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띵띵띵” 오늘도 내음 씨 휴대폰에 배달 알림이 떴다. 이제 영양제를 먹듯이 하루 한번 배달 알바는 익숙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휴대폰을 열어 확인해보니 음식 픽업까지는 14분, 그리고 목적지는 집에 가는 루트와 멀지 않은 아파트였다. ‘오케이 잘 됐네. 루트도 좋고 또 5,400원짜리네. 요새 날이 추워서 그런지 배달료 비싼 건수가 자주 걸려서 좋구나’ 내음 씨는 픽업 장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번에는 카페였다. 주문내역을 보니 초콜릿과 딸기 타르트 같은 디저트 류였는데 요청사항 칸에 ‘조심해서 와주세요~♡♡’이라고 적혀 있었다. ‘메뉴도 메시지도 달달하구먼 ㅎㅎ’ 저 앞의 신호등을 건너서 은행이 있는 골목으로 꺾어 3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이었다. 날씨는 추웠지만 밖에 나올 수 없는 누군가를 대신하여 달달한 디저트를 가져다준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덜 추운 것 같았다. 픽업을 완료하고 배달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지도를 보니 이번에는 주상복합건물인 듯했다. 1층부터 3층까지 여러 가지 간판들이 걸려 있었다. 주상복합 건물들은 1층에 상점들이 주로 있어서 가끔 입구를 찾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김밥집과 칼국수 집, 세탁소를 지나면서 입구를 찾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건물 한 바퀴를 다 돌기전에 한 두 가게만에 찾지만 운이 없으면 한 바퀴를 다 돌아도 못 찾아 다시 돌 때도 있었다. 편의점을 지나니 작은 문 하나가 있었다. 문 위에 아무 표시가 없는 걸 보니 정문은 아닌 것 같은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찌 됐건 입구를 찾은 것 같아 걸음을 재촉했다. 입구를 들어서는데 누군가 내음 씨를 불렀다. “어디 가세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의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경비 복장을 하신 노인장께서 서 계셨다. 그런데 경비 모자를 쓴 차림새가 어디서 본듯한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최근 내음 씨는 배달을 하다가 이상한 일을 겪은 적이 한두 번 있어서 노인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관심이 더 갔다. “아 네, 배달입니다. 819호예요” “추운데 고생 많으시구먼. 요새 사람들이 정신없이 살아서 자기가 배달시켜놓고 시킨 적 없는데 왜 낯선 사람들 들여보내냐고 항의들을 해서 한 번 물어본 거요” “아 네, 여기 주소 보시면 아시겠지만 확실하고요. 만약 안 시켰다고 하면 확 제가 먹고 기억 깜박깜박하는 사람들 혼찌검을 내드리겠습니다.” “그게 뭔 소리여, 나 웃으라고 하는 소리여? ㅎㅎ 그런데 왜 그걸 지 혼자 먹는다고 하는가, 나랑 같이 먹으면 몰라도” “한 번 웃으셨으면 됐죠 ㅎㅎ. 이게 초콜릿 하고 단 게 많아서 어르신 이빨에 안 좋으실 까 봐 제가 다 먹어드리려고 했습니다. 단거는 danger, 위험한 거 아시죠?” “뭔 소리여. 젊은 사람이 썰렁하구먼. 어서 올라가” “넵, ㅎㅎ 죄송합니다. 고생하세요 어르신” “아 그리고 말 나온 길에 한 마디만 함세. 젊은 사람이 성격도 밝고 싹싹하세 내가 하는 말인데 어찌 됐건 젊은이가 가져다 준 것들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 준다면 너무 깊게 생각하고 따지지 말고 열심히 계속 갖다 주게. 산타 할아버지는 아니더라도 산타 청년쯤 된다고 생각하고” “네? 아.. 네... 저야 뭐 용돈도 벌고 좋은데요 뭐. 잘 알겠습니다” 시간이 초과될까 봐 경비 할아버지와 대화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내음 씨는 돌아섰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한 말에 고개가 갸우뚱 해졌다. 무언가 내음 씨에 대해 알고 하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 엘리베이터가 띵 하고 울리고 문이 열렸다. “휘이이잉~” 갑자기 달짝지근한 꿀차 냄새와 함께 바람이 불어왔다. 최근 내음 씨에게 있었던 황당한 일이 있기 전에 나타난 냄새와 바람이었다. 눈을 뜨자 이미 엘리베이터는 문이 닫힌 채로 올라가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게 무엇인지 내음 씨는 알 수 없었다. 문이 열리고 내음 씨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런데 내린 곳은 도서관이었다. 뒤쪽으로 책들이 가득 꽂힌 서가가 늘어서 있었고 그 앞 오픈형 책상에는 스무 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책을 쌓아 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이러면 어디가 819호지?’ 내음 씨는 시간 초과가 될지 모르는 배달이 먼저 걱정되었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책상 사이로 몇 발자국 걸어갔다. 그런데 책상 위에 번호표가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앞에 있는 자리에 ‘797’이 적혀 있었다. ‘어, 그러면 819번도 이 근처겠네’ 내음 씨는 근처 자리 번호표를 확인했다. ‘819’이 적힌 자리에는 뿔테 안경을 쓴 남학생이 머리를 긁어가면서 하품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킹카는 아니군’ 내음 씨는 그 남학생의 표정과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기요, 이거 배달이에요” “네? 무슨 배달이요? 저 안 시켰는데 이상하네. 응? 여기 무슨 카드가 있네요? 참 네 누가 또 보낸 거야. 이놈의 인기는 참” 내음 씨가 어이없어하는데 그 학생은 당당하게 포장박스 겉면에 붙어 있던 작은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노란색 메모지가 들어 있었다. 메모를 읽는 남학생의 눈은 점점 더 커졌다. 그런데 원래 실 같은 크기여서 커지긴 했으나 그렇게 크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저씨, 이거 누가 보냈어요? 제가 공부하는 모습에 관심이 있어서 보냈데요. 지금 도서관 1층 입구에서 커피라도 한 잔 하자는데요?” 그 남학생은 너무 기쁨에 겨운 나머지 내음 씨 팔을 두 손으로 꽉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내음 씨는 아팠다. 팔도 아팠지만 머리가 큰 내음 씨를 그 남학생이 앞뒤로 흔들자 머리가 휘청이면서 온 몸에 무리가 가며 전신통증이 왔다. “아.. 엇.. 진정하세요 난 누가 보냈는지는 모르고요. 그냥 배달만 한 거예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지 말고 빨리 1층으로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음 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얼른 굶주린 사자에게 먹이를 던지듯 1층에서 기다리는 사람에 대해 일깨 줘 주었다. “앗... 맞다. 깜박 잊고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얼른 가봐야겠어요” 그 학생은 흔들던 내음 씨를 놓고 다리를 타이어처럼 동글게 말더니 질풍같이 계단으로 내달렸다. 그 학생 때문에 어찌나 바람이 센지 꿀차 냄새만 있었으면 또 이상한 곳으로 가는 걸로 착각할 뻔했다. 영훈은 순식간에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숨찬 가슴을 잡고 입구에 자기를 기다린다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입구에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긴 생머리의 여학생이 책을 가슴에 품고 서있었다. 아직은 영훈을 보지 못한 것 같다. 봤으면 분명 비명을 질렀을 수도 있었을 텐데. 영훈은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은정의 옆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하지만 거친 숨소리와 함께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초콜릿 보내셨지요?” “네? 아뇨 저 다른 사람에게 보냈는데요? 누구세요? 어떻게 초콜릿을 아세요?” “819번에 보내신 분 아니에요? 이 메모가 있던데요?” “어머? 이걸 어떻게 그쪽이 가지고 계세요? 분명 가죽재킷 입고 차은우처럼 생기신 분이 앉아 있었는데” “아 가죽 재킷이요? 그 녀석 제 오른쪽이었는데 820번. 819번은 저예요” “아 네 죄송해요. 당황스럽네요. 제가 번호를 잘못 봤나 봐요” “괜찮아요. 초콜릿 하고 타르트 맛있는 냄새가 나던데 사주신 것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커피라도 대접하려고 했죠. 기왕 이렇게 된 것 저와 커피 한잔 하시죠? 가죽재킷 그 친구는 아까 여자 친구하고 나가던데요” “아 험.. 네. 험험... 여자 친구요? 세상은 참 불공평한 것 같네요. 그럼 뭐 그렇게 할까요? 꿩 대신 닭이라도.. 험험” “네 저도 꿩보다 닭 좋아해요. 나중에 통닭이나 같이 먹으러 가시죠. 험험” 내음은 영훈이 계단으로 사라지고 나서 잠시 동안 멍한테로 서있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에서 배달완료 버튼을 눌렀다. 따뜻한 꿀차 냄새와 한 줄기 강한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왔다. 내음은 건물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잠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경비 할아버지의 말이 떠올라 아무려면 어떠냐 싶어 에라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띵띵” 핸드폰에서 알람이 들려 내음 씨는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배달을 받은 고객으로부터의 글이 게시판에 등록되었다는 알람이었다. 이제 거의 두 달째 접어든 배달이지만 고객으로부터 글을 받은 적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내음 씨는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추운데 잘 가져다주셔서 감사해요. 타르트가 아무래도 오다가 흔들려서 망가질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그대로 잘 왔네요. 오늘 남편과 3년 전 만난 뜻깊은 날이라 좀 의미 있는 디저트였어요~. 도보로 배달하셔서 무사히 잘 온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내음 씨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과 이 메시지에 어리둥절했지만 아무려면 어때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경비 할아버지 말씀대로 지금은 깊게 따지지 말고 사람들이 기뻐한다면 그냥 계속 배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결정일 것이라 생각했다. 내음 씨는 이제야 퇴근을 한 기분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겨울인지 봄인지 모를 정도로 따뜻하고 발걸음도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