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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여행가 하루켄 May 10. 2020

봉준호 감독, 연영과 안 나왔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과거를 추적하는 건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현재를 직시하고,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해서 문제를 규정하는 게 중요하다.  단서를 찾기 위해 과거를 스캔했는데, 그 시절의 아픔이 기억나는 듯하다.  괜찮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하자.


학교는 감옥이다. 힘겹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끝에 물리학과에 들어간다. 수학시험 보면 앞쪽 2문제 빼고는 전부 한 줄로 답을 몰아적는 수포자인데 말이다. 군대 마치고 2학년 때 결국 자퇴를 하고, 위로와 휴식을 주던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연영과를 목표로 공부한다.  실기를 포기하고 오로지 시험 점수로 입학하려고 빡세게 공부한다.  


세월이 지나도 왜 그때 연영과에 원서를 안 넣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며칠 전 깨달았다.  원한만큼 점수가 안 나와서 겁먹고 꽁무니 뺀 거 아닐까?   의미를 잃어서 별생각 없이 만만해 보이는 영문과에 들어가 공부와 담쌓고 촬영 알바, 이벤트 알바를 하며 보낸다.  비싼 학비 축내며 이게 뭔 짓인가?  내 자식이 이렇게 산다면, 속이 뒤집어질 거 같다.


봉준호 감독, 연영과 안 나왔다.


첫 번째 단서다.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럴 거라 생각하는 통념대로 따라 했고,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영화를 만들려면 영화판에 가서 일하며 배워도 됐고, 영문과에서도 얼마든지 스스로 공부할 수 있었다.  출판사, 영화사, 이벤트 회사에서도 1년 이상 근무하기 힘들었다. 조직생활이 맞지 않아서 결국에 퇴사하게 된다.  


갓 태어난 애기를 촬영하고, 디지털 편집한 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당시만 해도 넌리니어 편집이 보편화되지 않아서 꽤 인기를 얻었다. 대기업 사내 방송국에서 디지털 편집 특강을 하게 되면서 영상제작 외주를 시작했다. 초기 사이버 캠퍼스 영상제작 외주를 맞아 회사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조직을 구성하고 인력을 관리하는 방법을 몰랐다.  좋은 인연과 기회를 스스로 잘라내 버렸다.


캐리어의 공백이 생기면서 30대 중반, 결국 평범한 아재가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자영업 시장에 뛰어든다.  소자본 대출을 받아서 당시 유행하던 잉크충전방을 오픈해서, 2년간 시원하게 말아먹는다.  이후, 수공예 꽃 쇼핑몰, 프러포즈 선물 쇼핑몰 등을 운영했지만,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10년 전 일본에서 잡화를 수입하던 중, 압박스타킹 거래처와 인연이 돼서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특정한 직업을 통해서 내 존재감을 확인받으려 했다.  맞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 맹목적으로 특정 직업을 신봉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고 싶고, 내 삶의 존재감과 의미를 일상에서 어떻게 매일매일 확인하는게 중요하다.  감추려 하지 말고, 포장하려 하지 말자.  글을 쓰면 작가 아니겠는가.  훌훌 털고 가자.


 



기능성 스타킹 쇼핑몰 <도쿄뷰티넷> 대표

녹취를 통한 자기 치유 글쓰기와 WPI 심리 컨설팅

생계형 독립제작자, WPI 심리 연구가, <어쩌다 심리> 독립 서적 출간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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