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과거를 추적하는 건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현재를 직시하고,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해서 문제를 규정하는 게 중요하다. 단서를 찾기 위해 과거를 스캔했는데, 그 시절의 아픔이 기억나는 듯하다. 괜찮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하자.
학교는 감옥이다. 힘겹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끝에 물리학과에 들어간다. 수학시험 보면 앞쪽 2문제 빼고는 전부 한 줄로 답을 몰아적는 수포자인데 말이다. 군대 마치고 2학년 때 결국 자퇴를 하고, 위로와 휴식을 주던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연영과를 목표로 공부한다. 실기를 포기하고 오로지 시험 점수로 입학하려고 빡세게 공부한다.
세월이 지나도 왜 그때 연영과에 원서를 안 넣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며칠 전 깨달았다. 원한만큼 점수가 안 나와서 겁먹고 꽁무니 뺀 거 아닐까? 의미를 잃어서 별생각 없이 만만해 보이는 영문과에 들어가 공부와 담쌓고 촬영 알바, 이벤트 알바를 하며 보낸다. 비싼 학비 축내며 이게 뭔 짓인가? 내 자식이 이렇게 산다면, 속이 뒤집어질 거 같다.
봉준호 감독, 연영과 안 나왔다.
첫 번째 단서다.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럴 거라 생각하는 통념대로 따라 했고,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영화를 만들려면 영화판에 가서 일하며 배워도 됐고, 영문과에서도 얼마든지 스스로 공부할 수 있었다. 출판사, 영화사, 이벤트 회사에서도 1년 이상 근무하기 힘들었다. 조직생활이 맞지 않아서 결국에 퇴사하게 된다.
갓 태어난 애기를 촬영하고, 디지털 편집한 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당시만 해도 넌리니어 편집이 보편화되지 않아서 꽤 인기를 얻었다. 대기업 사내 방송국에서 디지털 편집 특강을 하게 되면서 영상제작 외주를 시작했다. 초기 사이버 캠퍼스 영상제작 외주를 맞아 회사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조직을 구성하고 인력을 관리하는 방법을 몰랐다. 좋은 인연과 기회를 스스로 잘라내 버렸다.
캐리어의 공백이 생기면서 30대 중반, 결국 평범한 아재가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자영업 시장에 뛰어든다. 소자본 대출을 받아서 당시 유행하던 잉크충전방을 오픈해서, 2년간 시원하게 말아먹는다. 이후, 수공예 꽃 쇼핑몰, 프러포즈 선물 쇼핑몰 등을 운영했지만,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10년 전 일본에서 잡화를 수입하던 중, 압박스타킹 거래처와 인연이 돼서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특정한 직업을 통해서 내 존재감을 확인받으려 했다. 맞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 맹목적으로 특정 직업을 신봉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고 싶고, 내 삶의 존재감과 의미를 일상에서 어떻게 매일매일 확인하는게 중요하다. 감추려 하지 말고, 포장하려 하지 말자. 글을 쓰면 작가 아니겠는가. 훌훌 털고 가자.
녹취를 통한 자기 치유 글쓰기와 WPI 심리 컨설팅
생계형 독립제작자, WPI 심리 연구가, <어쩌다 심리> 독립 서적 출간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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