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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ul 03. 2021

#9 아름다움

사라진 소리들이 가는 세상

"여기가 고향이신가요? 저희는 소리를 녹음하러 왔어요. 어르신이 생각하시기에 이곳의 아름다운 소리는 뭐가 있어요?"     


소리를 녹음하러 가게 되면 A는 으레 이렇게 묻곤 한다. 토박이로 보이는 어르신을 만나게 되면 꼭 이 질문을 하는데 돌아오는 것은 대답 대신 어리둥절한 표정일 때가 더 많다. 자신이 태어나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의 아름다움을 묻는 이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그것도 가볼 만한 명소가 아니라 아름다운 소리라니.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나는 그 순진하고 오묘한 표정을 A는 좋아했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고향의 아름다운 소리?”     


처음에는 무턱대고 녹음을 하러 간 적이 많아서 M과 A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질문을 해야 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그 어떤 사전 조사보다 이 인터뷰 방식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고향에서 계속 살아온 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이 그리고 외지인까지. 이들이 떠올리는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소리는 제각각이었다.     


고향에서 계속 살아온 사람에게선 "뭔 소리가 있어. 다 똑같은 소리지."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올 때가 많았다. 반면 고향에 다시 돌아온 이들은 평범했던 새벽의 새소리나 밤의 풀벌레 소리가 새롭게 들린다고 이야기한다. 아름다움은 발견이다. 어딜 가나 다 있는 소리도 아름답게 들으려는 마음에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된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도 이 섬의 아름다움 '베아뜨리체 루소'라고 하지 않았던가.   

   

A는 지난달 갔었던 이작도의 민박집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이분의 끝내주는 음식 솜씨는 A가 이작도를 아름다운 섬으로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우리 섬의 아름다운 소리? 아침의 새소리? 화분에 물 주는데 새들이 얼마나 재잘거리는지 몰라. 아! 엄마들이 노래하는 소리. 공공근로 하면서 같이 노래하는데, 나는 그게 좋아. 우리 아저씨 노래하는 것도 좋고. 그리고 큰풀안 파도소리. 또 뭐가 있지. 들꽃들. 아! 그건 소리가 안 나지."     


탁자에 올려놓은 양팔에 얼굴을 파묻던 아주머니의 수줍은 표정이 떠올라 A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 그 사랑스러운 표정을 A는 연평도에서 다시 만났다. 연평도 민박집 사장님의 차를 얻어 타고 오는 길이었다.      


"근데 거 마이크로 뭐 하는 거요?"

"소리를 녹음해요. 이 섬의 아름다운 소리를 녹음해서 알리려고요.”     

"아름다운 소리? 그럼 바닷가로 가야지."     


무심히 차를 운전하던 민박집 사장님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가래칠기 해변이란 곳으로 M과 A를 데려다주었다. 해변은 온통 몽돌이어서 파도가 세게 치면 돌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M과 A는 해변 가까이에서 녹음기를 돌렸다.      


가래칠기해변의 파도 소리, 구리동 해변의 파도 소리 그리고 매드라까리 숲길에서 들리는 소리들. 민박집 사장님이 사랑하는 연평도의 소리였다. M과 A는 사장님의 목소리와 함께 이 소리들을 녹음했다. 소리가 깊어지는 저녁까지 녹음하고 싶었으나 군사지역이라 계속 있을 수가 없었다. 통제할 수 없는 소리를 뒤로 남기고 아쉽게도 해변을 나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연평도만의 소리가 무어냐는 질문에 뜻밖에 꽃게라는 답도 얻었다. 사장님은 그물에서 꽃게를 뜯어내는 작업장까지 안내해주었다. 요즘 꽃게가 많이 잡히지 않아 그물 소리는 슬프게 들렸다.    

 

"사람들이 섬에 오면 기념관이나 이런 데를 가는데 나는 자연으로 가면 좋겠어. 이렇게 좋은데…."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운 소리란 무엇일까. 아름다움을 들으려는 마음일까. 자신이 알고 있는 아름다움을 들려주고픈 마음일까. 그 순수하고 오묘한 표정을 소리로 담을 수 없어 A는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거는 결국 소리로 담지 못하겠죠?”

“어떤 거요?”     


낚싯대를 드리운 방파제 앞바다엔 커다란 달이 떠 있었다. M과 A는 소주를 기울이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아까 사장님의 표정 같은 것. 우리가 본 아름다운 별들. 그런 소리가 없는 것들이요.”

“원래 소리가 없으니….”

“그런 것들도 소리가 있었는데 어디론가 가버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풋. 진짜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원래 소리가 있었는데 이곳이 싫어서 입을 다문 것 같아요.”     


A의 표정은 어딘가 슬퍼보였다. M은 더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왜 아예 사라지지는 않았을까요?” 

“그러게. 저 달도 별도 다 사라지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정작 그럴 수는 없었던 게 아닐까. 말하자면 책임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우주의 책임?”

“그러면 사라진 소리들이 가는 세상이 있을까요?”     


M의 눈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A는 M을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그런 곳이 있다면 가고 싶어요? 사라진 소리들이 머무는 곳?”

“글쎄요. 은행나무에서 들었던 것처럼 구천을 떠도는 소리라면 좀 무섭겠네요.”

“풋. 그러네요.”     


소리를 모조리 삼킨 것처럼 바다는 고요했다. 낚싯대를 드리운 자리에 물결이 소리도 없이 고요히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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