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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Oct 23. 2019

마지막 레슨

성진의 이야기- 끝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마지막 레슨 (파스칼 포자두 감독 2015)

*성진의 이야기 -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성진은 <마지막 레슨>이라는 제목을 보고서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알려주는 영화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왔는데 존엄사를 다룬 영화라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성진에게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성진은 2년 전 이맘때를 기억한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성진의 아버지가 자신의 죽음을 예고했던 날이었다. 성진의 아버지는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성진의 형들과 누나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조차 판단하기가 힘들어서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 됐든 아버지의 결심을 되돌리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절대로 그냥 한번 말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 레슨>의 마들렌은 자신의 92번째 생일 때 아들과 딸, 손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오랫동안 품어왔던 생각을 발표한다. 마들렌의 생일 스피치는 남편의 사랑을 받고 조산사로서 보람 있는 삶을 살았으며 자식들도 건강하니 행복했다는 말로 시작되지만 곧이어 가족을 얼어붙게 만드는 본론이 나온다. 모든 게 힘이 부치는 날이 오면 스스로 세상을 떠날 거라면서 그 날이 두 달 후로 다가왔다는 폭탄선언을 꺼낸 것이다.

  생일 선물로 최신식 TV를 받았지만 마들렌은 이 세상의 것에는 이미 아무런 관심도 없다. 의미 있는 것이 있다면 삶의 때가 묻어 있는 물건들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새로운 물건에는 전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최신 TV에도, 손자가 가져다 놓은 새로운 요리기구들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마들렌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선택권이다. 마들렌이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근거가 있다. 마들렌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나올 때마다 수첩에 하나씩 적고 그 위에 줄을 긋는다. 할 수 없는 일의 목록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져 간다는 뜻이다. 삶의 촛불이 하나씩 꺼져가고 있다.


  마들렌이 최종적으로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생긴다. 어느 날 운전을 하다가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전거를 보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순발력 부족으로 자전거 운전자와 하마터면 부딪힐 뻔한다. 그리고 상대방으로부터 ‘휠체어나 운전해.’라는 핀잔을 듣게 된다. 게다가 갑자기 멈춰 선 자동차가 요지부동이다. 뒤에 늘어선 차들이 요란하게 클락션을 울려대고 마들렌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이것저것 조작해보지만 차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른 운전자들로부터 욕설을 듣는다. 그 사건 후, 마들렌은 수첩에 운전하기를 적고 그 위에 줄을 그어 지운다.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기 전에 스스로 삶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차사고 사건은 이제 그 시기에 됐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다.

  마들렌의 죽음 선언은 아들과 딸의 반대에 부딪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딸은 어머니의 결정을 수용하는 것이 진정으로 어머니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들렌의 아들과 손자는 끝까지 할머니의 결정을 말리려고 한다.

  마들렌은 다량의 수면제를 준비한다. 약을 갈아 마시기 전에 가족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가족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그 순간을 기다린다. 마지막 작별을 할 순간을. 모두 마들렌을 생각하며 전화를 기다린다. 모두에게 힘든 순간이다. 긴장감을 녹이느라 애써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정작 마들렌은 죽음을 기다리면서 매우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딸에게 전화를 걸어 차분한 목소리로 작별인사를 한다. 딸 역시 웃음 반 울음 반으로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20:55분이라는 전자시계의 숫자가 보인다. 어머니가 떠난 시각이다.


  성진은 2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마음이 심란해졌다. 성진의 아버지는 <마지막 레슨>의 마들렌의 경우와는 좀 달랐다. 마들렌은 노화 이외에는 어떤 치명적인 질병도 없었다. 그런데 성진의 아버지는 암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선고는 받았지만 심각한 증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80대였던 아버지는 의료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 혼자서 움직일 수 있고 정신이 멀쩡할 때 삶을 중단하는 길을 택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이라고 했다. 어머니 역시 암으로 돌아가셨다. 항암치료를 받다가 병원에서 사망했는데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켜봤던 아버지는 자신은 절대로 그렇게 살다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버지의 선언을 들은 성진의 형제들은 처음에는 펄쩍 뛰면서 반대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혼자서 조용히 단식을 실행에 옮겼다. 아버지를 입원시켜야 한다는 형제들도 있었지만 뭔가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짓누르듯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입 밖으로 꺼내 의사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성진을 포함해서 형제들은 이성적으로는 아버지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문제는 감정이었다. 그 당시의 상태를 정당화시킬만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감정은 형제들을 껄끄럽게 만들었다. 머리가 아닌 감정은 그들에게 지금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아버지는 갈수록 기력이 떨어져 갔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조금씩 움직이면서 안정을 찾았다.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을 줍는 등 무리가 안 되는 한도 내에서 소일거리를 하셨다. 공복의 고통이 너무 심할 때는 포도주를 한 모금 입에 머금다가 삼키곤 했다. 그러면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서서히 마르고 감각은 무디어져 갔다. 아버지가 의식을 잃기까지 3주의 시간이 흘러갔다. 사람이 곡기를 끊었을 때 생명의 끈을 놓는 순간까지 3주 정도가 걸린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3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형제들은 서로 연락하기를 꺼려했다.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만 붙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형제들의 관계는 더욱 묘해졌다. 우리가 동의하에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생각이 유령처럼 우리들 사이에서 늘 머물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공범이야라는 말을 누가 먼저 꺼낼까 봐 겁이 날 지경이었다. 하는 데까지 해봤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모두 가만히 있었을까. 그런 뒤늦은 후회가 늘 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형제들은 특별히 우애가 있지 않았고 아버지에게 살갑게 대하는 법도 없었지만 그들을 그나마 묶고 있던 끈이 아버지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버지의 기일은 고통스러운 날이 되었다. 기일이 되면 형제들은 감정을 더욱 짓눌렀다. 죄책감이 그들을 지배했다. 아버지를 위한 결정이었다고 누군가 나서서 강력하게 주장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입을 떼지 못했다.   


  <마지막 레슨>에서 마들렌의 결심을 들은 뒤, 아들과 딸이 마들렌의 집에 모여 어린 시절 비디오를 함께 보는 장면이 나온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어린아이인 자신들과 함께 노는 모습을 보는 아들과 딸의 눈빛이 애잔하게 젖어온다. 아이가 아이로 남아 있으면 안 되듯이, 엄마도 계속해서 젊고 생기 있는 엄마일 수가 없다.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발랄하게 춤을 추던 마들렌은 자신의 몸도 마음대로 가눌 수 없는 할머니가 되었다. 흐르는 물을 한 곳에 머물게 할 수 없듯이 모든 것은 계속 흐르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성진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죽음이 자신을 덮치기 전에 죽음에 다가섬으로써 죽음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언제가 성진도 아버지처럼 결정을 내려야 할 나이가 될 것이다. 모두가 가야 하는 길이라면 겁낼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그리고 아버지가 그 길을 좀 더 빨리 가게 내버려 뒀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언젠가 필연적으로 마주 대해야만 할 이별이라면 당사자의 방식대로 진행하도록 놔두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성진은 <마지막 레슨>에서 마들렌의 딸이 어머니의 결정을 지지하고 돕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받았다. 마들렌이 수면제를 요리기구로 빻고 있을 때, 딸은 엄마의 레시피를 보면서 엄마가 만들어줬던 라이스 그라탕을 만들고 있다.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딸은 어머니와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어머니, 마들렌이 죽음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딸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그것을 어머니가 남겨 준 마지막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마지막 레슨>이다. 죽음이란 인간이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있지만 건전지가 다 되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왔을 때, 최소한 스위치를 끌 수 있는 권리는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성진은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꼭 끌어안았다. 아버지에게 지금 편안하시냐고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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