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삶의 이유를 찾아 헤매던 나에게 잘 풀리지 않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그중 하나는 고모에 대한 감정이 왜 엄마에 대한 감정 보다 더 진한가였다.
그 계기로 시작한 나를 알아가는 여정에서 고모를 통해 경험한 숱한 감정들이 순수하게 나와 고모만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발견하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고모에게 친정은 자신의 전부였다.
결혼도 친정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였다. 고모는 스무 살 가까운 나이 차이와, 전처가 낳은 고모 또래의 자녀들이 있는 고모부에게 시집갔다.
아주 어릴 때 기억에 할머니가
"누가 너더러 친정 먹여 살려랬나. 돈에 환장했나. 왜 그리 나이 차이 나는 사람한테 징그럽지도 않나."라며 혀를 쯧쯧 찰 때 고모가 앙칼진 목소리로 "엄마가 맨날 앓는 소리 했잖아. 아버지 아프고 가세 기운다고 그렇게 넘사 시럽 다고 한 게 엄마잖아!"라며 나간 적 있다. 어린 나는 할머니와 고모의 목소리가 무서워서 울었고, 할머니는 나한테 참빗을 주면서 자기 머리카락을 빗어라며 달랬다. 나는 할머니의 쪽진 머리카락을 풀어서 빗으로 살살 빗어 부드러워지는 그 느낌을 좋아했다. 할머니는 자기 머리카락을 내어 주며 달랬다.
고모가 왜 그 성격이 되었나, 왜 그런 삶을 살았나, 왜 나에게 그랬나, 왜 우리 엄마한테 그랬나를 떠올리면 늘 화가 났다. 어떻게 할머니한테서 저런 딸이 나올 수 있지? 그렇다고 내 아빠가 정상인 것도 아니다. 할머니를 그저 사람 좋고 인자하다고 여겼지만 마음의 이치를 찾아내고 나서 발견한 것은 할머니 역시 관계의 중심에서 자신이 중요한 결정을 해야 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존재감을 느껴야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주변을 알뜰히 살피지만 주변을 점점 병들게 만드는 인에이블러 같은 성향의 사람인 것이다.
엄마가 버리고 간 손녀를 지극정성으로 키워야 자신의 삶이 남들에게서 인정받고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부잣집에 시집간 딸이 시시때때로 좋은 것들을 들고 오면 사람들의 부러움을 은근히 즐겼던 것이다. 나나 아빠에 대한 애착이 그토록 강했던 것도 할머니 역시 어린 자식들을 전쟁에 질병에 먼저 보낸 경험이 있어서 생긴 집착인 것이다.
고모의 친정에 대한 집착이 그런 할머니를 닮았다. 할머니의 정서적 습관이 한 대를 걸렀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필터 되어 전해졌다면, 고모는 자신이 처리하기 힘든 감정을 내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나 때문에 할머니가 고생한다는 것이나, 아빠가 엄마를 못 잊어서 다른 여자랑은 마음도 못 붙이는 게 내가 부모복이 없어서라고 했던 것이나, 새엄마가 아빠의 폭력에 나갔는데도 전처 자식인 내 눈치때문이라고 박은 못들이 가슴에 단단히 박혔다.
그걸 빼기 위해 나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알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나를 들여다 보는 과정에서 고모의 삶을 살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외면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서는 결국 고모의 삶을 봐야만 했다.
영사기가 돌아가며 떠올려주는 그녀의 삶을 주시했다.
고모 역시 자기 삶에서는 최선을 다해 버틴 사람이다.
고모 위로 언니가 있었는데 고모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 그 시절엔 다섯여섯을 낳아도 둘셋을 보내던 시절이다. 그러니 할머니는 고모도 애지중지 키웠다. 그러다 고모와 아빠 사이에 태어난 아기들이 또 둘이나 죽었다. 할머니 마지막 출산으로 태어난 게 아빠고 8살 차이다. 그러니 할머니에게 고모와 아빠는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은 생명들이다. 그저 잃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두 자녀를 지켜 낸 할머니라는 그 단서 만으로도 고모가 지닌 무게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된다. 고마우면서도 갑갑한 그 심정. 뭐든 엄마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반듯하고 착한 딸이 되어 엄마의 힘이 되어야 한다는 그 마음. 그렇게 어린 동생을 자기 자식처럼 챙겨야 엄마가 좋아한다고 믿었겠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것이다. 엄마를 위한, 동생을 위한, 친정을 위한 삶이 자신의 삶이 된 여자였다.
고모부가 고모의 방패막이가 된 것에는 고모의 노력도 컸다. 할머니로부터 잘 배운 살림과 성품이 고모부 마음에 들었고, 그 자녀 들도 인자한 성품을 높이 샀다고 한다. 그 인자함 뒤의 그림자는 나에게만 보인 것인가 싶지만 고모의 인자한 면을 나도 잘 안다. 말은 못 댔게 하더라도 깔끔하고 꼼꼼한 성격이 나랑 닮아서 은근히 좋아하고 믿는다는 것을 안다. 때문에 나역시 고모를 향한 날카로운 날을 세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오히려 엄마에게는 다시 떠날까 봐 두려워 조심스럽게 대하는 내가 있었다면, 고모는 내가 아무리 모진 말을 해도 다 받아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오랜 앙숙으로 지내면서도 '저거 겉으로나 저러지 속은 여려 터져서 지도 힘들 거다.'라고 이해하는 건 고모였다. 나 역시 고모에게 고모의 잘못을 들춰서 한껏 퍼부어도 분이 지속되지 않은 것은 때때마다 필요한 것들을 잘 챙겨서 내 책상 위에 두거나, 먹지도 않는 밥을 늘 차려낸다거나, 미워서 전화 안 하면 동생들 시켜서라도 목소리 한번 듣자고 맛있는 거 사 줄 테니 오라고, 용돈 줄 테니까 오라고 늘 손짓하던 역할은 고모였다.
어쩌면 서로가 서툴러서,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몰라서 생긴 어려움을 모른척하려는 사람과 해결해 달라고 매달린 사람의 관계가 고모와 나 사이가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 떠나던 그날의 모습에서 마음으로 빌었다.
"더 일찍 갔어도 되는데 이렇게 힘든 몸으로 스스로 감옥에 갇혀서 살아 낸다고 고생 많았을 테니 이제 날개 달고 훨훨 날아다니세요.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세요.'
늘 친정에 갇혀서, 죄책감에 갇혀서 살아 낸 그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나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말들이 다 흩어진다. 고모로부터 직접 말을 듣지 않았는데도 용서가 된다.
엄마를 미워하는 것은 어려운데 고모를 미워하는 것은 쉬웠던 것...
어쩌면 고모라는 존재가 내게 준 선물이지 않을까 싶다.
미움 뒤에 숨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