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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ul 10. 2021

#6 전등사

사라진 소리들이 가는 세상

밤새 눈이 내렸다. 눈송이가 제법 크다. 눈이 쌓이기 시작하며 A의 근심도 불어나기 시작했다. M과의 녹음작업은 이제 꽤 익숙해져 가는데 겨울 날씨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지난달 봉선사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광릉수목원 비밀의 숲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봉선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해야만 한다. 새벽 예불 때부터 발가락이 오그라들더니 아침 숲 소리를 녹음하던 순간에는 온몸이 그대로 스테이가 되어버렸다. 이러다 템플의 망부석이 되어 영원히 숲 소리를 듣게 되는 게 아닌가…. 그날의 통증이 되살아났다. 나미아비타불.     


“피디님, 오늘도 날씨가…. 저희 전등사 가는 거… 맞죠?”

“네. 협찬으로 들어온 건데 해야죠. 우린 전생에 죄가 많은가 봐요.”     


전등사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었다. 절밥은 많이 먹어도 금세 배가 고팠다. 방을 배정받고 내복을 챙겨 입었다. A는 따뜻하다고 해서 아내가 몽골 여행 다녀오며 사준 낙타털 양말도 신었다. 양털에 거위털이며 낙타털까지 꾸역꾸역 챙겨 입으며 A는 쓴웃음이 지었다. ‘나를 비우고, 나를 만나는 시간’ 템플스테이를 체험하며 온갖 동물 털을 뒤집어쓰고 있다니. 관세음보살.     


눈이 녹아 사찰의 땅이 온통 진흙탕이 됐다. 그나마 바람이 불지 않고 기온도 뚝 떨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법고, 목어, 운판, 범종. 사물 소리부터 녹음을 시작했다. 법고는 북으로 지상의 네발 달린 짐승을 위해, 목어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목탁으로 수중생물을 위해, 운판은 쇠로 만든 구름으로 날짐승을 위해 그리고 범종은 모든 중생을 위해 울리는 소리이다. 소리도 소리이지만 거창한 그 뜻이 더 놀라웠다.      


저녁 예불을 드리고 108배가 이어졌다. 108배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A는 방석을 걷어치우고 맨바닥에 일부러 ‘쿵쿵’ 소리를 내며 엎어지는 걸 반복했다. 명상 음악 때문에 소리가 신통치 않았다. 참선도 소리가 없는지라 A는 스님께 자청해 죽비를 몇 대 얻어맞았다. 하지만 이런 걸로는 전등사 템플스테이를 홍보하기에는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땅이 질펀해 아침에 마당을 비질하는 울력 소리도 담을 수 없게 되었다. 한겨울이라 이런저런 풀벌레 소리도 없이 절은 고요했다. 이제 믿을 것은 새벽을 깨우는 목탁 소리, 도량석뿐이었다.     


새벽 3시. 다시 온갖 동물 털을 뒤집어쓰고 방을 나오니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기지개를 켜며 다가온다. 사찰의 새벽 소리를 녹음해보려 일부러 일찍 일어났는데, 녀석이 자꾸 따라다니며 ‘야옹 야옹’ 소리를 낸다. 휘영청 달은 밝은데 고양이 소리 말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새벽 4시. 멀리서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목탁이 울리기 시작한다. 고요하던 절간이 작은 목탁 소리에 울린다. 스님은 염불을 외며 경내를 걷기 시작한다. 약사전을 지나고 대웅전을 지나더니 다시 소리만 들리고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스님을 따라가면서 녹음할까요?”

“아니요. 여기서 그냥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M은 소리를 낮추라는 표정을 짓고는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저렇게 꼼짝없이 서 있다간 진짜 나무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마이크를 양팔에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천년 묵은 사찰의 고목처럼 보였다. 자신이 혼자 녹음하러 다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녹음 장비와 마이크를 보며 A는 M이 더 듬직해 보였다. 디지털 녹음 믹서에 입체 음향 녹음을 위해 여러 마이크를 연결했다.      


멀어졌던 목탁 소리가 다시 점점 다가온다. 염불 소리도 들리기 시작하더니 저 아래에서 스님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들을 보면 스님이 혹시 놀라기라도 할까 봐 M과 A는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A는 헤드폰을 받아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온다. 맑고 청아한 목탁 소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온다. 작은 나뭇조각이 어떻게 이렇게 큰 소리가 되어 쩌렁쩌렁 세상을 깨울까. A는 실제보다 더 크고 선명하게 들리는 헤드폰에 귀를 더 집중했다. 발소리와 염불 소리 그리고 목탁 소리가 새벽 공기처럼 선명하다. 다가오던 소리가 그들을 지나쳐 다시 작아질 때까지 숨을 죽인다.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였다. 나무의 몸을 빌린 소리는 크고 맑지만 또 부드럽고 우아했다.  

    

소리를 듣고 일어났는지 절 방에 불이 하나둘 켜진다. 멀어졌던 목탁 소리는 다시 그들을 돌아 멀리 나간다. 마을 쪽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와! 소리가 입체적으로 들리네요.”     


공간을 돌며 발로 음향을 믹싱하는 스님의 엄청난 스텝과 내공에 A와 M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공간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발로 음향을 입체적으로 믹싱을 해내다니.      

“스님이 살아있는 돌비(Dolby)십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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