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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다 Mar 26. 2022

우동 먹다 울컥한 이유는…

그림에세이(6)

어느 날 한 지인이 행복감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된다며 내게 감사일기를 써보라고 권유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자세히 쓸 것도 없이 '재미있는 책을 빌려준 친구에게 감사하다'라는 식으로 매일 감사할 일 세 가지를 쓰면 됐다.


처음 며칠 동안은 도대체 뭘 감사하다고 할지 몰라서 막막했다. 자신에게 억지를 쓰듯 감사하는 마음을 쥐어짜며 겨우겨우 세 줄을 채워나갔다. 이런 식으로 일기를 써서 뭐가 좋아질까 싶어서 한숨 쉰 날도 많았다.


그렇게 몇 주일이 지나면서 어느덧 감사일기 쓰는 것도 익숙해져 갔다. 재미가 든 날은 세 가지가 아니라 '따뜻한 햇살에 감사하다' 같은 사소한 내용으로 열댓 가지를 내리쓰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시들해지기 마련인지라 시간이 갈수록 감사목록은 늘어났던 반면 감사하는 마음은 점점 얕아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식당에서 우동을 먹다가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우동면발 몇 젓가락을 건져 먹다 '참 맛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니 느닷없이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쳐 목이 메고 말았다. 이렇게 귀한 음식을 겨우 2000원에 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토록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 식당 분들은 얼마나 감사한가, 농부들은 얼마나 감사한가, 햇빛과 땅과 비는 얼마나 감사한가….


그렇게 우동 그릇엔 온통 감사함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때 내가 마주하던 우동은 온 세상의 노고가 깃들고, 온 우주의 자애로움이 녹아 있는 기적 같은 것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 마음엔 행복의 근육이 있음을. 단련하면 할수록 더 크게, 가슴 벅차게 행복을 느낄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있음을.



* 이 글은 조선일보 일사일언 칼럼에 실었던 글이기도 합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2/21/20101221020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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