. 우리의 여행 컨셉은 어차피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 도착지보다 출발- 여기를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절이든 성당이든 상관이 없다는 얘기). 게다가 템플스테이는 요즘 여행의 트랜드가 아닌가. 그러니까 나의 템플스테이 배후에 무료 체험권이 있다고 하면 지인들은 ‘아하’,빠르게 수긍 할 것이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별생각 없이 다녀온 작년과 달리 올해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부산했다.
내년은 내가 애용하는 ‘삼세번 법칙’의 해,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미리 김칫국 마시기?
전작 ‘어쩌다 절’에서 썼듯, 불교 신자인 남편과의 여행에서 절이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있어 본의 아니게 전국 유명사찰을 섭렵하다시피 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지 했는데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비슷하게 살고 있는 딸들처럼, 그 절이 그 절이지 하며 따라다녔는데 비슷하게만 보였던 절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와 딸이 닮아가듯 나도 남편 따라다니다 은연중에 반 불교 신자가 되었다는). 일단 두어 시간이면 절의 외관은 파악이 된다. 위치(산의 초입, 중턱에 때로는 헉헉대고 올라가야 하는 꼭대기에 있기도)나 연혁, 그 절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 그 외 본 책 보다 더 재미있는 별책부록 같은 암자들.. 그게 다인줄 알았는데 스테이를 하다 보니 절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명상에 든 듯 편안해 보이는 고즈넉한 밤의 산사, 갓 세수를 마친 아이의 얼굴처럼 말갛게깨어나는 새벽녘의 절,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여명의 순간, 우리를 무장해제 시키는 절의 민낯까지.
두 번째 템플스테이에서 알게 된 것은 절은 커뮤니티지만 커뮤니케이션의 장소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첫 템플스테이는 여타의 숙박시설처럼 차려주는 밥 먹고 오랜만에 동생들과 수다도 떨고 그림도 그리고.. 거의 절캉스(호캉스의 패러디) 개념으로 갔다. 그러다 보니 마주 보는 방에 묵은 초로의 여자 다섯 분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그다지 그슬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아마 그분들도 우리와 같은 템플스테이 초짜가 아니었을까. 조용한 사찰에서는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므로 옆방 배려는 필수다. 수덕사는 숙소 마당에 넓고 시원하고 차 마시기 좋은 정자가 있어 대화는 주로 정자에서 하고 방에서는 목소리를 줄였다. ‘머무시는 동안 말은 줄이고 내면과의 대화는 늘리십시오’ 책자 속의 글귀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속닥속닥, 좋은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 나름의 배려를 했다. 일상에서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남의 시선도 여기서 다른 나라 이야기다. 스님을 만나면 합장하고 숙박객과 눈이 마주치면 웃는 정도. 여기서 필요한 말은 ‘묵언’.
오페라 애호가가 제각각 다른 오페라의 맛을 느끼듯 템플스테이도 (비록 두 번밖에 못했지만) 절에 따라 그 묘미가 달라진다. 작년에 갔던 봉선사는 이름만큼 예쁜 절이었다. 경내에 인공호수와 분수, 그 뷰를 조망하는 찻집, 데크를 따라 산책할 수 있는 넓은 연꽃밭, 여기서 연꽃축제와 음악회도 열린다고 한다. 서울 근교에 있어 접근성이 좋아 근처 주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오고 가는 길에 둘러보기 좋은 광릉, 가평, 청평의 식물원, 수목원이 인접해 있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연못과 주변의 꽃들, 간간이 놓인 조형물등으로 사진에 진심인 MZ세대들도 좋아할 것 같은 현대적 감각을 겸비하고 있는 절이다. 다른 유서 깊은 절과 같이 봉선사 또한 여러 국보, 보물급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지만, 여타의 절과 다른점은 한문 불전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있어(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 스님’이 그곳에서 처음 한문 불전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하니 더 정감이 갔던 절이다.
반면 700년의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수덕사는 사찰계의 클래식처럼 보였다. 국보 제49호의 고색창연한 대웅전, 고암 이응로 화백이 머물며 작업하고 실제로 그의 부인이 운영했다는, 말로만 듣던 초가집 그대로의 수덕여관, 그 외 덕숭산 자락을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절 건물들 또한 별 보수 없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수덕사 하면 먼저 여승이 떠오르지만 그건 이미 오래전 이야기고 지금은 비구승의 거처가 따로 있다.
돌아가는 길에 들른 예당호부근 카페 뷰
우리가 묵을 방은 두 개의 방을 턴 넓은 방, 방 크기에 환호하다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에 순간 당황했다. 지금 한국은 인도네시아보다 덥다는데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에 곧바로 떠오른 것은 극기 훈련, ‘우리는 템플스테이를 왔지 극기훈련을 온 게 아니라고요!’ 하지만 절에서 불평은 ‘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야지’로 연결된다.
‘아, 그렇구나’ 한마디로 상황을 종료하고재빠르게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두 대의 선풍기 볼륨을 최대로 높이고 삼면의 커다란 방문, 창문들을 (방 두 개를 터서 문도 창문도 두 개씩)을 모두 여니. 방은 순간 산속 캠핑장이 되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잠결에 들리는 계곡 물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불면이 오히려고마울때도 있다. 그야말로 캠핑 감성의 템플스테이, 인도네시아 운운, 극기 훈련 발언 취소합니다!
열린 방문 밖으로 훔쳐본 여리여리하고 고운 비구니스님의 모습에 ‘우리 스님’의 모습이 겹쳐진다. 알고 보니 템플스테이 전담 스님, 연대 영문과 출신으로 절 안의 영어를 총괄(?) 하신다고 한다. 우리 스님 또한 성균관대 법학과를 나오시고 앞서 언급했듯이 봉선사에서 공부한 후 , 한문 불전 번역의 일인자가 되셨고 지금은 불경 연구와 후학을 양성하신다. 50대 초반의 연배도 비슷한 두 분은 잘 아는 사이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돌아와서 안 사실이다. 미리 알았으면 수덕사 스님과 얘깃거리가 많았을 텐데, 숙박객들과 같은 곳에 거주하셔서 마주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던 스님의 성함조차 물어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일화 한 토막, 우리는 아침 공양 후, 딱 그 시간에만 열린다는 정혜사 (능인선원, 스님들이 참선하시는 곳)를 가기로 했다. 가파른 경사길로 거의 산 정상에 있어 내려다보이는 풍경 또한 절경이라 한 번은 가 봐야 하는 곳이지만 깔딱 고개 수준의 고 바위를 일 킬로 가야 한다. 이정표도 없고 (통제구역이라 당연히 없다) 처음부터 힘겨운 길, 동생들과 올라가다 나는 그림을 핑계로 중간에 내려왔는데 스님에게 딱 걸렸다. “정혜사 다녀왔어요?” “아뇨 가다가 내려왔어요” “어 거기 너무 좋은데” 스님은 내가 못 찾은 줄 아셨는지 “30분 헉헉대고 올라가야 해요. 같이 가실래요?”하신다. 느닷없는 스님의 프로포즈에 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저 할 일이 좀 있어서요” 스님의 실망하는 표정, 그때 같이 갔다면 돌아와서 알게 된 사실들을 그때 알았을 텐데. 스님과의 독대 기회를 놓친 나는 ‘어리석은 중생’이 맞다. 그까짓(?) 그림이 뭐라고. ‘아쉬움이남아야 다시 온다’ 히든카드를 꺼내 보며 스스로 위안할 수밖에.
여행의 사전적 뜻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타 국가나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일’, 템플스테이도 일종의 여행이다, 여행은 여행인데 밖이 아닌 안으로 떠나는 여행, 떠났는데 다시 제자리에 있는 조금 이상한 여행, 자연 속에서 부처님의 경호를 받으며 쉬는 여행, 천국이 뭐 별 건가? 싶어지는, 아니, 여기가 극락인가 싶어지는 여행, 이건 여행의 반칙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