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
적고 보니 13일의 금요일... 다행히 오늘은 별일 없었다. 몸살은 많이 나아지고 있다 !!!
진동이 울렸다. K였다. 종종 내게 통화를 걸곤 하던 그녀에게 '페이스 타임으로 걸어야 잘 안 끊긴다’라고 누누이 일러두었건만, 그녀는 또 카톡으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상 통화인데 영상 연결은 안 되었다. 평소 같았음 끊고 페이스타임으로 걸었을 나지만, 지금 몰골은 누구에게도 보여 주기 싫어 가만히 있었다.
‘어디야 !’
- 집이야, 계속 누워있어
‘몇 신데?’
- 오후 세시.
‘오후 세시?’
-응 왜?’
‘목소리는 거의 새벽 세시야 너’
그도 그럴게 누워서 잠에 들었다 깼다를 반복한지 한참이었다.
어제, 일어날 때부터 몸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저녁 약속까지 누워있어야겠다 싶었다. 전에 얘기했던 B와 P와의 저녁 식사 약속이었다. 나가려는데 비가 한창 왔고 그 빗속에서 감기약도 사고 그녀에게 줄 꽃도 샀다. 퇴근길의 혼잡한 튜브에 꽃과 나를 욱여넣는 일은 참을 만했다.
식사를 할 땐 그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제가 몸이 안 좋을 땐 소화가 잘 안돼서 천천히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일찍이 식사를 다 마친 P는 괜찮다며, '너 그래도 우리 외할아버지보다는 빨리 먹고 있어’라고 너스레를 떨어주었다.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한 채로 식사를 마무리하고, B가 도라지차를 타다 주었다.
꿀을 잔뜩 넣어 호호 불어 마시는데 얼굴이 점점 뜨거워졌다. 따뜻한 걸 마셔서 몸이 뜨거워진 게 아녔다. 온몸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비상 신호. 우버를 불렀고, B와는 포옹을 했다. 우버를 탔는데 계속 오한이 왔다. 히터를 켜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다 오분 정도 지나서였나, 기사님께 잠시 세워달라고 했다. 결국 속을 비워내야 했던 것이다. 기사님은 가다가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바로 말해달라고 했다. 그럴게요, 집에 도착해서 한 번 더 속을 게워 내고 약을 먹은 뒤 누웠다. 거의 침대에 녹아내리듯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잠들어 또 몇 번을 깼다 잠들다를 반복하다가 받은 전화였으니, K의 말대로 목은 많이 잠겨있을 수밖에 없었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다행히 열은 없었다. 배가 고팠지만 또 게워낼 까 무서웠다. 그리고 집엔 먹을 게 없었다. 일단 목을 축이려 물을 마셨는데 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콜라는 새벽에 마신 게 마지막 캔이었고 오렌지 쥬스도 없었다. 약을 먹으려면 뭔가를 먹긴 해야 했다. 비스킷이 있어 그걸 입에 넣었다. 너무 빈속이라 그럴까, 위가 아팠다.
‘나가야겠다.’
집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고는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벌써 어둑해지고 있었다. 곧장 마트로 갈까 하다가, 그 앞에 있는 카페에 들러 플랫화이트와 크루아상을 샀다. 커피를 마시며 마트 주변 도로를 크게 돌아보기로 한 것이다.
받아 든 커피의 정체는 플랫화이트도 무엇도 아니었다만.. 크루아상은 진짜 맛있었다! 식사 빵 보단 디저트처럼 만든 것 같았는데 패스츄리 자체가 촘촘하니 도톰했으며, 겉은 설탕이 발라져 있어 바삭하고도 달았다. 이렇게 맛을 느끼면서 먹으니 좀 살 것 같았다. ‘약을 먹기 위해 때우는 끼니’ 이상이었으니 커피가 실망스러웠어도 이것 때문에 또 가봐야 할 곳이었다. ㅎㅎ
동네에 큰 마트가 있는 걸로 짐작해 봤을 때, 근처의 건물들은 거의 주거 시설인 것 같았다. 옛날 ‘주공아파트’ 같은 작은 건물들이나 높은 층의 건물들이 보였다. 좀 더 걷고 싶었는데, 몸 상태 때문에 천천히 걸어야 했으므로 속이 답답했던 지라 방향을 틀어 마트로 향했다.
이 시간대에 마트에 간 건 처음이었는데, 와본 때 중 가장 사람이 많았다. 이들의 빠른 퇴근시간과 맞아 그런 것 같기도 했고. 이젠 내가 필요한 게 어느 섹션에 있는지 알았기 때문에, 사람이 많다 한 들 어려울 건 없었다.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을 수 있는 스프를 사고, 오렌지 쥬스를 담았다. 그리고 입이 쓴 걸 해소하기 위해 콜라와 아이스티도. 귤이 있어 그것도 한 봉지 담았다. 과일을 일부러 챙겨 먹진 않는데 이걸 담은 건, 몸을 생각해 머리가 내릴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이었다. ㅎㅎㅎ 장을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 해져있었다.
집에 와 장 본 것들을 정리하고 오랜만에 책상에 앉았다. 히야신스에 눈길이 간 것도 오랜만이었다.
근 이틀은 아무 생각도, 아무 신경도 쓰지 못했던 게 분명했다. 관심을 못 써둔 사이 화분의 겉흙이 말라 있었다. 물을 주며 살피는데 꽃 봉오리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곧 ‘팡’하고 터질 것 같았다. ‘며칠 관심 못줘서 미안해, 그래도 넌 네 살길 잘 찾아가고 있었구나, 기특해라’. 이 방에 있는 생명체중 제 컨디션 케어 못하는 건 나뿐이었던 거다... ㅎㅎㅎ 부지런히 귤을 까먹어야지. 나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도 않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두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더더욱, 나를 챙기는 역할과 나무라는 역할을 모두 해내야 하는 만큼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은 없어야겠다.
땡 !
글을 쓰면서 돌려놓은 스프가 다 데워졌다.
이제 이걸 맛있게 먹고선 약도 먹고 잠을 푹 잘 일만 남았다.
여러분도 몸살 조심 감기 조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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