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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은별 Mar 29. 2024

독립을 강요_또 다른 폭력

독립할 때 하더라도

스무 살이 넘으면 몸도 마음도 자녀와 독립하라는 말이 있다.

청소년기가 자아정체감의 확립기라면 이후의 성인기는 형성된 자아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시기이다. 이때 물리적, 정서적 보살핌이 된 부모로부터 멀어져 자신이 살고자 하는 세상으로 나가서 부딪히고 깨닫고 또 부딪히고 깨달아가면서 자원을 모아 한걸음 한걸음 떼 나가다가 그 걸음에 자신감이 생겨 자기 결정권을 갖고 책임지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독립이라고 본다.


오늘은 독립을 못 시키는 부모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자녀가 독립하지 못한 모습을 보고 참견하고 간섭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특히 종교나 상담 또는 교육의 환경에서 독립을 강요하고, 독립하지 못한 사람에 대해 미성숙하다거나 정신력이 약해 빠졌다거나 마음이 여리다는 둥 혀로 휘두르는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타고나기를 기질적으로 예민해서 외부 자극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몰라 쉽게 놀라거나 움츠려 드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나마 보호자인 엄마나 아빠라는 부모와 함께 있으면 그 자극이 조금은 상쇄된다. 그렇다고 부모 밑에서 평생 살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안다. 세상으로 나가지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자극이 일어나면 그저 두렵고 무섭다. 머리로는 아기가 아니니까 스스로 할 수 있어야 된다고 되뇌지만 몸은 심각하게 불안해하고 세상을 거부하는 반응이 일어난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상황에서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어 세상으로부터 철수해서 부모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부모 품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어린아이로 머무는 것은 아니다. 이미 몸은 커질 대로 커진 데다 함께 자라던 친구들은 각자의 삶을 찾아가 번듯하게 자리 잡고 어른다운 모습을 보이면 왠지 자신이 더욱 작아지는 것 같고 세상에 다시 나가기가 두려워진다. 그들도 스스로에 대해 고민한다.


주변에서는 이제는 돈을 벌어라, 나가서 살아라, 결혼이라도 해라며 어른다움을 요구하며 부모로 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것이 정답인 것 처럼 요구한다.

혼자서 살아가는 연습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때가 됐으니 나가라'며 독립을 강요하는 것. 어쩌면 낭떠러지로 밀어 넣고서 "여기서 뛰어내려라. 무조건 뛰어내려라!"고 명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성한 날개가 있는 새들은 낭떠러지에서 밀어버리면 날개를 퍼득이며 어떻게든 착지해서 목숨을 부지한다. 그러나 성치 못한 날개가 있는 새들은 낭떠러지에서 밀리자마자 그대로 공기에 날갯짓, 저항 한번 못하고 바닥에 내동댕이쳐 목숨을 잃어야 한다. 야생에서의 생존은 이렇게 이루어지긴 한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그렇게 냉혹하게 밀어내서 죽을 놈 같으면 일치감치 죽어라 할 수 없다. 나약하면 죽어라고 내모는 야생의 태도는 어쩌면 자살을 유도하는 행위기도 하다. 독립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독립을 요구하면 그들은 비참함에 몸부림쳐 사라지고 싶은 마음을 먹고 자신을 밀어낸 사람들을 향해 소리 지르는 대신 죽음으로 보복하는 허무한 행동을 선택하기도 한다.


얼마나 잔인한 행동인가.


때로는 독립이 반드시 정답이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독립은 정해진 시기가 있지 않다는 것, 독립에도 적당한 때와 상황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빙빙 둘러왔다.


마흔이 넘었는데도 왜 아직 부모 밑에서 사느냐, 번듯한 직장은 못 갖더라도 부모 그늘에서 나와서 혼자 살기라도 하면 되는데 약해 빠졌냐, 왜 못 나오느냐며 걱정한다는 이유로 건네는 이 말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자각하는가?


마흔이 넘어서도 쉰이 넘어서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름대로의 이유들이 있다.

한 번이라도 그 이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알아보려고 했던가.

남들처럼, 남들처럼, 그 남들처럼 이라는 다른 사람들의 기준만 내세워서 '너는 남들처럼도 못하는 사람'이라며 더욱 낙인찍는 말을 하지는 않았는가.


발달 과정에서 적절한 시기에 독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독립하지 못했다고 하여 야생에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동물처럼 사람의 영혼과 육체를 짓밟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보면 좋겠다.


부모와 함께 있어도 정서적으로 잘 독립할 수 있는 방법,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표면적으로는 함께 있지만 객체는 분리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에 대해서 알고자, 찾아내고자 궁리하는 시간을 가져 보면 좋겠다.



오늘은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독립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식충이, 기생충, 버러지라는 자기 인식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에 울컥 화가 났다.

그래. 독립 좋지.

독립해야지.

돈 버는 재미, 사람 만나는 재미, 내가 하고 싶은 일 성취해 내는 재미를 느끼는 것 좋지.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무도 방법을 알려 주지 않았으면서

그거 하나 제대로 못 찾냐고 다그치며 독립하지 못한 사람을 향해 보이지 않는 독화살을 마구마구 뿜어대는 사람들을 향해 '그 입 좀 다물어라'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이제는 그녀가 직접 그 소리를 지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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