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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다 Aug 17. 2022

핑크빛 피아노

그림에세이(19) 

신도림 역사에는 서울시민을 위한 괜찮은 문화공간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 서울생활문화센터 앞에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핑크빛 피아노가 놓여 있는 게 내게는 신선하고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거기를 오갈 때마다 궁금하면서도 기대가 됐다. 과연 수많은 행인이 오가는 길목에서 누가 용기있게 피아노를 연주할까? 여기서 누군가 연주를 한다면, 피아노가 너무 치고 싶은데 마땅히 칠 피아노가 없는 사람일까? 아니면, 자기 연주를 다른 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데 적절한 기회가 없는 사람일까? 


그런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그곳을 지나다니던 어느날, 근처에서 일을 보고 신도림 역사로 진입했더니 피아노 연주가 들렸다. 드디어 오늘 핑크빛 피아노가 자기 노래를 하는구나, 기쁜 마음으로 문화센터 쪽으로 바삐 걸어갔다. 어느 청년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을 연주하고 있었다. 피아노 연주에 관해 모르는 나로서는 그의 연주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듣고 있는데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었다.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저절로 멈춘 채 그의 연주에 가만히 귀 기울이게 됐다. 음악의 힘이란 게 뭘까? 잠시 2, 3분 동안 낯선 이의 연주에 귀를 열어뒀을 뿐인데, 어느 순간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너무나 자주 듣던 음악인데도 아련한 슬픔이 마음을 휘감았다. 


그렇게 청년이 들려준 피아노 소리에 감사한 마음을 가득 안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는데, 그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어느 젊은 여성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에게 수첩 같은 걸 건넸다. 청년은 머쓱하게 웃는 듯하더니 두 사람 사이에는 수줍은 미소가 오갔다. 그녀는 그에게 연락처를 물었던 걸까? 아니면 연주곡 제목을 알려달라고 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SNS 계정이나 유튜브 채널을 적어달라고 했을까? 아무려나 그날따라 피아노 외관으로는 적이 튀는 핑크빛이 유난히도 적절해 보였다. 


<핑크빛 피아노>, 펜과 수채, 16절, 2022년 7월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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