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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ul 10. 2021

#3 일기

사라진 소리들이 가는 세상

잠을 뒤척이던 A는 일어나 식탁에 앉는다. 어둠이 익숙한 듯 불도 켜지 않은 채 물을 따라 마신다. 그리곤 숨을 크게 한번 내쉬더니 노트북을 연다. 빛이 A의 얼굴에 비취자 무표정한 그의 얼굴이 드러난다. 낮에 써두었던 글을 불러내어 다시 읽는다. '함박눈'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글을 끝까지 읽던 A는 제목을 수정하려다 노트북을 다시 덮는다. 식탁은 도로 어두워지고 A의 얼굴도 사라진다. 그렇게 한참 어둠 속에 있던 A는 다시 노트북을 열고 제목을 '눈 소리'라고 수정한다.           


함박눈이 내린다.

눈이 오면 세상은 더 고요해진다. 

눈은 소리를 흡수하며 하얗게 부서져 내린다. 

오늘은 내 생일

소원을 빌기 직전 침묵이 동네에 감돈다. 

가로등도 벌벌 떠는 골목

눈 쌓인 곳만 밟으며 걷는다.     

뽀드득 왜그래 아이참 코로나 지겨워 거짓말 못됐어 배달요 우울해.     

눈은 소리를 토해낸다. 

눈 속에 격리된 소리들

발자국이 더러운 토사물처럼 내 뒤를 따른다.     

아니야 오지마 다음에 그럴까 거짓말 나빴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눈이 내린다. 

촛불이 꺼진다. 

눈 속에 몰래 소원을 말해본다.

눈을 뭉친다. 

허공에 던진다. 

소리를 끌어안고 함박눈이 쏟아진다.           


A는 열린 창문으로 다가가 선다. 주차장에는 눈사람이 마스크를 쓴 채 홀로 눈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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