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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다 Apr 29. 2022

가야금과 나

그림에세이(9)

TV 채널을 돌리다 가야금 켜는 장면이 나오면 한참을 바라다본다. 국악에 흥미나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닌데도, 소리꾼과 가야금 연주자가 들려주는 가락에 절로 귀가 열리고 빙긋이 웃음이 지어진다.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초등학교 동창생을 TV에서 만난 듯 반갑고 흐뭇하다. 인연이 깊지 않아서 단 한 시절 함께 한 사이지만 푸른 풀밭을 함께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던, 늘 그런 유쾌한 장면으로 떠오르는 옛 친구를 만난 듯하다. 


사실 가야금은 TV에서도 접하기 힘든 악기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특집으로 편성된 <국악 한마당>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면 좀처럼 접하기 힘들다. 국악에 대한 특별한 취미가 있지 않은 이상, 공연장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가야금은 만나기 어렵다. 그처럼 보통의 생활반경과는 거리가 먼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어느 날 뜻밖의 우연으로 내 평범한 삶에 색다른 무늬 한 땀을 남겨놓은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3학년 반 배정을 받고 개학식 참석하고는, 그 이튿날부터 닷새 동안 내리 결석하게 되었다. 팔순이 넘어서까지 우리 식구 밥과 빨래를 살림을 도맡아 하시던 할머니가 겨울 방학 때 갑자기 중풍을 맞으시곤 개학날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학기 초여서 그런지 닷새 동안의 공백은 예상외로 컸다. 마치 다른 학교로 전학해 온 아이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내가 결석하는 사이 전 과목 진도가 1장을 훌쩍 넘어섰고, 방과 후 청소담당 구역은 이미 정해진 데다, 반 아이들끼린 어울려 다닐 친구그룹이 벌써 정해진 듯해 보여 내가 들어갈 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청소구역도, 책상 자리도, 친구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부스러기만이 내 몫으로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가장 당혹스런 사건은 수요일 오후에 일어났다. 5교시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 하나둘씩 무얼 주섬주섬 챙기더니 교실에서 사라졌다. 어어, 다들 어디 가지? 교실 문을 나서는 아이들을 넋 놓고 바라보다 그제야 사태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체육복을 갈아입고 나가는 남자아이에게 다들 어딜 가는 거냐고 물었다. 남자아이는 황당해하며 다음 시간이 CA특활이잖아, 라고 대답하곤 쌩하니 밖으로 사라졌다. 특활시간이라니. 난 지난주에 결석해서 아무 반에도 들지 못했는데, 어떡하지? 교실 창 너머 보이는 운동장에는 초록색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총총 모여들고 있었고, 두 아이가 주전자 입구로 물을 쏟으며 큼지막하게 피구경기 라인을 그리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피구반에나 들어갈까 싶어졌다. 아무래도 교무실에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야할 것 같았다. 어떡하면 좋아. 교무실이라니? 주로 사고 친 아이들이 손 들고 벌서러 가는 곳인데, 그런 불편한 생각이 교무실 가는 내내 떠올라 교무실 문을 여는 데까지 수업 종치고 10여분이 흘렀다.

교무실 안을 들어서자 담임선생님은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그때서야 생각났다. 담임선생님은 합창반 지도 담당이라는 걸. 담임선생님 자리에서 쭈뼛거리자 옆자리의 다른 남자 선생님이 여기 왜 왔냐 하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 선생님은 교무실 한구석 책상 위에 놓인 장부를 들여다보고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가야금 반이 비었다. 거기 가면 되겠다.”

 “가야금요? 저, 피구반에 들어가면 안 되나요?”

 “안 돼. 그 반은 인원이 넘친다고 절대로 더 받지 말라고 별표까지 쳐놨다.”


가야금이라니, 내가 가야금 반을 들어가야 하다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뚱하니,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런 내 모습에 개의치 않고 그 남자 선생님은 어서 나가보라는 듯 교무실 문을 가리키며, 가야금 반은 1학년 3반 교실로 가면 돼, 라고 명령 아닌 명령으로 나를 교무실에서 곧바로 나가도록 만들었다. 


하는 수없이 1학년 3반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석으로 반 아이들과 어색했던 데다 특활시간까지 낯선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지내야 한다니, 언니 오빠가 곧잘 쓰는 우스갯말처럼 낙동강 오리알이 된 기분이었다. 언제든 주변 어른들에게 너는 손가락이 기니까 집에 여유가 좀 있으면 피아노를 배우면 좋겠구나, 그런 이야길 자주 듣고 지냈는데 그런 내가 가야금 줄을 뜯는 반에 가서 앉아 있어야 한다니, 더군다나 우리 집은 가난해서 가야금 같은 건 살 형편도 못 되는데 특활시간 내내 가만히 앉아있는 우스운 꼴로 지내야 하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렁그렁한 눈이 되어 1학년 3반 교실 뒷문을 슬그머니 열고 들어갔다. 역시나 가야금 반은 비인기 반이었다. 다른 반은 교실 한 반이 가득 차도록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데 반해 이 반은 한눈에 봐도 고작 열 명이 될까 말까 할 정도였다. 광택으로 반짝이는 알록달록한 색동저고리 한복을 곱게 차린 여자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모두 새하얀 치아를 반짝이며 환하게 웃어왔다. 그들도 새로운 회원의 등장에 반가웠던 모양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환대에 내 그렁그렁했던 눈물이 순간, 쏙 들어갔다. 그런데 교실을 둘러봐도 가야금 반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다리가 이끄는 대로 교실 뒤편에 가서 슬그머니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때 누군가 내게 호의가 가득한 친절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오늘 우리 가야금 선생님 어디 가신대요. 우리끼리 연습하고 가르쳐 주라고 했어요.”

그리곤 다른 여자아이도 내게 말했다. 나보다 저학년임에 분명한 여자아이였다.

 “언니, 우리가 가르쳐 드릴게요. 이리 와요.”


갑작스러운 관심에, 갑작스러운 환대에, 갑작스러운 호의에 나는 평소답지 않게 한번 쭈뼛거리지 않고 그들이 있는 자리로 다가갔다. 그들 앞에는 내가 난생처음 가까이서 보는 신기한 악기, 커다란 나무통에 12줄이 달린 가야금이 놓여 있었다. 나도 정말 가야금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대고 침이 꼴깍 넘어갔다. 


여자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야금 앞에 나를 앉혔다. 그 아이는 언니, 피아노 칠 때처럼 도레미파솔라시도 아니어요. 국악은요... 그러면서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청 흥 둥 당 소리가 피아노로 레 솔 라 레 소리와 같다는 등의 설명을 하면서 맞은편에서 내 왼손은 현을 누르도록, 오른손은 가야금 선을 뜯도록 같이 잡아줬다. 짙은 고동색의 나무 위로 물결치는 나이테 문양, 우리 집 옥상에 걸린 빨랫줄 더 질긴 가야금 줄을 마냥 신기해하며 그 아이가 짚어주는 대로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가야금 12줄을 서너 번 오르내릴 때 즈음, 수업 마치는 종이 울렸다. 1학년 3반 교실 문을 나왔을 때 내 손엔 상상의 가야금이 분명히 만져지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입으로는 가야금 소리를 둥당둥당 흉내 내고, 손으로는 상상의 가야금 줄을 뜯으며 기분 좋게 집으로 달려갔다. 


한 주가 흘렀다. 수요일 6교시, CA특활 시간이 왔다. 1학년 3반 교실 안엔 앞산 뒷산 진달래 울긋불긋 피고요, 로 시작되는 민요가 아이들이 켜는 가야금 반주에 맞춰 신나고 힘차게 울려 퍼졌다. 그날 수업에는 지난주 뵙지 못한 담당선생님이 가야금을 할 줄 아는 예닐곱 명의 아이들을 두 줄로 앉게 하고는 합동연주를 하도록 독려했다. 연주하는 아이들 맞은편 책상에 앉아 그들의 연주장면을 보는 내내 어깨와 팔에 소름이 돋았고, 가슴 아래 저 밑바닥 같은 것이 쿵쿵 울리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그런 느낌을 두고 감동했다고 하는 건지, 그때 처음 음악의 감동을 몸으로 느꼈다. 


한바탕 놀이 같은 연주가 끝나고 아이들은 가야금을 모르는 나 같은 몇몇 아이에게 그 지난주처럼, 가야금 음계를 알려주고 덤으로 아까 연주했던 앞산 뒷산 진달래 울긋불긋 피고요, 까지 가야금 뜯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가야금 반 아이들은 너무나 예쁘고 환하고 다정해서, 정말 천사들과 함께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화려하고 고운 한복, 뽀얗고 말간 피부, 햇살같이 환한 웃음들 속에서 나는 매주 수요일 오후마다 가야금 12줄을 뜯으며 내 손가락엔 한 주에 한 번씩 물집이 잡혔다 터지기를 반복했다. 물론 내 가야금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때론 다른 아이들 연주하는 걸 구경만 해야 하는 때도 많았다. 그래도 기죽거나 심심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가야금 켜는 모습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가야금과 함께하는 수요일 오후의 즐거움이 있었기에, 수요일 오전부터 아니 화요일 오후부터 즐거워졌고, 아니 화요일 오전부터 즐거워졌다. 어쩌면 월요일부터 이미 즐거워지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또 가야금 특활시간이 끝나는 이후 수요일 저녁에도, 다음 날 목요일 아침에도, 아니 목요일 저녁까지도, 아니 금요일까지도 마음에 즐거움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가야금 특활시간 덕분에 한 주 동안 즐거운 기분이 부풀어 오르고 올라, 어느 땐 1주일 내내 학교생활이 즐거워졌고 편안해졌고 행복해졌다. 학기 초에 적응하지 못해 애먹던 나는 5월 즈음에 이르자 어느새 다른 아이들 못지않게 유쾌하고 활기찬 아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TV 채널을 돌리다 가야금 켜는 장면이 나오면 한참을 바라다본다. 인연이 깊지 않아서 나와 그때 단 한 시절만 함께 했던 가야금이었을지라도, 작은 하나의 즐거움이라는 씨앗이 생활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그로부터 배웠기에, 나는 가야금 연주를 볼 때마다 내 안에 심어진 즐거움의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


<가야금과 나>, 펜과 수채, 16절,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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