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를 정리하다
작년말에 엄청난 경사가 있었다.
딸이 원하는 학교에 입시를 성공했다. 인서울을 꿈꾸게 한 것은 나였다.
한계에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온 내 습관을 닮을까 봐 걱정했다. 그렇다고 내가 못 산 삶을 살도록 부추길 마음도 없다. 그저 나와는 다른 한 인간으로 온전히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했다. 아이의 진로와 관련해서는 어떤 학교, 어떤 직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어떤 삶을 살고 싶냐.'는 주제로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눴다.
해를 거듭할수록 자신의 꿈에 가까운 활동이 쌓였고, 결국 쾌거를 거두었다.
기숙사는 두 번째 입사라 준비하는 어려움은 덜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아이를 내려주고 4시간을 운전해서 오면서 1시간 가까이 통곡하듯 울었다. 혼자 운전하는 것을 좋아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시내주행에서는 긴장하느라 마음이 꾹 눌려있었다면 톨게이트를 진입하자마자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아이와의 이별이 애잔해서 운다고 생각했는데 울면 울수록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결혼한다고 할 때 괜히 이리재고 저리 재면서 남편에게 꼼꼼하게 질문하던 모습이나, 내가 아이를 임신하니까 반가워하면서도 걱정하던 그 눈빛이 떠올랐다.
엄마라서 그랬구나.
괜히 남편이 마음에 안 들어서 트집 잡으려고 그러나 싶었는데, 혹시라도 나에게 함부로 대할까 싶어서 곤란하고 어려운 질문을 하면서 무섭게 대했던 거구나. 내가 임신하고 좋아하니까 결혼도 일찍 했으면서 좀 더 편해지면 아이를 낳았으면 던지던 말도 자기처럼 여자가 결혼과 출산으로 자아를 잃어버릴 것에 대한 염려였구나.
톨게이트 들어서자마자 아이가 들어가는 뒷모습이 떠올라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에 눈가가 뜨거워지며 울음이 터졌다. 며칠 전 남편과 말다툼하면서 괜히 분위기 싸하게 만들었던 것이나, 함께 여행 가기로 했다가 일정이 안 맞아서 아쉽지만 다음으로 기약했던 것도 후회됐다. 특히 남편과 다툼이 일어나면 지지 않겠다고 고성을 질러대던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 울음엔 나도 미웠다가 남편도 미웠다가 아이한테는 괜히 미안했다가 집에 들어서면 허전할 내 모습도 담겨 있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엄마가 떠오른다.
내게 늘 미안해하던 가출. 아빠를 누구보다도 잘 구슬릴 수 있는 사람이 자신임을 알았지만 자기도 어렸기 때문에 아빠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다는 점을 이야기할 때면 참 듣기 싫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읽혔다. 자신이 조금만 더 지혜로웠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해하던 엄마의 그 마음. 후회해서 뭐 하냐고 다그치기만 했는데, 그 후회가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과거로 되돌아갈 순 없지만, 과거에 두고 온 후회를 껴안고 있는 그 마음 밑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회복하고 싶기 때문임을 알게 됐다.
운전하는 내도록 마음에서는 3대가 뒤 엉켜서 흑백과 컬러 화면이 교차된다.
딸과 내 엄마는 만난 적이 없다. 딸이 태어나기 바로 전달에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나에게 늘 주고 싶어 하고, 용서를 구하려 들고, 보상하고 싶어 하던 그 마음이 이제야 이해된다.
처음엔 그저 엄마만 위해서, 자기 변명하기 위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아프니까, 곧 떠날 테니까, 자기 마음 편하자고 나한테 억지로 사과하고 화해하자고 다가오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런데 딸과 헤어지고 오는 길에 문득 떠올랐다. 그렇게 내게 손을 내밀고 내쳐지고 또 손을 내밀고 내쳐지면서 또 다가가는 게 엄마 나름대로 사랑을 표현한 것임을... 엄마가 내민 손을 내치고 모질게 대하면서 나는 한껏 투정을 부리며 아기짓을 버릴 수 있었음을... 그 경험 때문인지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면 말도 안 되게 '이거 다 엄마 때문이야!'라고 하는 말에 화가 안 났다. 나 때문이라고 쏘아붙이고는 눈을 흘기는 아이의 모습이 이뻐 보이기까지 했던 것은 엄마가 마지막까지도 내가 뿌리친 손을 또 잡으려 다가오고 또 다가왔던 그 노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이와 헤어지는 길에 만난 귀한 발견에 뱃속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종종 장기들이 위로 바짝 올라붙어서 딱딱한 느낌일 때가 있었는데, 그렇게 짜 맞춰진 흑백과 컬러의 화면이 모두 은은한 노란색으로 채워지고 나니 내 뱃속도 편해졌다.
집에 들어와 아이의 빈 방을 보며 잠시 허전함을 느꼈지만, 별일 없이 잘 다녀올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이렇게 하루가 꽉 채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