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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을 아내와 상의하는 이유

다 이유가 있다

by 심내음

예전에는 몰랐었다. 회사에 다니지 않는 아내와 회사 일에 대해서 상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내가 회사 그만둔지도 오래되었고 같은 회사를 다닌 것도 아니어서 회사 인물이나 상황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아내에게 말해서 무슨 소용이 있냐고. 나도 솔직히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냥 퇴근해서 부부간의 작은 대화의 일종으로 말하는 차원이었지 그 대화를 통해서 부서 이동이나 상사에 대한 처신 관련 결정을 하고 실제로 실행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하지만 몇 해전부터 나는 회사와 관련된 특히 인사적인 부분에 대해 아내와 상의하고 있고 상의한 대로 실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

광고도 많이 하는 대기업을 다녔지만 가족들은 내가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면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내가 회사에서 업계에서 인정을 받아도 가족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외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담당 국가나 업무를 변경해야 할 때 가족들에게 이야기하고 가족들이 선호하는 업무와 국가를 선택했다. 비록 그 업무나 국가가 지금 사내에서 주목도가 떨어지더라도 가족들의 의견에 따랐다. 솔직히 내가 골랐던 국가나 업무도 과거에 그렇게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혼자 선택한 결과로 흔히 말하는 고속승진, 인센티브를 받은 적은 없다. 그래서 더욱 가족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있다. 가족들의 선택이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나에게 가져다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고속승진, 인센티브는 아니지만 확실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이다.

2.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예전에는 확실히 선배, 동료, 친구 들과 진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내 가족보다 나를 생각해서 말해주는 이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들의 충고에는 어느 정도 자신들의 이익이 내재되어 있던 경우가 많았다. 같이 일하던 회사의 동료는 내가 더 능력 있으니 현재 일에 만족하지 말고 다른 큰 일을 맡으라고 했지만 내가 회사를 바꾼 후 나와 같이 있던 그 회사 그 부서에서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는 포스트를 비교적 쉽게 따내었다. 나는 동료의 충고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당시 그 동료의 해외 주재원 선발의 경쟁자였던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내 상사였다. 내가 역량이 뛰어나니 현재 부서에서 만족하지 말고 다른 부서로 이동해서 더 큰 국가와 업무를 담당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처음에는 내 상사가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기뻤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부서에서 업무를 하기 싫어 나를 다른 부서로 이동시키고 싶은 의도였다. 이유는 예전 그 상사와 둘이 같이 했던 한 업무 관련하여 그 상사가 잘못한 부분들을 내가 너무 자세하게 알고 있어서 다른 부서원들을 통솔할 때 내 존재가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나와 업무적으로 이해관계가 없다. 그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고 이해타산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행복해야 가족들 모두도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내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 입장에서 고민하고 충고를 해주기 때문에 더 가치 있는 조언이라 할 수 있다.

3. 여성에게는 ‘촉’이 있다.

그냥 논리적인 근거는 없지만 A와 B의 선택이 있을 때 아내는 B는 절대 아니니 A로 하라고 말한다. A와 B의 배경과 장단점을 아내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 얘기를 듣고 아내는 B는 절대 아니고 그나마 A가 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무척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내가 그냥 흘러버리기에는 너무 자신 있고 강하게 얘기한다. 물론 나의 아내는 무속인은 아니다. 그런데 과거를 보면 그런 선택이 50:50 우연으로 보기에는 훨씬 더 높은 승률을 보여서 그냥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물론 내가 나름대로 B가 아니고 A가 맞다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아내에게 A와 B 중 어느 것이 나을까 고민을 털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둘 중 하나가 고민이 되는 상황이라면 아내의 촉이 따르는 옵션이 조금 더 확률이 높은 것은 확실하다.

어느덧 20년 가까이 회사 생활을 했다. 앞으로 꽤 긴 시간을 회사에서 보낼 것 같다. 참고로 필자는 회사를 잘 다니다가 사업을 한다고 중간에 나와서 대박 실패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간 적이 있어 최소 60세까지는 사업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패기가 없다고 치부하기에는 사업을 실패했던 그 시기가 너무 혹독하고 추웠다. 아무튼 회사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도 선택의 경우가 많이 올 텐데 그때마다 나는 아내와 딸 뜰에게 오픈할 수 있는 부분은 솔직히 이야기하면서 결정할 생각이다. 물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내가 질 생각이다. 전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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