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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다 May 09. 2022

버스 유리창에 쓴 글자

그림에세이(11)

후드득 날아와 사선으로 내리긋는 빗줄기들이 유리창 너머 풍경을 가로막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까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탔던 버스는 미로라도 헤매는 냥 가도가도 버스창 너머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비오는 날이면 그러하듯, 버스 안 공기는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이 탁하고 눅눅했다. 메스꺼움을 달래기 위해 침을 깊이 꿀꺽 삼켜가며 내가 유일하게 아는 ‘엄마’라는 글자를 쓰며 창가에 꼭 붙어 앉아있었다. 버스가 설 때마다 소매로 유리창을 닦아봤지만 바깥풍경은 초점 잃은 사진 마냥 뿌옇기만 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난생 처음 혼자 버스를 타본 터라 생경함과 두려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멍해지고 말았다. 버스가 흔드는 대로 이리 쏠렸다 저리 쏠렸다 하면서 주인 잃은 짐짝마냥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밖에 잘 보고 있어.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일곱 살 꼬맹이가 혼자 버스길에 올라야 했기에 언니는 아침 내내 버스 번호와 정류장 이름을 반복하며 나를 다잡았다. 아무리 가도 언니가 말했던 정류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급기야 몸은 지루함에 뒤틀리고 밀려오는 멀미를 참아내느라 눈물까지 그렁그렁 차올랐다. 목을 쭉 빼내어 주변을 살펴봐도 재빨리 돌린 영상처럼 낯선 풍경들만 휙휙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버스에 남은 승객은 나 혼자. 기사 아저씨가 걱정된 목소리로 어디 가냐고 물었다. 석전동에 간다고 말했더니 아저씨는 한숨을 내쉬며 다음이 종점이라고 말했다. 그제야 내가 반대방향으로 버스를 탔던 것을 알았다. 버스에서 내려 공중전화를 찾아내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둔 메모지를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만 갈 뿐이었다. 그 즈음 엄마는 한동안 보지 못했던 어린 딸의 모습을 찾아내느라 13번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그 속을 헤집고 있었을 것이다. 언니라도 연락이 닿을 수 있을까 싶어 집에 전화를 해봤지만, 역시 언니는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누구든 연락이 닿을 때까지 종점이라고 적혀 있는 정류장 앞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종점 버스 정류장은 세상의 끝에라도 당도한 듯 사방이 고요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비에 젖고 있는 논과 밭 밖에 보이지 않았다. 시커먼 구름 아래 어둑어둑한 논밭 가운데서 무서운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고요 속에서 오로지 들리는 소리라곤, 내가 받쳐쓴 우산으로 쏟아지는 빗소리와 유독 조급하게 쿵쿵 울리는 내 심장소리 밖에 없었다. 이럴 때 노래라고 부르면 좋을텐데,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까. 그래, 이럴 땐 기운이 세졌으면 좋겠다 싶어 빗물 고이는 흙웅덩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기운 쎈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을 반복해서 불렀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기운쎈, 이라는 소절에 힘을 꽉 줘서 불렀는데 문득 ‘무쇠’라는 부분에서 비릿한 쇠냄새가 났다. 너무 긴장해서인지 우산을 꼭 붙들고 있었던 나머지 쇠우산대가 코 바로 앞에 있었다. 비릿한 쇠냄새로 가라앉은 메스꺼움이 또 한 번 솟구쳤다. 침 한번 꼴깍 깊이 삼키고 흙웅덩이를 바라봤다. 뿌연 웅덩이 수면 위로 자잘하게 떨어지고 있는 빗물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며 잠시 멍했던 것 같았는데, 내가 타고 왔던 버스가 끽 소리를 내며 머리를 반대방향으로 하고는 내 앞에 멈췄다. 다행히도 내가 타고 왔던 기사 아저씨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아저씨는 이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가 보라고 말해줬다.

 


아무도 없는 그곳을 얼른 벗어나고 싶어 아저씨가 하란대로 냉큼 버스에 올라 가장 내리기 쉬운 가운뎃문 앞에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느새 잠잠해졌던 심장이 다시  큰 소리로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엄마 얼굴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버지께 혼날까봐 어서 집에 가고 싶었다. 이혼 후 아버지는 우리 삼남매 중 누구든 엄마를 만난 사실이 발각되면 그날 저녁 우린 모조리 매 타작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저 하라는 대로 하면 쉬울지 알았다. 버스에 오르기 전 나는 엄마와 만날 시간을 고대하며 비 오는 거리를 첨벙첨벙 기분 좋게 뛰어다녔는데, 어느덧 기대가 공포로 뒤범벅 돼버렸다. 벌써 저녁 무렵인데 아버지가 돌아왔으면 어떡하나? 갈 데도 없는 내가 비오는 날 어딜 쏘다녔다고 해야 하나? 머릿속은 온통 언니 오빠가 나 때문에 맞으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에 돌아가 있고 싶어졌다. 


한동안 기운 없이 빗길을 달리던 버스는 나를 놀리듯 엄마가 서있는 곳에다 ‘끽’ 소리를 내며 정확히 정차했다. 엄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토록 그리웠던 엄마가 반갑지가 않았다. 세상 모든 것들이 나만 두고 등을 돌린 것 같았다. 엄마는 밥이라도 먹고 가야 한다며 내 손을 잡고는 서둘러 엄마의 집으로 갔다. 



처음 가보는 엄마의 집은 내 마음처럼 어둑어둑했다. 노랗게 탈색된 벽지와 낡은 비닐장판에, 살림이라곤 비키니 옷장과 앉은뱅이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도 방바닥에서, 책상에서 윤이 반짝반짝 났다. 워낙 깔끔하신 살림솜씨지만, 막내딸이 온다고 엄마가 얼마나 걸레질을 했을지 알 수가 있었다. 이윽고 엄마는 작은 밥상 가득히 진수성찬을 내어오셨다. 집에서 보기 힘든 계란 후라이, 노랗게 잘 구워진 생선, 조갯살 가득 든 미역국을 앞에 두고서도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자꾸만 멀뚱거렸다. 밥 한 숟갈 입에 넣고 벽시계를 올려다보고, 반찬 한 젓가락질 하다 또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엄마는 눈물을 글썽글썽하며 그런 내 모습을 묵묵히 보고만 계셨다. 그 짧은 순간이 버스에서 소모했던 시간만큼이나 갑갑하게 죄어왔다. 얼른 집에 가지 않으면, 아버지가 아신다. 아버지가 아시면 오늘 밤에 언니 오빠는 나 때문에 나 맞는다. 언니 오빠가 아버지에게 맞는 모습이 눈 앞에 또렷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숟가락질이 점점 무거워졌고, 젓가락질이 자꾸 엉키고 있었다. 엄마의 애틋한 마음을 헤아릴 줄 몰랐던 나는 급기야 속에서 들끓던 말을 내뱉고 말았다. 


“엄마, 나 집에 갈래.” 


엄마는 주름만큼이나 깊은 한숨을 숨기며 살포시 웃어 보였다. 단지 속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어 내 손에 쥐어주시곤 함께 정류장으로 총총히 달려갔다. 


집으로 가는 버스는 금방 도착했다. 나는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듯 엄마에게 손 한번 제대로 흔들어 주지도 않고서 버스에 냉큼 올랐다. 창 너머 엄마의 모습은 빗줄기 속으로 잠겨들며 작은 점이 되어 뿌예져갔다. 엄마의 모습이 담겨있을 점 하나를 손가락으로 꾹꾹 짚어가며 나는 집으로 향해갔다. 아무리 되돌아봐도 고스란히 남아있던 그 점 위로, 내가 유일하게 아는 ‘엄마’라는 글자를 또박또박 써넣기를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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