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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다 Mar 25. 2022

남의 울음소리에 귀가 열리면…

그림에세이(5)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남에게 독한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 그러고는 어쩔 수 없었다며 자기합리화를 하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 '울음명상'에 참가하면서 이런 생각이 바뀌었다.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라는 식의 실수도 웬만하면 스스로 용인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울음명상에 참가한 것은 우울증 치유에 도움이 되는 명상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내심 나도 실컷 울어보고 싶었다. 명상 시작 직전 도우미는 스무 명의 참가자에게 각티슈 한 통씩을 나눠줬다. 이윽고 불이 꺼지고 명상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여기저기서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떤 이는 엄마를 부르며 숨넘어갈 듯 울었고, 또 다른 이는 손발까지 굴리며 오열했다.


예상치 못한 분위기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사람들이 내뿜는 비탄의 에너지에 압도된 나머지 내 이성(理性)은 오히려 자기방어의 날을 세우려 들었다. 나도 울기 대열에 동참하려고 저세상으로 먼저 떠난 친구까지 떠올렸지만 허사였다.


그 순간 등줄기로 얼음조각이 빠르게 흘러내렸다. 넋 놓아 비어 있던 마음에 사람들 울음소리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실컷 울어 보겠다고 왔던 내가 되레 남들의 울음소리에 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사람이 운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미어지는 일인지, 그리고 나 때문에 눈물 흘렸을 사람들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져왔다.


그때 내 안에선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진부한 메시지가 전류처럼 온 살갗으로 퍼져 나갔다. 앞으론 누구에게도 상처 줘선 안 된다. 내가 미치지 않은 이상 아니 미쳐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만은 줘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 이 글은 조선일보 일사일언 칼럼에 실었던 글이기도 합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2/07/20101207021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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