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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ul 24. 2019

#7 교동도

사라진 소리들이 가는 세상

봄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자 M과 A는 섬으로 떠날 채비를 차렸다. 소리로 섬여행을 떠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우격다짐으로 해낼 생각이었다. 어차피 방송국 놈들에겐 선의란 없다. 제작비가 없으면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게 A의 생각이었다. 그동안 협찬물을 제작하며 녹음 연습도 하고 제작비도 마련한 차였다.      


M과 A는 첫 녹음지로 강화 교동도를 선택했다. 차로 갈 수 있는 섬. 무언가 잘 못 되어도 괜찮을 만만한 섬이었다. 마침 봄인지라 제비가 찾는다는 대룡시장도 그렇고 오래된 이발소에서 이발하는 소리도 좋은 아이템이겠다 싶었다.     


아직 바람은 차가웠지만 봄의 기운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들판 여기저기에서 솟아나는 푸릇푸릇한 봄의 기운들은 마치 자신들의 소리를 들어달라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M과 A는 차로 달리던 길을 멈추고 들판에서 피어나는 소리를 바라보았다. 눈으로 보이는 것들을 모두 어떻게 소리로 담을 것인가. 그런데 소리로 담는다 한들 그게 어떤 소리인지 알 수 있을까.      


“필승. 신분증 보여주시지 말입니다.”     


그들을 맞이하는 교동도의 첫소리는 검문하는 군인들의 목소리였다. 교동도는 북한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섬에 가려면 민통선을 넘어야 했다. 도로를 차단하고 군인들은 일일이 방문객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섬에 들어가서도 특이한 소리가 이어졌다. 대북방송이었다.      


바닷가 철책에 놓인 대형 스피커에서는 쌍팔년도에나 들었던 목소리가 북한을 향해 비난의 문장을 쏟아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길에서 주웠던 삐라의 유치한 그림과 색깔이 A의 머리에 떠올랐다. 소리가 불러내는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 순간 놀라웠다. 소리를 녹음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군인들이 나타나 녹음을 저지했다.   

   

“이런 거 촬영하시면 안되지 말입니다.”     


불심검문에 대북방송까지 예상치 못한 소리에 마음이 불안해졌지만 막상 섬을 돌아다니다 보니 여느 곳과 마찬가지의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이어졌다. 갈아엎은 밭은 씨앗을 기다리고 논은 물을 기다리는 그런 봄의 시골. M과 A는 밭에 내려가 삽질을 하며 소리를 녹음했다. 둑방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한가로운 봄의 시골 풍경 소리를 연출해보았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근처에 천년 나이를 먹은 은행나무가 있다는 마을을 가보기로 했다.     


은행나무가 무슨 소리를 내진 않겠지만 그리 오래 살며 나무가 들었을 소리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지친 몸도 쉴 겸 거대한 은행나무 아래에 녹음 장비를 설치하고 늘어지려 할 때 할머니 한 분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셨다.     


"여기서 뭐해? 커피 줄까?”

“은행나무에서 무슨 소리가 날까 기다리고 있어요,”

"은행나무가 무슨 소리를 내. 호호호.”

“900년이나 살았으니 무슨 소리를 들었을지도 궁금하구요.”

"새소리 바람소리나 들었겠지. 뭔 소리를 들어. 호호호"     


호호 할머니는 은행나무 바로 앞에 사는 분인데 전쟁 통에 북에서 피난 내려온 뒤 계속 그 집에서 살고 계신다고 한다. 남편은 죽고 아이들은 모두 장성해 뭍으로 떠났다. 잠시 뒤엔 그 옆집 할머니가 오셨는데 좀 더 젊어 보였다.     


"아니 이 사람들이 은행나무 소리 들으러 왔대. 호호호."

“젊었을 땐 여기에 줄을 매고 그네를 탔었는데.”

"떡 줄까? 떡이나 먹고 가."     


호호 할머니가 떡을 가지러 간 사이 젊은 할머니가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전쟁 통에 교동에서 태어났고 아버님이 고향 연백으로 어머니를 남기고 월북하셨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은행나무 옆에 살며 아버지를 기다리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이북에서 넘어온 호호 할머니보다 교동에서 태어난 할머니의 사투리가 더 심하게 들렸다.     


"어려서 죽을 뻔했디요. 여기 죽은 사람들 많아…."

"월북한 가족은 저기 바닷가에 한 줄로 세워 놓고 다 총으로 쐈다고 하더라고. 빨갱이 가족이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에 M과 A는 숙연해졌다. 해가 지려 하자 마을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대남방송이다. 북한 노래가 들리더니 알아듣기 어려운 여자의 목소리가 원혼처럼 대기를 떠돌았다. 매일 듣는 소리인데 할머니들도 한밤중에는 그 소리가 무섭다 한다. 소리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소리가 붙들고 있는 기억 때문이 아닐까 A는 생각했다.      


M과 A는 은행나무 아래에 앉아 소리를 듣는다. 나무의 넓은 품에서 새들이 재잘거린다. 남에서 부는지 북에서 부는지 바람도 시원스럽게 지난다. 연신 호호 웃는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대남방송에 뒤섞인다. 기괴하고 을씨년스럽다.      


말수가 별로 없는 젊은 할머니는 가을에 향교에서 제사 지낼 때 다시 오라며 집으로 들어간다. 그때는 밥을 차려주시겠다고. 어둠이 내리자 무서운지 개가 컹컹 짖는다. 드넓은 논과 밭은 아무 말이 없다. 아무 소리가 안 나는 것도 무섭고 소리가 나는 것도 무섭다. M과 A는 깜빡이는 빨간색 녹음 버튼만 계속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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