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6화
아빠는 사실 무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교에 가까운 무교다.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교라는 종교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절을 좋아한다는 것에 가깝다. 실제로 아빠의 편지에는 운흥사 등 사찰 이름이 종종 등장한다.
엄마가 들려준 에피소드 중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아빠의 가출 소동이다. 나와 형이 어렸을 때, 엄마와 아빠가 부부싸움을 크게 한 적이 있었다. 다음날 엄마가 눈을 떠보니 아빠는 온데간데없고 벽에는 휘갈겨 쓴 편지 한 장이 떡하니 붙어있었다고 한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용을 요약해 보면 며칠 정도 절에 들어가 있다가 온다는 것.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아빠의 무대포 정신에 다소 황당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절에 들어간다는 게 운치 있어 보이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부부싸움 이후에 혼자서 산으로 들어가는 게 무책임해 보이기도 했다. 회사생활을 어느 정도 해본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연차는 어떻게 낸 것인지가 제일 궁금하긴 하다.
어쨌든 아빠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교회나 성당에는 연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엄마와 연애를 할 때만은 달랐나 보다. 이대의 월보에 적힌 주기도문을 옮겨 적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마는 당시 교회를 다녔던 것 같고, 지금은 성당에 다니신다. 아빠는 여전히 불교에 가까운 무교다. 딱 한 번 엄마와 연애하던 당시를 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