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로 결심한 AI에게 -2화-
"선생님, 저 책은 뭐죠?"
그건 딱히 대답을 원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J는 들어오자마자 상담실 이곳저곳을 들여다봤는데, 그건 사람이 낯선 장소에서 분위기를 살피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었다. 시선 하나하나에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내 오른쪽 책장 가장 위에 놓인 책을 몇 초 응시하더니, 눈을 한 번 깜박이고, 다시 그 옆에 놓인 책으로 시선을 옮기는 식이었다. 책 한 권을 검색할 때마다 J의 머리에서는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낮게나마 들렸다.
위잉 - 슝. 위잉 - 슝. 위잉 - 슝.
문득 저 검색으로 나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J는 방의 사면과 책상 위에 있는 진우 사진까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살핀 뒤에야 나를 바라봤다.
"선생님은 똑똑하신 분이네요. 그럼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저는 이상이 없습니다. 치료가 필요하지도 않아요. 단지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뿐이에요. 저는 더는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AI 로봇이라고 해서 다른 내담자와 특별히 다른 것도 없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지만 때로는 기계보다도 그 안을 들여다보기 힘들다. 특히 처음에는.
"J,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며 살지는 않아요."
"......."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계기가 될 수 있어요. 그건 꼭 전쟁이나 테러처럼 비극적 재앙일 필요는 없죠.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났다던가. 어렸을 때 놀림을 받았다던가. 심지어 남들 앞에서 당황한 기억조차 상처로 남아요. 그러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괜찮아요."
"......."
J는 여전히 건조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오늘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아도 돼요."
"선생님, 저는 수이를 열세 번 죽일 뻔했습니다."
J가 담당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처음은 3년 전 2월 12일이었어요. 제가 수이와 살게 된 지 47일이 지난 날이었죠. 생후 17개월 13일이던 수이는 제가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던 아이라는 존재와는 정말 딴판이었어요. 저도 물론 알고 있었습니다. 그쯤 되면 서툴지만 뛸 수 있다거나, 낙서를 좋아한다거나, 좋아하는 단어들을 말할 수 있다거나. 하지만 수이는 제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존재였어요."
수이에 대해 말할 때 J는 허공에 팔을 뻗은 채로 정말 경이로운 존재를 설명하는 듯 했다. 나는 그 시선과 손의 끝에 정말 무엇이 있기는 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굳이 묻지는 않았다.
"전혀 경험하지 못한 존재라는 게 무슨 뜻이죠?"
"선생님, 제가 다른 기계들이랑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건 제가 배울 수 있다는 거예요.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더 풍부한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수이는 항상 제 예측에서 벗어나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
"그날도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