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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모음 왜 하려고?

에고를 관찰하다

by 석은별

이곳에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는 치유의 힘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성장 배경을 돌아보면 불안정과 위태위태한 순간들이 생애 초반에 너무 많았다.

그나마 할머니라는 든든한 존재가 10년의 삶을 지켜 내 준 덕분에 나머지의 삶을 살아간다 치더라도, 그 이후에는 겪지 말았어야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경험하게 되면 대부분 전반적인 삶이 평탄하지 못한 연구결과들이 많다. 그렇다고 모두가 힘든 것은 아니다. 살면서 만난 사람들, 새로운 경험, 종교나 영성에 대한 접촉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을 잘 살아내는 인물들도 많다. 나도 한때는 그런 인물이 되겠다는 허상에 잡히기도 했다.


그러다 알게 됐다.

상처를 배틀한 어리석음에서 빠져나와 상처가 치유된 배경을 철저하게 파헤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내가 나를 파헤치기로 했다. 나의 어떤 경험이 치유의 힘을 발견하게 했는지 꼭 알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기를 알리고 싶었다. 그런 역할이 가치롭게 보였다.


누구나 치유의 힘을 갖고 산다.
그 믿음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다.




나를 알면 알수록 내 속에는 좋은 자원도 많지만 세상에 감히 드러내기 낯 부끄러운 그림자도 너무 많다.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헐뜯고 싶어 하는 마음. 괜히 나보다 잘난 사람을 끌어내리고 싶어 하는 마음, 누군가의 성공과 성취에 구린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음해하고 싶은 마음,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어리바리해 보이는데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을 보면 일어나는 시기심. 괜히 다정한 부부를 보면 쇼윈도일 것이라고 오해해서 소문 퍼트리고 싶은 마음. 잘 생기고 멋진 사람에게 어떤 치명적인 흠이 있을 것이라는 상상, 예쁘고 착한 여자에게 고통스러운 범죄가 일어나는 상상 등은 마치 나를 괴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런 상상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 상상의 끝에 정말로 파괴 밖에 없는지 궁금했다.


어리바리하게 대답하는 사람을 답답해한다거나, 센스 있고 친절한 사람을 보면 트집을 잡고 싶다거나,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 보여주면 안 된다고 거리를 두려는 마음은 그들이 내 모습의 일부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투사

내 마음에 있는 것을 타인에게 있다고 여기며 나에게는 마치 없는 듯 그러지 않은 척 여기는 심리적 방어기제다. 한 마디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에 나오는 똥 묻은 개의 행동이다. 자기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없으니 자신은 괜찮다고 아니라고 여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것은 죄다 트집 잡으면서 자신은 괜찮다고 여긴다.



내 에고가 가장 잘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남들은 나를 신경 쓸 겨를도 없는데, 괜히 에고는 속삭인다. 나의 배경을 갖고, 나의 경험을 갖고, 나의 상상을 갖고서 '들키면 너 끝장이야. 우스운 꼴 당할 거야.'라며 겁준다. 그래서 주눅 들고, 숨고 싶고, 나를 포장하려 든다. 그럴수록 에고는 자기가 이기는 놀이를 하고 있다는 의기양양에 빠지고, 내 또 다른 에고는 뭔가 이상하다지만 자꾸만 힘이 빠져 버린다.


이곳에 조각모음 글을 쓰는 동안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나 자신이다.

어느 누구도 내 삶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는다. 아니 그만큼 관심 있게 보지도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에고는 자꾸 속삭인다. '네가 여기다 글을 쓰고 고백하고 그럼 뭐라도 될 것 같지? 너도 운이 좋으면 책을 낸다거나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믿는 거지? 어리숙하긴... 넌 뭘 해도 아무도 관심 없고, 눈여겨보는 사람 하나 없어.'라며 비아냥 거린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에고.

그 에고가 어떤 내용을 얼마나 떠들어 대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대꾸하지 않고, 그저 관찰했다.


관찰 끝에 발견한 것은 '외로움'이다.

에고가 그토록 떠들어 댄 건 나를 겁주고 놀리고 비아냥 거리면 그 모든 것에 반응하던 또 다른 에고를 보면서 존재감이 느껴진 것이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니 에고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 귀여운 척, 사과하는 척, 위로하는 척 태도를 바꾼다. 그래도 반응하지 않으니 무섭다고 한다. 왜 아무 반응도 안 하느냐고, 무섭다고 반응하라고 한다. 혼자되기 싫어서, 악담을 해서라도 자아 곁에 머물고 싶어 했구나.


조각모음 왜 하냐고, 아무도 관심 없는 글을 왜 쓰냐고 조롱하던 에고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실은 글을 쓰면 쓸수록 나를 찾아서 버릴까 봐 무서웠어. 나를 버리지 마. 나 내치지 마. 내 치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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