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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Feb 07. 2024

1. 없는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글을 쓴다는 것에 관한 소고

제목: 없는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부제: 글을 쓴다는 것에 관한 소고


1. 안전해야 한다는 착각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겠다. 내 MBTI 성격유형은 ENTJ이다. 한마디로 솔직하고 단호하다. 평소 직관적으로 괜찮다 싶으면 그냥 직진한다. 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또 재미없는 군대얘기를 꺼낼 샘이다. 밀리터리 알러지가 있는 분들은 1, 2번은 스킵하고 3번 부터 읽으셔도 된다 .미안하지만 밀덕인 나는 이 얘기를 꼭 하고 가야겠다. 나는 전방 예비사단 수색대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왜 수색대를 가게 되었는지는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기 바란다.


https://brunch.co.kr/@justinryu/8​​


나는 당시 단기복무(3년)를 할 예정이었기에 참모 보직 없이 3년을 내리 소대장만 했다. 단기이지만 소대장만 3년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군대는 할일이 많다. 군수, 교육, 정보, 작전, 유격대 등 일손이 많이 부족했지만 나는 소대장만 했다. 이걸 길게 얘기하는 이유는 내가 매우 드문 배테랑 소대장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쯤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뭐 다른 큰 의미는 없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예비사단은 거의 야외 기동 훈련이 많았다. 연중 절반은 야생의 삶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30~40kg가 넘는 완전군장으로 길을 걷고, 농로를 달리고, 하천으로 뛰어들고,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내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를 자주 생각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작전 시작 전 소대장은 작전 계획 혹은 침투 계획을 중대장에게 보고한다. 그것은 어디 어디를 언제 통과해 어떤 단계로 작전을 수행하겠다는 세부 사항에 대한 보고이다. 그런데 내가 항상 보고를 하면 중대장은 언짢은 듯 이렇게 물었다.


“야~ 1 소대장, 너 작전계획 수립 제대로 한 거 맞아?”

“계획이 죄~다 엉터리잖아? 너는 인마 북한산을 가는데 절벽으로 간다는 거야? 장비도 없고, 야간인데?

“그리고 여기 봉일천 지나가는 경로도 그래. 여기 다리도 없는데, 너네 팀은 수중으로 간다는 거냐? 어?”

“그러다 병력들 인사 사고 나면 너 책임질 거야? 책임질 수 있냐고? 이거 완전 엉터리구만”


중대장이 화를 낸다. 그러면 바로 이렇게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다시 계획 수립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충성”


군대는 계급 사회이다. 눈치가 제일 중요하다. 여기서 토 달면 내 군생활만 피곤해질 것을 뻔히 알고 있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항명이니, 상관 모욕이니 운운할 것이다. 운 나쁘면 애꿎은 담배 재떨이를 던지던가 병사들 앞에서 이상한 얼차려로 모욕을 줄 수도 있다. 군대는 상명하복이 생명이다. 상관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그게 진리다. 이제 나도 그 정도는 알만큼 짭밥 좀 먹었지 않나? 나는 바로 중대장의 지적 사항을 빠짐없이 반영해서 그의 입맛에 맞는 완벽한 작전계획을 구상한다. 그렇게 다시 보고하면 중대장은 이렇게 얘기했다.


“그래, 이렇게 해야지. 작전은 실전같이 해야지. 작전계획 따로 실행 따로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알았냐? "


그러면 나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네, 중대장님. 충성”


당시 내가 모시던 지휘관은 안전지향적인 사람이었다. 출신도 좋은 데다, 소령 진급을 앞두고 있는 2차 중대장이므로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작전 계획이 뭐 대수인가? 그러나 항상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 군인은 명령에 죽고 산다고 하나, 훈련이 시작되면 항상 우발사항은 발생한다. 모든 작전은 계획대로 실행되지 않는다. 대항군이 있을 수도 있고, 길을 헤멜 수도 있다. 그리고 지휘자는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부릴 수 있는 재량이 허락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융통성이 아니었다. 나는 당시 중대장의 플랜 B가 아니라, 나의 플랜 A가 맞다고 굳게 믿었다. 지금 와서 얘기하지만 나는 계획수립 당시 중대장이 배제하고 명령한 그 모든 위험 요소를 감수하는 계획을 가동하는 것은 필수적이라 생각했다.


나의 플랜 A 단순했다. 지도 위에 경로를 지형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성과 은밀함 위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작전  군인은 예상할  있는 안전한 경로로 가서는  된다. 누구나 아는 , 누구나   있는 길에는 항상 적도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적에게 나의 생명을 갖다 바치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진짜 안전은 적이 예상할  없는 경로를 통해 은밀하게 목표로 접근하는 방식을 통해 보장받을  있다. 나는  신념을 양보할  없었다. 그리고 소대장이라면  정도 책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중대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계획에서는 융통성을 부려 보고했지만, 실제 작전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리고 당시 내가 플랜 A를 가동했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유는 목표에 도달하는 속도에 따라 팀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작전의 승패 여부는 안전이 아니라 속도와 정확성이 좌우한다. 특히, 훈련 마지막 부대로 복귀하는 행군은 팀 별로 평가했다. 마지막에 들어오는 2~3개의 전 팀원이 연병장 10바퀴를 도는 페널티를 받았다. 3년 차 대대 선임 소대장으로서 10시간 이상을 고생고생 해서 돌아왔으나 연병장을 뺑뺑이를 돌아야 하는 수모는 결코 허락할 수 없었다.


내가 군생활 하던 지역은 하천이 방사형으로 잘 발달한 곳이었다. 하천 주위로는 항상 둑길이 형성되어 있는다. 우리 팀은 절대로 그 길로 가지 않았다. 둑길 바로 아래 논길로 다니면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 길로 갔다. 언젠가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보며 영화 속의 이지 중대원들이 그렇게 전술적으로 행군하는 걸 보고 물개 박수를 쳤던 적이 있다(중대장님 내가 맞았잖아요. 아닙니까?).


산악을 행군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산들은 능선으로 길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특수전 학교에서 침투 중에는 8~9부 능선이 아니라, 5~6부 정도 되는 산의 후사면으로 은밀하게 다녀야 한다고 배웠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로 침투했을 당시 그렇게 치밀하게 기동 했었다. 주간에는 비트를 파서 몸을 숨기고, 캄캄한 야간에 은밀하고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우리의 작전지역은 김신조가 다녔다던 그 루트와 교리를 반영한 곳이었다. 그렇게 걸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그게 얼마나 힘든 경로인지. 가시덤불은 예사이고, 자갈밭, 바위, 계곡, 깎아지른 경사면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실제 작전이라면 그런 행동만이 팀과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그리고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나는 솔직 단호한 직진형의 사람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그냥 앞만 보고 간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야 한다. 내가 교육기관에서 배운 바로 모든 침투 작전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백전백패이고 나 뿐만 아니라 팀은 전멸한다.


2.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사족이지만 요즘 군대의 여러 사건은 안전 불감증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다. 군인이 실전적으로 해야 할 임무 수행과 훈련은 절대 외면해서도 중단되어서도 안 된다. 왜냐면 군인만이 그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은 안보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인계철선이 되어야 한다. 마땅히 수행해야 할 위험을 감수하는 그 일이야 말로 그들이 존재하는 숭고한 이유이다. 그들은 고립무원의 적지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무를 완성할 신성한 의무가 있다.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안전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전쟁상황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손실은 비전투적인 상황에서 발생한다. 훈련하면서 다치거나 희생되는 군인보다 영내 축구나 여러 운동 중에 다치는 장병들이 훨씬 많다. 무엇보다 전문적이지 않은 대민 지원에 투입하면서 우발적인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는 예전부터 많은 지적이 있었다.


특히, 군인은 건설현장의 잡부, 들판의 농부, 소방대원, 경찰, 하물며 잠수사는 더더욱 아니다. 최근 군 관련 사건들도 같은 맥락이다. 구조전문가가 해야 할 일을 공병에게 맡긴 것은 정말 시대착오적이고 비극적인 발상이다.


장교들 특히 고위 장성들 어깨에 달아준 견장은 계급장은 장병들 위에 군림하고 착취하라고 달아 준게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이번 사건에 연류된 많은 장성들은 겸손하길 바란다. 핏덩이 같은 청년을 허망하게 보내놓고 말도 안되는 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꼬라지를 보노라면 역겹고 울화가 치민다. 우리의 청년들이 복무하는 건 당신들의 장난감 병정으로 희생당하기 위함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희생임을 명심해라. 어떤 초급 간부들도 너희들 보다 비겁하고 또 비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현장의 많은 간부들과 용사들이 피토하는 심정으로 이 사건을 위중하게 생각한다는 소식을 듣고있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모든 시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겪이 될 것이다. 너희들이 말못하게 한다면 돌들이라도 일어나 진실을 얘기하리라. 이 얘기를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난다. 할 말 많지만 여기까지 하겠다.


3. 최근 글을 쓰게 된 이유


나의 긴 군대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미안하다. 오늘 이 이야기를 꺼낸 진짜 이유는 요즘 내 글쓰기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최근에 나는 도스토옙스키와 단테 신곡을 개인적으로 재해석하는 글들을 호기롭게 쓰기 시작했다. 내 성격대로다. 나는 금사빠이고. 괜찮다고 생각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직진한다. 그래도 나는 도스토옙스키 작품에 매료되어 2년 이상 5대 장편을 비롯한 중 단편 전집과 해설들을 꾸준히 섭렵했다. 또 3년 이상을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아이네이스, 그리스로마 신화, 비극, 희극을 아우르는 폭넓은 독서를 한 끝에 단테 신곡도 읽을 수 있었다. 고대와 중세를 아우르는 고전을 총망라하는 단테 신곡을 거의 매일 아침 행간을 넘나들며 작품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지식은 미천했고 금방 바닥이 드러났다. 많은 전문가들이 무수한 연구 자료를 쏟아내며 이 작품을 해설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하버드 도서관에는 단테 신곡에 관한 단행본만 1만 2천 권 이상 소장되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왜 내가 또 이 책을 해설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두 작가의 작품 모두 누구나 알만한 고전이므로 구누나 알만한 뻔한 것들을 다시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 나는 이런 질문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오늘 이런 갈증과 의문에 싸여 서울 시내의 여러 서점과 근교의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하루 종일 찾아 헤매 인 끝에 찾은 단행본은 한 권도 없었다. 무엇보다 하버드 대학에는 무수한 단행본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우리나라의 단테 신곡과 관련된 서적의 현실은 많이 다른 듯했다. 몇 권의 번역본과 일본 학자 및 국내 몇몇 학자들의 총론서만 있을 뿐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물론 내가 잘 몰라서 일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권위 있고 설득력 있는 해설서를 만날 수 없었다는 현실에 정신이 번쩍 뜨였다.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이 위대한 작품들이 아직도 제대로 된 번역본이나 권위 있는 해설서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 내가 흠모하는 은둔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오늘 내게 아래와 같이 말한다. 나는 그의 고귀한 삶의 모범을 알고 있기에 그의 진심 어린 설득을 외면할 수가 없다.

이제 여기에 이르는 것으로 내가 제시한 길은 매우 어려워 보일지라도 그것은 발견될 수 있다. 물론 이처럼 드물게 발견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구원이 가까운 곳에 있고 큰 노력 없이도 발견될 수 있다면, 어떻게 거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등한시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모든 고귀한 것들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에티카』 5부 정리 42 주석)


4.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 이유


나는 책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만드는 과정이라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길은 결코 쉬울 수가 없다. 그것은 내가 군생활을 하면서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과 매우 닮았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한다. 그동안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생각에 단테 신곡과 도스토옙스키와 관련된 자료들을 찾고 또 찾았다. 그러나 내가 오늘 발견한 것은 누구나 다 알만한 평범한 자료들이었다. 그것은 군 시절 나에게 중대장이 강요한 안전한 강가의 둑길이었고, 10부 능선의 등산로였으며, 탄탄한 대로와 평지의 길이었다.


나는 잘 안다. 모두가 예상하는 안전하고 편안한 그 길에 도사리고 있을 위험을. 나는 믿는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좁고 가지 않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길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가야 한다. 그 좁은 길을 가면서 가시덤불을 만나고, 계곡과 절벽을 오르내리고, 밤낮 죽을 고생 하더라도 그 길로 가야지만 나와 내 팀원을 살릴 수 있는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갔을 때, 마지막에 나와 나의 팀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5.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각자 생긴 대로 사는 거 아니겠는가? 오늘의 이 글은 나를 달리게 하는 채찍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나만의 신념과 속도로 걸을 것이다. 수단과 방향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에너지가 합쳐지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 비록 큰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속도가 증가하면 결과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걷고 또 걸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오늘 읽고 써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나는 그 길을 끝까지 가지고 결심한다. 늘 그래왔듯이 시작은 또렸하나 나이 가면 갈수록 사라질 그런 결말을 경계할 것이다. 희미하지만 나날이 빛나는 길을 닦을 것이다. 담당하면서도 물리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화려하고, 따뜻하면서도 이치에 맞는 글을 쓰기 위해 괴뇌하고 몸부림 칠 것이다. 나는 그 힘든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열심히 걸을 것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inced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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