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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도 왕따였잖아...

뻔뻔하게 살아라 그대

by 석은별 Mar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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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니 웬일로 남편 이불이 소파에 있다.

차가 들어왔다는 말에 깨서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나오는 길이라고 한다.


"일찍 퇴근?"


"머리가 아파서..."


"어제 그 일로?"


"모르겠네. 몸살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남편은 엊그제 사람들 사이에서 따돌려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감정이 널뛰기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일을 30년 가까이하다 보면 직장인들은 그 조직에서 고인물이 되고, 사업이나 프리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그 바닥에서 고인물이 된다. 그 시간을 습관대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하면서 만들어진 모습이 있을 텐데 자신이 왕따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안 해 본 것 같다.


"우리 집에서도 왕따였는데 밖에서 그런다고 뭔 충격이야."


괜히 짜증스럽기도 했다. 그건 남편에 대한 짜증보다 남편이 말하던 그 후배들을 잘 아는데서 오는 짜증스러움이다. 어쩌겠나. 아군과 적군의 포지션은 늘 바뀌기 마련인 것을...


"괜히 OOO이 떠올라서.."


"뭐라는 거야! 그 사람이 왜?"


남편이 말하는 OOO은 몇 년 전에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떠난 사람이다. 그의 고민을 들어주며 위로를 하던 남편이 그 사람의 죽음 소식에 많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남편이 그 사람을 떠올리는 순간 무서웠다.


'설마 이깟일로?'


"전화번호 대봐! 내가 전화해 줄까? 너희들 인생 그따위로 살지 말라고. 일 배울 때는 언제고 이제는 자료 빼돌리고 조작하고 그러면서 남 뒤통수나 치냐고. 또 남의 자료 갖고 오라고 그럴 거냐고 대신 욕해줄 테니까 전화번호 대. 줘봐!"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진짜 그 후배들에게 연락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다. 남편의 지금 상태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어서 서로를 흔들기 위한 몸부림 같은 거다.


그때 가버린 그 사람도 마지막에 남편을 붙잡고 이야기했던 것은 결국에는 사람들은 이기적이더라. 자기가 베풀어도 돌아오는 것은 원망밖에 없더라. 집에 가지고 가는 돈 줄여서 인건비 나눠주고 밤새 작업한 보고서 아낌없이 나누고 했지만 결국엔 원망만 하더라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그때 분명 '그게 세상이다.'라고 했는데... 이제와 떠올리는 것은 그때 그 사람에게 말했던 '게 세상이다.'라는 게 위로가 되지 않았을 거라는 자책이라고 한다.


어쩌겠나. 지금 경기는 더욱 안 좋아지고 있고, 무엇 때문인지 사람들은 네 편이냐 내편이냐를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시대가 되어 버린 데다. 이익을 나누고 있어도 조금만 차등이 생기면 차별이라고 억울해한다.


남편이 경험한 것을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위치에 따라 역할에 따라 최선을 다 했지만 그게 최선이 아니라 누군가의 원망으로 인해 오해가 사실이 되어 버려야 한다는 것. 그게 억울하고 답답한 것 같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 어차피 우리 집에서도 왕따였잖아. 그래도 뻔뻔하게 잘 살았으면서 그냥 남들이 그러는 거 어쩌겠어. 속은 뭉드러지겠지만 그렇다고 가서 싸울 순 없잖아? 거기서 조리돌림을 하든 우리 가족을 가지고 무슨 말을 지어내든 어쩌겠어. 가까이서 대신 싸워 줄 사람이 한두 명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 그냥 가까운 사람들 하고 맛있는 거 먹고 다음 프로젝트 어떻게 할지 회의나 해. 우리 집에서처럼 그냥 뻔뻔하게 그렇게 살아."


"내가 뭘 그렇게 뻔뻔했다고?"


"이 아저씨가 자기 고집이 얼마나 센지 모르시나 보네. 얼마 전 그 프라이팬 사건 기억도 안 나? 내 눈엔 그거랑 똑같은데 뭘!"



<프라이팬 사건>


남편이 요리에 관심 갖고 나서는 퇴근길에 늘 재료들을 사서 온다. 요리에만 관심 있지 주방기구나 재료들 상태나 조리대 정리 등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남편이 요리하는 것은 좋으나 주변이 늘 지저분하고 엉망진창이다. 그런 부분이야 어차피 청소하면 되는 거라고 여기고 남편은 셰프, 나는 보조라고 스스로 역할을 정해서 열심히 치운다. 그렇게 치우면 우리 사이에는 일단 평화가 생긴다. 이건 내가 그렇게 선택했기 때문에 유지되는 평화다.


칼이나 채 식기들 사이에 같이 담그지 마라거나, 프라이팬 종류가 3가지가 되니까 각자 용도에 맞게 써라거나, 재료를 다 쓰고 나면 바로 정리 좀 하라는 부분에 있어서 남편은 절대 개선이 되지 않는다.


한 번은 칼에 손을 비이기도 했고, 육수를 낸 채를 기름기 많은 냄비에 그대로 담갔다가 세척이 힘들어서 새로 산 적이 있다. 그중에 프라이팬... 이건 정말이지 몇 년에 걸쳐 다툼이 일어나서 아이들 마저도 내 눈치를 볼 정도다. 기름만 두르는 것과 양념을 해도 되는 것을 철저하게 구분하는데 남편은 눈에 띄는 것 위주로 한다. 그러다 보니 기름 사용만 해야 되는 프라이팬에 양념을 쓴다거나 팬을 긁어서 화를 돋운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새로 산 프라이팬을 보여주며 '니 거, 내 거' 구분을 확실히 지었음에도 다음날에는 자기 마음대로 또 새 프라이팬에다 양념을 묻히더니 열이 가해진 상태에서 바로 찬 물로 헹궈 버린다.


'야! 넌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녀? 내가 한두 번 말한 건 그냥 우습지? 귀에 닳도록 이야기했는걸 또 니 멋대로 써? 넌 정말 쓰레기 같은 놈이야!'라며 '으~앙!'하고 울어 버렸다.


울다 보니 세 살짜리 꼬마가 바닥에 주저앉아서 떼쓰듯이 있는 힘껏 악을 쏟아낸다.

이게 도대체 몇 번 째냐고. 왜 말을 해도 안 들어 먹냐고.

그래갖고 밖에 나가서 남들하고는 소통 제대로 하는 거 맞냐고.

남들 다 어렵고 불편해하니까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막 대하는 거 아니냐고.

지금 집에서 나한테 이러는데 너 밖에 나가서는 제대로 하는 거 맞냐고...


그렇게 발악(?)에 가깝게 소란을 피운 뒤 저녁에 화를 가라앉혀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대형 카페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프라이팬과 관련해서 사용법에 대해 나눈 글을 캡처했다.

남편에게 보냈다. 용도를 나눠서 쓴다는 것과 뜨거운 채로 찬물에 씻으면 변형이 일어난다는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보니 프라이팬에 이름표가 붙여져 있다.

그걸 봐야 자기가 다시는 그렇게 안 할 것 같단다.

그렇게 피식 웃고 말았다. 머리가 아주 돌은 아닌데???


프라이팬 사건이라고 하는 순간 남편이 자신을 좀 돌아봤나 보다.


그리고는 그 후배들과 관련된 일을 몇 가지 떠올리더니 상대방들이 왜 서운해하는지를 찾았다고 한다.


남편은 종종 사람을 소개하거나 일거리가 넘치면 주변에 의뢰하기도 한다. 그럴 때 누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좀 파악을 해야 되는 상황이 있다.


그중에 한 명은 굉장히 활발하고 분위기를 잘 띄우고 서글서글한 사람인데, 어느 곳에서 연락 와서 그 사람이 어떤지를 묻는 말에 '아. 그 친구 성격은 참 좋아요. 그런데 OO님하고 일하기에는 꼼꼼하지는 못해서 힘드실 수 있겠어요.'라고 했던 적이 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후배가 해보고 싶었던 곳이라는데, 남편 때문에 못 가게 된 곳이라고 알고서는 원망했다고 한다.


자신은 중간에서 편하다고 대답한 것이 누군가의 간절함에 찬물을 끼얹었을 수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지금은 연락 안 받으니까 어 수 없고, 마주치면 차 한잔 하자고 해야지. 내가 찾아가 봐도 되는 거고..."라며 자신을 정리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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