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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하려다 불편해진 일요일

단편

by 심내음

일요일 오후, 민재는 큰 딸과 함께 집으로 가고 있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는데 딸이 아침에 학원을 갈 때 너무 얇은 점퍼를 입고 나가 민재는 딸이 감기에 걸릴 것이 걱정되어 학원 끝날 시간에 두꺼운 점퍼를 들고 마중을 나갔었다. 부녀는 옷깃을 여미고 패딩에 달린 모자도 푹 눌러쓴 채 집으로 종종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빠, 너무 배고프고 추운데.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만 먹고 가요”
“컵라면? 엄마가 싫어할 텐데... 이따가 저녁 먹어야지.”
“저녁 먹으려면 세네 시간 있어야 하는데 나 아침에 너무 조금 먹고 나가서 배가 너무 고프단 말이에요. 엄마도 이해할 거야 응? 학원에서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래요. 먹으러 가요 아빠~”

민재는 평소에 사춘기 때문인지 무뚝뚝했던 딸이 안 부리던 애교를 다 부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 배가 고픈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음.. 뭐 먹을 건데?”
“컵라면은 육개장 사발면이지. 작은 사이즈로 요기만 할께요”
“그래 알았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편의점이 보였다. 민재와 딸은 곧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아빠, 라면하고 초콜릿도 하나만 사면 안 될까용? 이거 내가 좋아하는 건데”
“음.. 녀석.. 대신 초콜릿은 한꺼번에 다 먹으면 안 돼. 조금만 먹고 나중에 또 먹는 거다
“오키. 땡스 아빠”

민재는 컵라면과 초콜릿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켜고 편의점 앱을 열었는데 요새 편해서 자주 쓰는 앱이었다. 그 편의점에서 쓰이는 쿠폰도 자동으로 포함되고 편의점 포인트 적립과 결재를 한 번에 할 수 있었다. 계산대에는 편의점 로고가 박힌 조끼를 입은 나이가 60은 넘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계산대의 남자는 바코드 리더를 들어 민재의 휴대폰에 뜬 편의점 바코드를 스캔했다. 그런데 띠디딕 하고 ‘오류’라고 모니터에 표기되었다.

“이거 안돼요. 그냥 현금이나 카드 주세요”
“이거 길 건너 같은 편의점에서도 어제 했는데요 이상하네요. 한 번 더 해보시죠”

계산대의 남자는 인상을 잔뜩 쓴 채로 버튼을 몇 개 누르고 나서 바코드를 다시 스캔했다. 띠디딕하고 역시 ‘오류’라는 메시지가 모니터에 떴다.

“아 이거 안되잖아요. 그냥 다른 걸로 내요. 얼마 되지도 않는 걸 가지고”

그 남자가 짜증 난다는 듯이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얼마 되지도 않는 걸 가지고’라는 말을 내뱉자 민재도 발끈하여 말을 했다.

“뭐라고요? 이거 이 편의점 본사에서 만들고 배포한 앱이라고요. 써달라고 써달라고 수십 번 홍모 메시지를 받아 지금 휴대폰에 깔고 쓰고 있는데 얼마 되지도 않는 걸 가지고 쓴다니요. 안되면 뭐가 문제인지 여기서 일하시는 분이 알아보고 안내를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허 참. 난 그런 거 모르니까 그냥 돈 내요. “
“그런 거 모르다니요, 이 편의점 브랜드에서 쓰라고 하는 건데 적어도 왜 안 되는지 알아봐 주시거나 안되는 걸 미안해하시지는 못할망정 그걸 오히려 손님에게 뭐라고 하시는 게 말이 됩니까?”

민재는 정말 화가 났다. 아무리 본사와 가맹점의 관계라 하더라도 같은 편의점 브랜드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손님을 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문득 민재의 딸이 옆에서 이런 상황을 안절부절못하고 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더 화가 치밀었다.

“아빠, 그냥 내가 낼까? 나 돈 있어요”
“응 아니야. 아빠 있어. 그냥 다른 걸로 낼께”

민재는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어 계산대 앞 신용카드 투입구에 밀어 넣고 계산을 했다. 계산대의 60대 남자도 민재의 기세에 약간 주눅이 들었었는지 아무 소리 없이 계산을 하였다.

민재는 딸이 라면을 먹는 모습을 물그러미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계속 생각났다. 나이가 있으신 분들에 대한 존중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것에 앞서 고객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것은 나이로 덮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민재는 모처럼 비록 소소하지만 딸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일요일 오후의 시간을 날린 것 같아 씁쓸했다. 얼마 후 민재는 휴대폰에서 그 편의점 앱을 삭제했고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조금 멀어도 다른 편의점을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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