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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고로호 Oct 24. 2021

친숙하고도 강인한 귀여움 - 참새

미물일기 #10

한겨울 난방기 앞에서 바람을 쐬는 것 마냥 마음이 건조할 때는 귀여운 것이 최고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네 마리나 있기 때문에 귀여움 필수량이 자동으로 충족되는 편이지만 고양이만으로도 회복되기 힘든 팍팍한 날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길을 가다 아기 참새가 입을 크게 벌리고 엄마 아빠 참새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이라도 본다면 바삭했던 가슴이 촉촉해진다. "아잉, 귀여웡!" 행복에 겨운 하이톤의 목소리가 절로 나온다.


잘생기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것도 좋지만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귀여움이다. 세상에는 얼마나 귀여운 것들이 많은지. 보송보송 홀씨를 가득 품은 하얀 민들레도 귀엽고, 무당벌레가 날개를 펼치고 짠하고 날아가는 모양도 귀엽다. 까치가 윤이 나는 턱시도를 입고 두 다리로 성큼성큼 나는 듯 뛰어다니는 것도, 동네 강아지들이 쫄래쫄래 산책하는 모습도 귀엽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귀여움에 순위를 매기는, 자연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만한 일을 저질러 볼까 한다. 귀여움 올림픽 대회가 있다면, 그래서 내가 심사위원이 되어 점수를 매긴다면 망설임 없이 참새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줄 것이다. 애정을 담아 자세히 보면 살아있는 것은 다 귀엽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지만 직접 눈으로 본 생명체 중에 독보적으로 귀여운 것은 참새다.


갈색 머리는 작고 배는 동그랗다. 부리는 짧고 뭉툭하다. 꼬리가 뾰로롱 하고 나와있다. 날개는 베이지와 갈색 바탕에 짙은 색 무늬가 있고, 하얀 뺨에 검은색 점이 있다. 가는 다리로 스프링처럼 뛰어다닌다. 짹짹거리는 울음소리마저 귀엽다. 참새 성조의 무게는 20g, 부화 직후 새끼의 무게는 고작 2g 정도라고 한다. 비교할 만 것이 없을까 집에서 주방 저울로 무게를 재어본 결과, 아몬드 두 알이 2g이었고, 대추토마토가 중간 크기는 16g, 한눈에도 커 보이는 것이 19g이었다. 예전에 참새와 비슷한 크기의 박새를 풀숲에 옮겨줬는데, 처음 손에 쥐고는 그 가벼움에 놀랐던 적이 있다.






한 마리 한 마리 따로 봐도 귀엽지 않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외모지만 모여있으면 귀여움이 말도 못 한다. 여러 마리가 나무에서 길 위로, 길에서 다시 나무 위로 포롱포롱거리면 꼭 날개가 달린 갈색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 같다. 풀밭에서 떼를 지어 짹짹거리며 모이를 찾기 위해 땅 위를 쪼았다가 날았다가 얼마나 바쁜지, 정신없고 산만한 모습조차 사랑스럽다. 종종 참새는 되새나 뱁새, 비둘기와도 섞여있는데 외모는 귀엽고 성격은 무던한 인싸 같다. 감출 수 없는 귀여움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기에 인터넷에 겨울의 털찐 참새나 참새의 근엄한 정면 얼굴 사진이 돌아다닌다. 참새 짤 밑에 달린, 귀여움에 몸서리치는 댓글들을 볼 때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이가 스타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 흐뭇하다.


참새는 예로부터 사람의 근처에서 살아가는 새다. 건물 틈이나 지붕 밑은 둥지를 틀 수 있는 장소가 되고, 맹금류, 까치, 족제비, 뱀 같은 천적으로부터도 안전하다. 민가 근처에는 참새가 좋아하는 먹이인 곡식을 얻을 수 있는 농경지도 있다. 인간과 참새가 서로 가까이 살아가는 것이 참새에게만 이득이 되었다면, 지금 같은 좋은 관계가 유지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인간에게도 참새는 도움이 된다. 참새는 곡식도 먹지만 곤충도 섭취하며 특히 새끼 참새의 주요 먹이는 곤충이다. 다양한 곤충을 먹기 때문에 참새가 사라지면 해충이 늘어난다고 한다. 중국에서 이 사실을 간과하여 참새를 곡식을 축내는 해로운 새라 정하고 박멸한 결과, 해충이 크게 발생하여 기근으로 이어진 사건은 유명하다. 해충을 없애주는 것도 고맙고 도시를 떠나지 않고 씩씩하게 인간의 곁에 머물러준 덕분에 바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귀여움으로 정신적인 안정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인간 가까이 있는 것이 이득이기에 인간의 곁에 머무르는 참새지만 인간에게도 참새가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새들도 많은데 굳이 참새를 왜 귀여움의 최고봉으로 치냐고 묻는다며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매일 만나온 친숙함 때문이다. 귀여움은 매일 보고 또 볼수록 깊이 각인된다. 특이하고 새로운 귀여움도 짜릿하지만 오랜 시간 세포 안에 스며든 귀여움을 이길 수는 없다. 참새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분포하기 때문에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자주 볼 수 있다. 몇 년 전 홍콩에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동남아시아 국가가 처음이라 이국적인 정취가 과도하게 느껴졌다. 적응이 안 돼서 살짝 불안함이 드는 와중에 거리에서 참새를 발견했다. 참새가 주는 친숙한 귀여움에 긴장이 풀렸다. 마치 어느 도시에나 똑같은 모습으로 있기에 낯선 곳에서 여행자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스타벅스를 보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참새의 용감하고 강인한 면모에 있다. 박새, 되새, 딱새, 곤줄박이, 뱁새, 멧새 등 참새목의 작은 새들도 모두 참새와 같이 작고 귀여운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참새만큼 떼를 지어 대놓고 사람이 다니는 길을 활보하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인간의 지척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참새는 얼마나 용감한지. 참새는 경계심이 강하지만 환경에 따라서는 과감해지기도 한다. 인간으로부터 얻는 먹잇감이 풍부하고 위험이 적다고 판단이 되면 꽤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온다. 동네 호수공원 입구에 편의점과 식당이 있는데 그 앞 야외테이블이 앉으면 참새의 환대를 받을 수 있다. 꽈배기를 작게 떼어줬더니 바로 앞까지 다가와 조각을 물어갔다. 많이 해본 솜씨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비둘기도 귀엽다고 생각하는데 참새와 다른 점이 있다. 비둘기는 인간에게 너무나도 가까이 접근한 나머지(성격이 좋은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다치는 경우도 많고, 사람에게 역으로 더럽다고 손가락질을 받아 처연함을 자아내는데 참새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인간의 곁에 머무르지만 최소한의 선을 지키며 야생성을 유지하는 것이 비법인 것 같다. 똑똑한 녀석들. 작은 공처럼 통통거리는 참새지만 사냥할 때면 얼마나 매서워지는지. 애벌레를 입에 물고 냅다 돌에 이리저리 패대기를 쳐서 기절시키는 모습을 보고는 입을 딱 벌렸다. 반전 매력의 소유조. 이런 터프함이 참새의 귀여움을 더 돋보이게 한다.






친숙하고도 강인한 귀여움을 뽐내는 참새에게도 위기가 있었으니, 바로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일컬어지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로 기억한다. 어릴 때부터 참새를 좋아해서 항상 유심히 보곤 했는데 갑자기 참새의 수가 확 주는 것을 체감한 적이 있었다. 한동안 동네에서 참새 보기가 힘들었고 가끔 보는 일이 있어도 참새에게 땟국물이 줄줄 흘러서 볼품이 없었다. 환경오염이 심해서 하천에 시커먼 물이 흐르던 암흑의 시대였다. 가뜩이나 오염된 환경으로 살아남기도 힘든데 사람들은 예전처럼 여전히 참새를 먹었다. 나는 먹어본 적은 없지만, 아빠를 따라 포장마차에 가면 참새가 헐벗은 체 안주용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털이 몽땅 뽑힌 동그란 머리가 얼마나 슬프던지. 개인적인 기억이라 시기적으로 맞는지 확인해보고자 책을 참고했는데 실제로 90년대 들어서 참새의 개체 수가 줄어 2014년까지 개체 수 감소가 유지됐다고 한다. 그 이유는 먹이원과 서식지 감소라고.


참새는 인간과 친해 보여도 인간의 손에서는 제대로 살 수 없는 예민한 새라는데 가끔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참새를 키우거나, 먹이를 손에 올려놓고 참새를 불러 모으는 영상을 보면 신기하다. 생명을 보살피는 일의 무거움을 알기에 지금 키우고 있는 고양이 외에 어떤 동물도 집에 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참새와 친밀한 시간을 나누는 사람들이 부럽긴 하다. 나중에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간다면 새 모이통을 설치하고 싶다. 자주 오는 참새와 친해져서 언젠가는 손바닥 위로 참새들이 몰려와주면 좋겠다. 참새 한 마리당 20g, 열 마리가 올라온다 해도 200g밖에 되지 않으니 자주 고장 나는 연약한 내 손목도 참새의 놀이터로 괜찮을 것 같다.


만일 귀여움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한다면(실제로 귀여운 것을 보면 나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동시에 스트레스 해소 및 혈액 순환 자극 등등 긍정적인 반응으로 신체도 구원할 수 있다면 나는 백 살도 넘게 살 수 있을 텐데. 귀여운 참새를 오래오래 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하게 살고 싶다. 무병장수해서 나중에 장수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귀여운 것들을 잔뜩 보는 것이 비법이라고 알려줘야지.



참고도서


<참새가 궁금해?>, 글 채희영/그림 김왕주, 자연과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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