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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ul 10. 2021

#8 교회 종소리

사라진 소리들이 가는 세상

“내일 종을 좀 칠 수 있을까요?”

“종을 치지 않은 지 오래라…. 될까 모르겠네.”

“요즘엔 주일에 종을 안 치나요?”

“그게 민원이 많아서. 요즘 도심에서는 종을 못 쳐요.”

“내일 딱 한 번만 치시죠.”          


소리를 녹음하러 다니다 보니 종소리를 담을 일이 많다. 사찰 범종도 치고 교회 종도 친다.  어떤 공간의 장소성을 드러내는 데에 이만한 소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심 속 사찰과 교회 종은 소음 문제로 이제 소리를 낼 수가 없다. 어느새 종소리는 소음이 되었다. 소음은 박멸해야 할 대상이다.     

      

민원이 들어오면 해결한다고 대뜸 얘기해놓고 M과 A는 무작정 내동으로 향했다. 기독교 역사의 그 유명한 현장.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제물포로 들어와 세운 최초의 교회, 제물포 내리교회가 있는 곳이다. 그 시작이 1885년의 일이다. 1901년 십자가형 벽돌 예배당을 건축할 때 선교사들이 미국에서 가져온 종을 2층에 설치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 전쟁물자로 쓰기 위해 집안의 숟가락과 밥그릇까지 빼앗아가던 시절에도 살아남은 종이다.          


사다리를 놓고 2층 종탑에 올랐다. 요즘에는 종을 칠 일이 없어서 2층 종루에 임시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했다. 원래는 종에 매달려 있는 끈을 1층에서 잡아당기는 방식으로 쳤지만, 종을 치지 않으면서 끈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2층에 간신히 걸친 알루미늄 사다리가 떨린다. 경사가 거의 80도는 되어 보인다. 사다리가 떨리는 건지, M의 다리가 떨리는 건지 오르는 일이 아찔해 보인다.      


종이 있는 십자가 예배당은 2013년에 다시 지었다. 1901년 처음 지어진 예배당을 벽돌 크기까지 그대로 재현했다. 그 흔적이 머릿돌과 몇 개 남은 벽돌 그리고 바로 이 종이다. 예배당 종루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다. 다행히 종은 사진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안내를 해준 목사님도 오랜만에 본다고 한다. 사용하지 않으면 눈에서 멀어지고 눈에서 멀어지면 소멸하기 마련이다. 종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M과 A는 좁은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안내를 맡아준 목사님이 종을 흔들어 소리를 낸다. 박자가 맞지 않아 종과 추가 따로 노니 소리가 어색하다. 그렇게 몇 차례 하다 보니 서서히 소리가 듣기 좋아졌다. 미국에서 온 종이라 그런지 어린 시절 보았던 미국 영화의 교회 종소리가 떠오른다. 푸른 언덕 위의 교회 예배당에서 예배를 알리는 풍경. 130여 년 전 이 땅을 처음 밟은 미국 선교사들이 꿈꾸었을 당시 모습은 어땠을까. 사찰의 범종 소리만 듣던 개화기 조선인들에게 이 종소리는 어떻게 들렸을까. A는 눈을 감고 그때 풍경을 떠올려 보았다.      


종루 안에서 녹음을 하고 내려와 밖에서도 다시 녹음을 했다. M과 A는 민원이 생길까 봐 녹음을 서둘러 마쳤다. 먼지 구더기 속에서 종을 치느라 땀을 뻘뻘 흘리던 목사님도 이제 되었다는 듯이 숨을 크게 내쉰다.           

“태초에 하나님은 소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소리를 들으셨죠.”

“네. 그건 그렇고 교회에 유럽식 차임벨이 있다고 하던데, 그것도 내친김에 한번 치면 안 될까요?”

“….”

“구경만 할게요.” 

“주여.”

“사진만 찍을게요.”

“차임벨은 고장이 났어요.”     


내려올 때 누군가 사다리를 붙잡아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교회를 관리하는 관리 권사님이라고 한다. A는 관리 권사님께 사정하여 차임벨이 있는 교회 본당 종탑으로 향했다.        

   

“사진 찍으러 여기 많이 와요. 사방을 훤히 볼 수 있는 곳이 여기예요.”       

   

종탑에 오르니 일대가 훤히 보인다. 자유공원에서 보았던 원경과는 달리 가까이에서 동인천 주위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거대한 차임벨이었다.          


“와!”          


M과 A는 탄성을 질렀다. 종탑에는 18개의 크고 작은 종들이 나란히 층을 이루고 있었다. 큰 종들은 종탑 가운데에 작은 종들은 종탑 창문에 고정되어 있다. 마치 그 모습이 오래도록 숨어 지내는 아름답고 거대한 괴물 같아 보였다. 탑에 갇힌 불을 뿜는 드래곤. 괴물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너무 아쉽네요. 이거 작동이 어떻게 안 될까요?”

“자동 장치가 고장이 나서. 이제 종을 치지도 않지만, 작동이 안 돼서 칠 수도 없어요. 고쳐보려고도 했는데 수리비가 너무 많이 들어요. 천만 원도 더 든다나. 할 수가 없어. 이 종소리가 정말 듣기 좋은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종소리가 가장 아쉬운 것은 그였다. 소리를 들려주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더니 종과 짝을 이룬 쇠망치를 손으로 움직여 소리를 내어 본다. 소리가 깨끗하고 은은하다.       


“와! 소리가 너무 좋네요.”

“아까 종소리하곤 완전 다르지. 이거는 멜로디 연주도 되는 거예요.”          


그러더니 큰 종과 작은 종을 차례로 하나씩 쳐본다. A도 그처럼 쇠망치를 손으로 움직여 종을 쳐보았다. 눈치를 보니 M은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선생님, 그럼 우리가 수동으로 종을 좀 쳐볼까요? 저희랑 선생님이 차례로 한 번씩 치면서 이 소리라도 녹음을 해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그들만의 수동 차임벨 연주가 시작되었다. 어느새 그는 커다란 종들 사이의 작은 틈새 안으로 기어들어가 있었다. 이렇게라도 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간절함이 그에겐 있었다.          


“자, 그럼 큰 종부터 쳐볼까요. 선생님부터 시작해주세요.”      

‘딩~ 동~ 댕~ 동~’           


서로 다른 음을 내는 종을 쇠망치로 하나씩 두들겼다. 어떤 종이 어떤 음을 내는지 모르기 때문에 큰 종부터 작은 종 순서로 음을 냈다. 이렇게 몇 번을 하다 보니, 어떤 음을 대충 알 것 같아서, 나중에는 두서없이 이것저것 종을 두들겨 보았다.           


‘딩동딩땡동딩’          


차임벨은 음악 연주가 가능한 종이다. 종탑 아래에 있는 기계의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멜로디를 자동으로 들을 수 있다. 그걸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손으로 흉내 내려니 생각처럼 종소리는 유려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종소리를 들은 사람이라면 ‘오랜만에 종소리가 나네. 그런데 소리가 왜 이렇지?’ 했을 터였다.       


녹음을 마치고 그들은 웃음이 터졌다. 자동으로 움직여야 할 쇠망치를 수동으로 두들겼으니 그 상황도 우습고 그렇게 만들어낸 소리는 더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녹음을 다니던 그 어떤 순간보다도 A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는 아름답고 거대한 생물에 잠시나마 숨을 불어넣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엉성한 연주였지만 종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너무나도 맑고 투명한 소리를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그것이 그들은 고마웠다.           


“선생님 너무 고마워서,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간직하고 싶은데 같이 사진 한 장 찍을까요?”    


A는 이곳에서 꼭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소리를 녹음하러 다니며 오늘처럼 벅찬 마음이 든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준 동화 속 드래곤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소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를 만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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